‘상조’한다더니 눈물만 빼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1.0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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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서비스 상품 관련 피해 사례 해마다 늘어 ‘복지 사업’ 되도록 소비자 보호책 마련 시급

 
가정주부 임 아무개씨(32)는 최근 한 친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한 상조회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에 가입하면 장례에 필요한 절차를 저렴한 값에 모두 대행해준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주변 사람들로부터 장례식 준비의 어려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임씨는 즉시 계약서에 사인했다. 가입 조건은 2백80만원을 60개월 동안 분납한다는 조건이어서 경제적인 부담도 덜했다.
그러나 임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경솔한 판단을 후회해야 했다. 목돈이 필요해 친구에게 해약을 요구하자 거절당한 것이다. 이 친구는 책임을 회사에 떠넘겼다. 자신은 회사의 의뢰를 받아 판매만 할 뿐 해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상조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러자 회사에서도 딴소리를 했다. 영업사원에게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충분히 교육을 시켰음에도 이같은 사실을 주지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 회사는 다단계 방식을 통해 장례 서비스 상품을 판매했다. 임씨의 친구도 고액의 수당을 챙기기 위해 이같은 사실을 숨긴 채 자신을 고객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결국 임씨는 한국소비자원에 중재를 요청했다.
임씨는 “분납한 돈의 50%라도 환급받을 수 있겠느냐고 문의했지만 소용없었다. 해당 업체는 서비스만 될 뿐 환급은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소비자원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라고 토로했다.
직장인 김 아무개씨(34)의 경우 대형 보험사와 연계한 장례 서비스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당한 경우이다. 김씨는 최근 한 보험사 홍보관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계약을 맺었다. 장례 서비스와 함께 사고시 1천만원까지 보상이 된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현혹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집에 와서 보니 이미 아내가 비슷한 상품에 가입해 있었다. 할 수 없이 계약 해지를 요청하자 이 보험회사는 난처함을 토로했다. 자사는 상조회사에서 이름만 빌렸을 뿐 책임을 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상조회사에 연락을 해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조회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지로용지를 발급했기 때문에 취소가 안 된다고 했다. 결국 김씨도 한국소비자원에 신고를 했다.
이렇듯 최근 들어 장례 서비스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2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상담 건수만 1천여 건을 훌쩍 넘어섰을 정도이다.
상조 관련 피해도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2년 60건,  2003년 58건, 2004년 91건에 불과하던 소비자원 상담 건수가 지난  2005년 2백19건, 2006년 5백9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10월 기준으로 6백35건의 불만이 접수되었다. 
그러나 피해 구제는 여전히 미미한 상황이다. 지난 2002년 13건, 2003년 15건, 2004년 17건, 2005년 44건, 2006년 81건, 2007년 92건(10월 기준)을 기록했다.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팀 황진자 차장은 “지난 2006년 이후 상조 업체 수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관련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피해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은 대형 업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업 체계나 영업망은 영세 업체에 비해 체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상조 관련 피해를 일으키기는 마찬가지이다.
국내의 대표적 상조 업체인 ㅎ종합상조의 경우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국내 유명 사진관인 허바허바사장의 상호를 도용해 자사 광고에 활용하다 덜미를 잡힌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사는 자사가 설립한 허바허바사장 울산 지점이 마치 허바허바사장의 신용과 전통을 계승한 것처럼 외부에 광고를 했다. 이를 통해 아가방, SK웨딩홀, 금성출판사, 비락우유, 서울우유 등 수많은 업체의 촬영 및 행사를 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허바허바사장은 ㅎ상조에 지점을 내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검찰은 이 회사 대표를 상표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문제는 이를 감시하고 제어해야 하는 정부조차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황차장은 “상조업은 허가제가 아니다 보니 아직까지 정부의 감시 및 감독을 받지 않고 있다. 관련법이나 주무 부처도 아직까지 없다. 그러다 보니 업계 난립과 더불어 끼워팔기 등 각종 편법이 끊이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새로 등록하는 상조 업체 수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 1982년 국내 최초의 상조 업체가 부산에 생겨난 이후 8년간 등록된 상조 업체는 6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음 5년간(1990~1994년) 16곳, 다음 5년간(1995~1999년) 20곳이 추가로 등록을 했다. 2000년대 들어 증가세가 눈에 띄게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2000~2003년에 31개 업체가, 2004년 이후에는 85개 업체가 추가로 생겨났다. 현재 등록된 업체만 1백58곳에 이른다는 얘기이다. 여기에 더해 허가를 받지 않은 무등록 업체까지 합하면 2백50개 업체, 가입한 회원 수는 2백50만명은 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시장 규모만 4조원대, 관련법 정비 서둘러야

시장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전국 회원을 2백만명으로 보고 불입액을 월 3만원으로 계산하면 시장 규모만 7천억원에 달한다. 계약액 전체를 평가하면 적어도 4조원 시장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련 법률은 물론이고 주무 부처조차 없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강동구 동국대 불교대학원 교수는 “보험업이 법적 규제 범위 내에서 영업을 하는 것에 비해 상조회사는 이같은 원칙이 없다. 특히 빠른 시일 내에 회원을 유치하다 보니 영업 사원에게 과도한 영업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단계 방식이나 끼워팔기, 군중 심리를 이용한 판매 방식 등 변칙 마케팅이 사용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연화 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도 “시장 규모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제도가 미미해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상조 서비스에 관련한 법적 장치가 빠른 시일 안에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뒤늦게 상조업 표준약관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13일 상조 서비스 피해를 막기 위한 표준약관을 최종 승인했다.
이날 승인된 표준약관은 그동안 문제로 지적되었던 부당한 계약 철회나 해약 환급금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상조 업계 손보기’에 나선 셈이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4월부터 6개월간 전국 2백1개 상조 업체의 약관 사용 실태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20개 업체에 대해 시정 권고하고, 1백44개 업체에 대해서는 불공정 약관에 대한 시정 조치를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표준약관을 마련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문제가 됐던 약관 관련 폐해는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공정위 약관제도팀 김성찬 조사관은 “이번 표준약관 도입은 그동안 혼맥상을 보여왔던 상조 업계에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향후 감시체제를 강화해 문제가 지속되는 업체에 대해서는 검찰 고발 등도 고려하고 있다. 때문에 그동안 문제가 되어왔던 약관 관련 폐해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산적한 문제가 많다. 정작 중요한 사안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금융보험팀 황진자 차장은 “표준 약관 제정으로 중도 해지 문제 등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가 낸 돈을 보장하는 장치가 없다. 법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관련법이 아직 정비되어 있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의 상조 시장은 ‘하루에 두 개의 회사가 생기고 한 곳이 망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일단 회사가 도산하면 피해를 구제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먹튀’에 대한 대책 마련도 요구되고 있다.
직장인 이 아무개씨(42)의 경우 한 상조 업체에서 여섯 개의 상품을 구입했다. 이 중 세 건은 이미 자식 혼사와 부모님 초상에 이용했다. 아직 이용하지 않은 세 건 중 두 건은 자식 혼사로, 나머지 한 건은 손녀 돌찬치에 이용할 계획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씨가 가입한 상조회사가 부도가 난 뒤 경쟁사에 인수된 것이다. 이씨는 새로 인수한 회사에 약속된 계약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이전 회사와 체결한 계약이니 자사는 책임이 없다면서 거부했다. 결국 이씨는 돈도 돌려받지 못하고, 원하는 서비스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현재 이씨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게 접수되고 있다. 일부 업체의 경우 법적인 맹점을 악용해 고의로 회사를 부도내기도 한다. 지난해 9월 발생한 ‘ㅎ사 대표 잠적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ㅎ사는 대구의 대형 상조 업체 중 하나이다. 그러나 최근 대표이사인 금 아무개씨가 회사에 폐업 신고를 한 채 잠적해버렸다.

 ㅎ상조회사, 고의 부도 후 대표 잠적해 수천명 피해

회사측에 따르면 금대표의 도피는 직원들도 모를 정도로 은밀히 진행되었다. 폐업 처리를 도운 회계 사무실에서조차 직원들과 모든 협의를 거친 것으로 착각했을 정도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회원들에게 전가되었다. 이 회사에는 7천여 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규모로 치면 30억원 상당이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3백만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ㅈ사는 회원을 담보로 사채를 쓴 혐의로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경찰에 고소된 경우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회사 대표 송 아무개씨는 최근 자사 고객을 담보로 1명당 30만원씩 총 7억원을 대출받았다. 이 과정에서 송대표 등은 고객을 관리하는 내부 전산 자료까지 조작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ㅈ사측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고소인에게 선수당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자금 여력이 없어 평소 아는 지인에게 돈을 빌렸다. 이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했던 것 같다. 고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고소인이 다름 아닌 이 회사 고위직 직원이어서 향후 경찰 조사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일부 업체의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적지 않게 나오기도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1980년대부터 국내에 상조회사가 생겨났지만 서비스가 활성화된 것은 사실 최근 몇 년의 일이다. 아직 법적 체계가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문제를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감이 있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권대우 한양대 법과대학 교수는 “표준약관으로 부당한 계약 조건을 규제할 수 있지만 상조 회사가 파산할 경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미 국회 차원에서 관련법 제정 움직임도 일고 있다. 한나라당 권영석 의원은 “통일된 표준약관 자체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상조 업계가 완전히 환골탈퇴하기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 국회 도서관 지하 1층에서 사단법인 한국소비생활연구원과 함께 ‘상조 서비스 등에 관련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권의원은 “일본의 경우 정부의 철저한 지원 하에 상조업이 제2의 복지 사업으로 정착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보호할 법적 근거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연내에 관련법 제정을 위한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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