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가면’ 쓴 재벌들의 탐욕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1.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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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재단, 부와 경영권 편법 상속 통로로 악용…계열사 지배구조 강화하는 데도 효자 노릇

재벌 그룹들이 세금 부담 없이 지분 상속을 할 수 있는 공익재단을 통해 계열사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28일 공익법인의 주식 취득 제한을 완화하는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올해부터 ‘성실 공익법인’에 한해 상속·증여세가 면제되는 계열회사 주식 취득 한도가 발행 주식 총수의 5%에서 10%로 늘었다. 또 동일 기업 주식 보유 한도는 공익법인 총재산 가액의 30%에서 50%로 확대되었다. 이 개정안에 대해 정부나 재계에서는 기업들이 공익법인의 기부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참여연대나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이 개정안이 재벌 총수가 세금을 내지 않고 부와 경영권을 2세들에게 편법 상속할 수 있는 통로로 공익법인을 이용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애초 세법 개정안은 공익 기업의 동일 기업 지분 취득 한도를 5%에서 20%로 늘리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전문위원회에서 공익법인이 사실상 지주회사 노릇을 하며 영리 목적의 전략적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지분 취득 한도를 10%로 축소했다. 이런 우려가 나온 대로 일부 재벌 그룹은 이미 공익 지분의 계열사 지분 취득 면세 한도를 지배구조 강화에 활용하고 있다.
태광그룹은 재벌 그룹 중 계열사 증여세 면제 한도를 가장 알뜰하게 쓰고 있는 그룹으로 꼽힌다. 세화여중·고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주학원이 계열사의 주요 주주로 활약하고 있다. 일주학원의 대표 권한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씨가 갖고 있다. 이 법인은 상장사인 대한화섬이나 태광산업의 지분 5%를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서한물산, 성광산업, 유덕물산 등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도 증여세 감면 한도인 5%씩 보유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태광처럼 공익법인이 계열사 보통주 지분 보유 한도 5%를 모두 소진한 기업은 총 21개 사였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8월 말 총수가 사실상 공익법인을 거느리고 있는 29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공익법인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상장회사 중 농심(5.09%)이나 롯데제과(6.81%), 롯데칠성음료(6.28%), 태영건설(7.55%)의 경우 공익법인의 지분율이 5%를 초과해 오너 일가의 지배권 확보에 공익재단이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롯데는 상장된 계열사의 지배에 공익재단 지분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증시에서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와 함께 롯데 3인방으로 꼽히는 롯데삼강의 경우 롯데장학재단이 지분 4.46%를 갖고 있다. 롯데 3인방의 지배구조에서 롯데장학재단은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대주주로 롯데그룹 우호 지분의 핵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태광그룹, 계열사 증여세 면제 한도 가장 알뜰하게 써

태광이나 롯데보다 더 규모가 크고 적극적으로 공익법인을 활용하는 재벌은 삼성그룹이다. 삼성은 삼성문화재단, 삼성복지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등 4개 공익법인이 9개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공익법인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 가 가장 많다. 이어 동부와 롯데그룹도 각각 1개의 공익법인을 설립해 7개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태광은 2개의 공익법인이 6개 계열사를, 금호는 3개의 공익법인이 5개 계열사를, SK는 1개의 공익법인이 5개의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각각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상속·증여세법 개정의 가장 큰 수혜자는 삼성이라고 할 수 있 있다. 삼성그룹의 양대 축인 삼성생명의 지분 4.68%를 삼성문화재단이, 삼성전자의 지분 0.2%를 삼성 계열 3개 공익재단이, 사실상 삼성의 지주회사라고 할 수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지분 0.88%를 삼성문화재단이 각각 보유하고 있다.
삼성이 계열 공익재단을 활용한 계열사 지배구조에 관심을 보인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실제 삼성 계열사 사장을 지낸 이대원 삼성중공업 고문은 지난해 자신의 저서를 통해 1970년대 무렵 삼성문화재단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 지배구조를 검토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세법 개정에 따라 삼성의 공익법인 활용도는 더욱 높아질 수 있게 됐다. 만약 금산 분리 규정이 완화되지 않아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경우나 삼성생명이 상장과 함께 주식 가치가 올라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사로 지정되는 상황이 오면 공익재단을 활용해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증여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재벌 그룹의 계열사들이 공익법인에 대해 배당은 제대로 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법정 배당금 비율이 5.5%이지만 실제 배당금은 각 재벌들이 밝힌 주식 증여액보다 형편없이 적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재벌 계열 공익법인이 원래 설립 취지인 사회 환원은 적당히 하면서 계열사 지배구조 유지에만 정신을 팔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애초 지분 증여액이 100원이라고 한다면 그에 따라 공익 법인들이 받는 배당 금액은 1.3원(배당 금액 평균비 1.30%)에 불과하다. 2개의 공익재단을 통해 6개 계열사 지분 취득 증여세 면세 한도인 5%를 알뜰하게 채운 태광그룹의 경우 재단측에 4개 계열사의 배당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 6개 계열사가 롯데장학재단에 기부한 주식 가액만 2천5백억원대인 롯데 계열사들이 재단에 준 배당금은 6억원 남짓이었다. 롯데장학재단이 지분을 갖고 있는 롯데 계열사 중 3곳은 배당액이 전무했고, 나머지 3곳은 배당금 비율이 1%를 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기부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이런 파행상을 바로잡기 위해 주식을 증여하는 대신 주식을 현금으로 바꿔 재단에 기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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