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춤추게 하는 ‘벌거벗은 임금님’
  • 파리·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8.01.21 12: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탁월한 언론 플레이로 비난 피해가…지지도 하락에도 여유 만만

 
'오뀐느! 오뀐느 주르노(aucune! aucune journeaux!!!:단  한곳도, 어떤 신문도) 그 이야기를 싣지 않았다! 임금님이 틀렸는데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 것이다.”
지난 1월14일 프랑스 2 방송의 <텔레프레지던트>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저널리스트인 쟝 프랑스와 칸은 이렇게 한탄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말이 나왔을까. 연두 기자회견에서 나온 사르코지의 실수를 어떤 언론도 감히 기사화하지 못했다는 칸의 예리한 지적이 나온 상황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의 토픽란을 매일 채우고 있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1월12일 엘리제궁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좌파 일간지인 리베라시옹의 로랑 죠프랑 편집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점점 더 선출된 군주로 가는 것 아닌가요?” 이에 사르코지는 이렇게 답했다. “이것 보시오, 죠프랑. 당신같이 지적인 양반이 무슨 소리입니까? 당신 자신이 군주제에 강박 관념이 있는 것 아니오? 내가 누구의 후계자란 말입니까? 내가 시라크의 숨겨놓은 자식이라도 되는 것이요? 내가 누구 핏줄인가요?” 상황은 이렇게 사르코지의 조롱으로 끝났다. 기자회견 후 사르코지는 죠프랑을 불러 악수까지 하고 헤어지는 아량(?)까지 보였다. 칸은 이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것은 역사적인 실수이다. 당시 질문은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따지는 것이지 누구에게 물려받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또한 많은 절대 군주가 혈통을 이어받지는 않았다. 나폴레옹도 폴란드의 앙리 3세도 말이다. 사르코지의 무식이었다. 사르코지가 틀렸던 것이다. 반박하려다가 자기 논리에 자기가 빠진 것이다. 당시에 같이 웃었던 기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아무도 임금님이 틀렸다고 감히 말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맞는가? 임금님이 틀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다음날 어느 신문에서도 아무도 이를 지적하지 못했다.”

“선출된 군주인가” 질문에 조롱으로 일관

한국에서는 이명박 당선인의 인선 및 정국 구상을 두고 1970년대의 불도저식 독재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일들이 프랑스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노쇠한 시라크에 이어 등장한 사르코지의 집권 초기 업무 시간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전임 대통령보다 1백40%를 더 일했다고 한다. 그만큼 젊고 부지런한 대통령이지만, 그 열성만큼 걱정도 크다. 리비아 인질 사태에서 유가 급등으로 인한 어민들의 소요까지, 모든 서류들을 사르코지가 직접 챙기고 찾았다. 마치 노무현 정부 초기 검사들과의 면담을 비롯해 대통령이 직접 당사자들과 담판을 짓던 모습과도 흡사했다. 이런 슈퍼맨과 같은 행보로 내각의 수반인 총리는 허수아비라고 놀림을 당하기기도 했다.
이러한 우려와 비판을 프랑스의 우파는 ‘새로운 리더십’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프랑스의 정부 여당인 대중운동연합의 나딘 몰라노 대변인은 “사르코지 대통령은 정책적 투명성이 있다. 모두 알고 차분히 설명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대통령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과시하는 듯한 사르코지의 행보와 그에 대한 여권의 침묵은 야권이 보기에 탐탁치 않은 모양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사르코지의 화려한 플레이에 반박할 틈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민영화되기 전 프랑스 방송사인 TF1의 CEO를 지낸 바 있는 에르베 부르즈는 사르코지에 대해 “이제까지 그와 같은 대통령은 없었다. 사르코지는 탁월한 언론 플레이어이다”라고 말한다. 사르코지에 반대하는 기자들조차 그와 회견하기를 즐긴다. 왜냐하면 그는 기자들이 원하는 답을 던져주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카를 바르송 기자는  “모든 것을 알려고 덤벼들 기자들에게 되레 모든 것을 말하라고 하는 것은, 거의 덤벼보라고 부추긴 꼴이 되었고 모두 보기 좋게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다음날 모든 언론 매체는 사르코지의 연인 사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사르코지 내각의 첫 시험대였던 지난해 10월19일 총파업 전날 엘리제궁은 대통령의 이혼을 공식 발표했다. 이 기사는 언론의 1면을 채웠고, 파업 이야기는 희석되었다. 때마다 적재적소에 감칠맛 나는 메인 요리가 나온 셈이고 언론은 이에 맞춰 춤을 춘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좌파 사회당 세골렌 후보의 대변인이었던 아르농 몽부르그 의원은 “권력은 법무, 의회 그리고 언론으로 나뉘어져 있다. 현재 법제는 사르코지 정부의 하시 다다티 법무부장관이 갈아엎고 있다. 의회는 거의 자는 분위기이다. 이제 언론은 어떤가”라고 물으며, “텔레비전은 그의 애인, 본처, 후처 등을 줄줄이 이야기하기 바빠 반대 권력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라고 언론을 질타했다. 급기야 야당의 대선 후보였던 세골렌 루와이얄은 사르코지를 루이 14세에 빗대기에 이르렀다.

 

세일즈 외교 성공이 비판 먹어치워

독재를 연상하게 하는 사르코지의 강한 행보는 그의 세일즈 외교 덕에 비판을 면해왔다. 지난해에 성사시킨 굵직굵직한 계약들이 비판의 화살을 먹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승승장구를 등에 업고 사생활을 너무 공개하는 등 강경 드라이브로 나서자 서서히 제동이 걸리는 조짐이다. 그것은  결혼 관련 발표 직후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7%나 떨어진 것으로도 나타난다. 지난 1월15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집권 후 처음으로 50% 이하인 48%로 내려앉았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개의치 않는 분위기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연두 기자회견 때 발표된 공영방송 광고 폐지 선언이다. 영국 BBC를 모델로 한 양질의 문화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민영 방송으로 축소 개편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지만, 8천억 유로에 달하는 광고 수입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 문화부장관조차도 기자회견 발표 전까지 내용을 알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좌파 인사는 “프랑스 공영 방송을 비롯한 라디오 프랑스 등에는 좌에서 극좌까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아마도 그들을 잡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우려했다.
프랑스는 현재 사르코지의 강한 행동을 리더십으로 보아야 할지 독불장군의 처신으로 보아야 할지 고민하는 듯하다. 좌파 인사와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자문기구가 존재한다고 여권은 주장하지만, 쟝 프랑스와 칸은 “당선 이후 50개가 넘는 자문 기구가 들어섰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아무도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조언할 인사는 없을 것 같다. 그의 애인인 카를라 브루니가 샹젤리제궁으로 초청할 인사에 대해 조언하는 것 정도를 빼면 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