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물건 ‘등록’ 않고 관리하기도”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1.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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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수장고 관리책임 맡았던 전직 간부 인터뷰 / “문화재급 포함 2만5천여 점 보관 추정”
삼성 특검팀으로부터 이틀간에 걸친 강도 높은 압수수색을 당한 경기도 용인의 삼성 에버랜드 수장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속에는 삼성미술관이 소장한 수만 점의 고가 미술품들이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미술관의 규모는 이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받을 정도이다.
압수수색에 참가한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수장고 내부에 대해 “그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창고 안에 수많은 미술품이 빼곡히 꽂혀 보관되어 있었다”라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특검팀의 압수수색이 한창이던 1월22일, 지난 1990년대 에버랜드 수장고의 관리 책임을 맡았던 한 전직 간부 ㄱ씨를 만났다. 그는 10년 전의 상황이라는 점을 전제로 기자에게 수장고 내부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특검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현재 수장고의 내부 모습 또한 ㄱ씨가 증언하는 10년 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용인 에버랜드 수장고는 언제 만들어졌나?
원래는 제일제당이 돼지 사육을 하는 ‘돈사’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 규모는 한 몇천 평쯤 된다고 보면 된다. 몇 동의 건물이 두 줄로 나란히 늘어서 있고 그 둘레에는 울타리가 처져 있다. 입구에는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엄격한 통제 장치가 되어 있다. 관리 직원 외에 출입을 하는 경우 반드시 사유를 적고 출입을 한다.
수장고 관리인의 인원과 소속은?
책임자인 나를 포함해서 6~7명 정도 있었다.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 운영실 소장품 관리팀이 우리 부서의 공식 명칭이었다.
그곳에는 어떤 물건들이 소장되어 있나?
동마다 다르다. 한 동에는 도자기류, 다른 동에는 회화류, 또 다른 동에는 조각품류, 민속공예품류 등으로 나뉘어 소장되어 있다. 국보급과 보물급 도자기도 모두 포함되고 현대미술 작품들도 역시 그곳에 모두 소장되어 있었다. 다만 지금은 서울 한남동의 리움 미술관 수장고가 지어졌기 때문에 미술품의 일부가 그곳으로 분산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수장고에는 작품 목록이 있나?
당연하다. 재단 내에 학예연구실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서 물건을 구입해 들어오면 우리에게 연락이 온다. 물건을 가져가서 등재하라는. 그러면 물건을 가져와서 우선 상태를 확인하고 특이 사항을 적는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 작품이 재단 소유인지 개인 소유인지 먼저 가리고, 이후에는 도자기류인지 회화류인지, 또 국내 작품인지 해외 작품인지 등을 순서대로 가려서 죽 코드를 붙인다. 재단 소유는 코드 넘버가 10으로 시작되고 개인 소유는 13으로 시작된다. 예를 들어 10-01-03-058이란 코드가 붙으면 우리는 한 눈에 ‘아, 이것은 재단 소유의 도자기이고 병 종류의 58번째 작품이구나’ 하고 알게 된다.
재단 소유가 아닌 이건희 회장 일가 개인 소유의 미술품은 어떻게 처리하나?
한남동에서 연락이 온다. ‘회장님 물건이 있으니 와서 가져가서 등재하라’라고. 그러면 가서 똑같은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나서 보고를 드린다.
 

이회장 일가의 미술품도 모두 그 수장고에 있다고 보면 되나?
그렇지는 않다. 거의 대부분이 수장고에 보관되지만 회장님 자택에서 특별히 따로 관리하는 것도 있다.
그것도 모두 관리팀에서 파악하고 목록에 등재하나?
아니다. 우리는 수장고에 보관되는 것만 파악하고 기록한다. 자택에서 따로 관리하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다. 권한 밖이다.
작품 수로 볼 때 개인 소유보다 재단 소유가 더 많은가?
아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을 당시만 해도 이회장 일가 개인 소유의 작품이 훨씬 더 많았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한 6 대 4나 7 대 3 정도가 될까. 문화재급 등 고미술품은 아무래도 재단 소유 비율이 좀 높은 편이고, 반면 현대미술품은 대개 이회장 일가 개인 소유가 많았다.
홍라희 관장 개인 것도 따로 있나?
우리는 그냥 이회장 일가 개인 소유라고만 알고 있지 그것이 구체적으로 이회장 것인지 부인 홍관장 것인지까지 구분하지는 않는다.
수장고 보관시 재단 소유와 개인 소유를 구분해서 보관하나?
당연하다. 그것은 기본 아닌가. 보관 창고 위치를 반 나눠서 엄격히 구분한다.
작품은 모두 몇 점 정도 된다고 보나?
내가 있을 때 우리는 2만5천점으로 알고 있었다. 이것은 물론 재단 소유와 개인 소유를 모두 합친 것이다. 우리 미술관에 이 정도 규모의 작품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때 항상 2만5천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개 공개적으로 공시하는 목록에는 재단 소유의 물품들만 소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소유와는 가짓수에서 많은 차이가 날 수도 있다.
물건을 들고 나가고 하는 것이 잦은 편인가?
아니다. 일단 한 번 들어온 물건은 거의 되파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다만 이회장 자택이나 집무실 등에 비치하고 있는 미술품을 교체해달라고 비서실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는 종종 있다. 또한 작품 전시를 위해서 혹은 다른 갤러리에서 전시를 위해 작품을 빌리러 오는 경우도 있다.
미술품을 어디서 사들였는지 그 출처도 정확히 등재하나?
그것은 등재가 어렵다. 솔직히 고미술품은 특히나 출처가 불분명하다. 확실한 소장 출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국보급 문화재도 마찬가지 아닌가. 집안 대대로 이어오던 가보를 시장에 내놓는 경우도 있고, 도굴 업자들을 통해서 떠도는 것일 수도 있고, 여러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정확히 일일이 다 파악하기가 솔직히 불가능한 것 아닌가.
작품을 소장품 목록에 등재하지 않고 임시로 보관할 수도 있나?
내가 있을 때에는 그런 적은 없었다. 책임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그것은 안 된다. 모르겠다. 혹 나중에 지우고 할 수는 있을지언정 당시에는 일단 무조건 적었다.
작품은 1년에 얼마나 들어오는 편인가?
좀 기복이 있다. 어떤 해는 많이 들어오고, 어떤 해는 별로 없고… 평균적으로는 1년에 한 100여 점 정도….
작품의 가치는 얼마 정도 된다고 보는가?
그 어마어마한 것을 어떻게 다 따질 수가 있나.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만일의 사고로 미술품이 훼손될 때를 대비해서 보험에 들기 위해 여러 번 시도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보험금 부담 때문에 도저히 안 되더라. 예를 들어 고려청자 한 점이 만약 5백억원이면 그 작품의 보험료만 약 50억원이 되고 뭐 이런 식이었다. 대충 어림잡아서 당시 보험 회사가 보험료로만 1년에 약 1천억원대가 넘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 화폐 가치로. 그렇다면 아무 사고가 없을 경우 회사는 그냥 생돈 1천억원 이상을 날리는 것 아닌가. 도저히 보험에 들 수가 없어서 몇 번 시도했다가 결국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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