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방송을 ‘교육’ 시키겠다?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2.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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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인사 이동·프로그램 축소로 시끌 정체성 놓고 내부 구성원들도 갑론을박

EBS가 안팎으로 시끄럽다. 밖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공영 방송 정책과 관련해 EBS에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고, 안으로는 봄 개편을 맞아 프로그램 축소와 인사 이동에 대한 잡음 문제 때문이다.
EBS는 봄 개편을 맞아 <지식채널e>에 변화를 주었다. 기존에 2명의 PD가 1주일에 3편씩 만들던 것을 1명을 인사 이동시키고, 1명의 PD가 1주일에 2편을 만드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식채널e>는 알파벳 ‘e’로 연상할 수 있는 모든 소재를 5분 동안 영상, 음악, 내레이션으로 풀어낸 일종의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지식채널e>는 한국방송대상 작품상과 남녀평등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았고, 시청자 단체로부터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EBS 편성기획팀의 김유열 팀장은 <지식채널e>의 변화에 대해 “월~금요일까지 하루 1회씩 방송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 인력 조정 차원에서 제작 편수만 1주일에 2편으로 줄인 것이다. 대신 <지식채널e>와 비슷한 포맷으로 고전 속의 명문장을 소개하는 <3미니츠>가 신설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언젠가부터 EBS의 개편이 있을 때면 폐지되는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봄에는 홍세화씨가 진행하던 <똘레랑스>가 폐지되었고, 가을 개편에는 <시대의 초상>이 신설된 지 6개월 만에 사라졌다. 모두 시청자들과 시민단체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다. <지식채널e>의 제작 편수 축소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김유열 편성기획팀장은 “시사 프로그램은 EBS의 고유 영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EBS는 지식 콘텐츠형 교양 프로그램을 강화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봄 개편에서는 전통적으로 EBS가 강세를 보여온 고품격 다큐멘터리 제작을 발표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4회에 걸쳐 열려오던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EIDF)을 축소·폐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2004년에 시작한 EIDF는 지난해까지 30여 억원의 예산을 들여 총 4회 동안 총 3백34편의 국내외 다큐멘터리 작품을 소개한 국제 다큐멘터리 축제이다. 소수자, 약자, 비주류를 다룬 작품들로 호평을 들었고 1주일 동안 하루 8시간 정도를 연속 방영하는 파격적인 편성도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2006년 83편에서 2007년 58편으로 규모가 축소된 데 이어 폐지하겠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 것이다.
경영진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실무진과 노조 등은 반발했다. 내외부적으로 반발에 부딪히자 EBS는 지난 1월30일 신임 EIDF 사무국장으로 성기호 PD를 임명하면서 EIDF 폐지에 대한 논의를 일단 잠재웠다. 성기호 신임 국장은 “규모나 시기 등에서 올해 EIDF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결정된 것이 없다. 다만 편성 문제로 인해 매년 8월에 하던 것을 앞이나 뒤로 옮긴다는 것만 예정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EIDF를 폐지하겠다는 경영진의 생각이 공식적으로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1회 때부터 오랜 기간 EIDF를 이끌어온 형건 전 사무국장을 인사 이동시킨 점이나 신임 성기호 사무국장을 선임하기 전까지 세 명의 제작 PD로 하여금 겸임하도록 한 데는 사실상 EIDF를 축소·폐지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BS의 한 관계자는 “내부 반발이 있기 전까지 경영진이 EIDF를 축소·폐지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축소·폐지 움직임

EIDF는 방송사가 주최하고 방송을 통해 상영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영화제이다.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번에 제작 부서로 자리를 옮긴 형건 전임 사무국장은 “영화제가 자리 잡으려면 최소한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선댄스영화제의 제프리 길모어, 부산영화제의 김동호 위원장의 예에서 보듯이 실무자가 오랫동안 일을 맡는 것도 중요하다. EIDF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다큐멘터리 마니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계속해서 발전해나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BS가 개편 시기마다 논란을 겪는 이유 중의 하나로 사장 선임 방식이 꼽힌다. EBS의 사장은 방송위원회에 의해 선임되며 임기는 3년이다. 하지만 지난 2000년 6월 한국교육방송공사로 새 출발을 한 이후 7년 반 동안 다섯 번째 사장을 맞이했을 정도로 대부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또 사장 선임도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 KBS 등 공영 방송 수장들의 얼굴이 바뀔 것이라는 말들이 있는 만큼 현임 구관서 사장도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확언하기 힘들다. 현임 구관서 사장은 교육 관료 출신으로 방송계에 몸담은 경험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EBS의 한 관계자는 “방송 경영 경험이 없는 인물이 사장으로 선임되다 보니 좋은 기획과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논란은 교육방송 EBS의 정체성에 대해 내부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과 무관하지 않다. KBS1이나 다른 방송들과 EBS의 차별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 간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BS가 만들어내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개편 때마다 이 프로그램이 EBS가 다루어야 할 프로그램인지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EBS의 한 관계자는 “EBS가 공사로 재탄생한 지 이제 7년이 지났다. 현재는 EBS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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