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없어도 열광은 계속된다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2.0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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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마니아 해마다 늘며 갈수록 인기몰이 박진감 넘치는 스타크래프트 10년 동안 건재

 
지난 1월27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 리그 결승전이 열렸다. 게임을 스포츠화한 e스포츠, 그중에서도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것이다. 경기장에는 1만명이 넘는 관객이 모였다. 대회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e스포츠협회(KeSPA)의 한 관계자는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던 지난해 결승전보다 한 블록이 더 찬 숫자”라고 말했다.
프로리그 결승전뿐만이 아니라 매주 벌어지는 각 방송사의 개인 리그, 일반 프로리그 경기에도 관중이 가득하다. 용산에 위치한 e스포츠 전용 경기장 앞에서는 매 경기마다 관중들이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e스포츠협회에 따르면 1999년 1백83만명이던 관중이 2006년에는 1천8백94만명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e스포츠의 성지라고 불리는 부산 광안리에서 펼쳐지는 전기 리그 결승전에는 무려 10만명의 관중이 운집한다.
스타크래프트는 출시된 지 이미 10년이 지난 게임이다. 10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버전이 나온 것도 아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출시한 블리자드는 이제야 스타크래프트2를 준비하고 있다. 게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면서 블리자드측에서 후속작을 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게임의 수명이 짧은 가운데 스타크래프트가 10년 동안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e스포츠의 영향이 크다. e스포츠가 꾸준히 스타프로게이머를 배출하고, 보는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은 것. 온게임넷에서 스타리그 해설을 맡고 있는 엄재경씨는 “e스포츠와 스타크래프트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윈-윈 관계이다. e스포츠의 인기가 없었다면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이렇게까지 오래 사랑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변화무쌍한 전략과 예측 불가능한 승패가 매력

스타크래프트가 이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속성에서 그 요인을 찾고 있다.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란 유저가 건물을 건설하고 거기에서 생산되는 유닛의 수와 움직임을 직접 컨트롤하며 전투를 벌여 승부를 내는 것이다. 어떤 전략을 써서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경기가 펼쳐지게 된다.
엄재경 해설위원은 “스타크래프트는 각 종족 간의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다. 강력한 유닛일지라도 천적 유닛에게는 약한 모습을 갖는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유닛과 종족이 없다. 그래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전략 싸움이다. 어떤 빌드(경기 초반 건물, 유닛의 배치와 순서를 결정하는 전략)를 들고 나오느냐에 따라 초반에 승패가 갈리기도 하기 때문에 가위바위보 싸움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빌드가 불리하더라도 게이머의 운용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프로게임단의 한 감독은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면 경험을 통해 맵에 최적화된 빌드를 들고 시작해도 공식을 뒤엎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라고 말했다. 팬들도 이런 의외성에 열광한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e스포츠를 즐겼다는 르까프 오즈의 팬클럽 운영자 최민선씨(20)는 “같은 맵에서 같은 선수가 경기를 펼치더라도 매번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스타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도 인기 요인 중의 하나이다. 초기에는 테란 황제 임요환, 폭풍 저그 홍진호, 영웅 토스 박정석 등이 인기몰이를 주도했다. 이윤열, 최연성 등이 그 뒤를 이었고 최근에는 마재윤, 김택용, 이제동 등이 스타플레이어로 떠올랐다. 로얄로더는 스타 탄생의 지름길이다. 로얄로더란 개인 리그에 처음 진출해 바로 우승까지 이르는 것이다. 최근에 스타리그에서 우승한 이제동이 그런 경우이다. 이렇게 스타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탄생하는 것은 전략이나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거나 연습을 소홀히 하면 신진 세력에게 밀려나는 것이 프로게이머의 세계이다. 김태형 온게임넷 해설위원은 “프로게이머의 실력은 극상향 평준화된 상황이다. 한 번 밀려난 올드 게이머가 다시 정상에 오르는 것은 임요환, 이윤열 등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라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로 자리 잡는 데는 방송의 힘도 컸다. 스타크래프트는 전개가 빠르고 스펙터클하며 옵저버 모드 등이 있어 방송에 적합한 게임으로 평가받는다. 온게임넷의 위영광 PD는 게임을 방송에 담아내는 작업에 대해 “스타크래프트는 바둑 등과 같이 멘탈 스포츠적인 측면이 강해 심리 싸움이 중요하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선수들의 모습, 승부가 결정된 후의 희로애락 등을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라고 설명했다.
매 경기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관중들의 열기도 e스포츠의 매력이다. CJ팀의 이재훈 선수 팬모임 운영자인 박수진씨(29)는 “팬들 중에는 게임을 하지는 못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 하며 경기장에 오는 이들도 많다”라고 전했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스포츠의 위상을 높이고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 대한체육협회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저변 확대를 위해 아마추어 대회를 확대하고 16개 광역 단체에 e스포츠협회 지부를 올해 안에 설립하는 것도 계획 중이다.

게임 저작권 문제 해결되어야 자리 잡을 듯

스타크래프트에 편중된 e스포츠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스페셜 포스, 카트라이더, 피파, 서든 어택 등으로 종목 다변화도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종목별로 프로팀을 창단하는 등의 육성책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e스포츠가 좀더 확고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 번째는 게임 저작권에 관한 문제이다.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라는 외국계 회사의 제품이다. 블리자드는 지난 2007년 자사 콘텐츠로 이익을 창출하는 e스포츠에 대해 저작권 사용료를 요구했다. 블리자드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좌초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블리자드와 e스포츠협회는 이 부분에 대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협상에 대해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계방송이나 대회 등에 따른 저작권 문제는 e스포츠협회가 저작권자(게임 개발사)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e스포츠협회가 IEG라는 회사에 e스포츠 중계권을 넘긴 것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e스포츠를 전문적으로 중계하는 케이블 방송국의 한 관계자는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각 방송사에서 주최한 개인 리그의 인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협회가 주최하고 있는 프로리그도 시작은 방송사로부터였다. 산업을 태동시킨 주역을 배제하고 게임 산업과 전혀 관계가 없던 회사를 중계권자로 설정해 그들에게 수익을 안기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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