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십자가’에 누가 매달릴까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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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수 부회장이 총체적 책임지고 삼성에서 획기적 수습안 내놓을 것” 전망

 
삼성 특검이 반환점을 돌았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가운데 특검팀 관계자들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문 채 무표정이다. 조준웅 특별검사 역시 취재진에 하루 두 번 노출되는 출퇴근시 각 1분여 동안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정면만 응시한다. “어차피 장기전이다. (성과에 따라서) 일희일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한 관계자의 전언은 다소 초조해하는 특검팀 내부의 현재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최근에는 취재진과의 마찰음까지 들리는 등 어수선함마저 더하고 있다.
그동안 특검팀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자택과 집무실 ‘승지원’ 등을 압수수색했고,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소유의 미술품을 집중 수사했다.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삼성의 심장부를 향한 압박 효과는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 수사의 방향은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삼성 전략기획실(전 구조조정본부)로 향하고 있다. 특검 수사 대상 가운데 핵심인 ‘불법 경영권 승계’ 관련 의혹으로 본격 돌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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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웅 특별검사 “성역 없이 원칙대로 수사할 것”

자연스럽게 “과연 특검의 최종 타깃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삼성 특검을 바라보는 세간의 관심도 여기에 집중되고 있다. “성역 없이 원칙대로 모든 것을 수사하겠다”라는 것이 조특검의 입장이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는 특검 수사의 속성상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철저히 가려 수사 대상을 좁힐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 특검 수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중견 변호사의 말이다. 정확한 목표물을 설정하고 남은 수사력을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한남동 특검 사무실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무성한 시나리오가 나돈다. “전략기획실장인 이학수 부회장이 결국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반론도 있다. 이회장 부자가 또 타깃에서 벗어난다면 국민 정서상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가 그것이다. 특검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드는 3월 말에 접어들면 이회장 부자의 전격적인 소환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부회장이 지난 14일 저녁 전격적으로 특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변호사 한 명만을 대동한 채 홀로 소환 조사에 응했다. 밤 11시가 넘어 귀가하는 그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이부회장이 모든 의혹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라는 얘기는 이미 설 이전부터 정치권에서 떠돌았다. 삼성에서 획기적인 ‘수습안’을 준비 중에 있다는 얘기도 점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이런 취지의 내용이 보고되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삼성 특검 수사 결과가 4월 총선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친기업 이미지가 강한 이당선인과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국민 정서에 부합되는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보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당선인도 (이명박 특검) 특검 수사 대상의 위치에 있는데 향후 수사 전망에 대해 보고받고 할 입장이 되겠나”라고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현재 특검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서 서울통신기술 전환사채 발행 사건(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1996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사건(1999년), e삼성 주식 매입 사건(2001년)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그룹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여진 데에는 그룹의 심장부인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가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부회장은 1997년 삼성화재 대표이사에서 구조본부장으로 옮겨온 뒤 지금까지 10년간 구조본을 지휘하고 있는 ‘2인자’이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이회장을 대신해서 현재 삼성을 이끌고 있는 ‘1인자 대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 의혹 역시 구조본의 지휘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김용철 변호사는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특검팀이 삼성의 무혐의를 완벽하게 입증해주지 못한다면 이부회장이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재용 전무의 아킬레스건은 e삼성

 
관심은 이재용 전무의 ‘건재’ 여부이다. 모든 의혹의 출발점은 바로 이전무에게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일부 불법적인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이전무에게 직접적인 화가 미칠 가능성은 작다”라는 의견이 많다. 대형 로펌에 몸담고 있는 검찰 출신의 ㄱ변호사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대로 그룹 차원의 조직적인 공모가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 해도 이전무에게 직접 횡령 배임죄를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다만 도덕성의 문제는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전무에게도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그 자신이 경영을 책임지고 주도했던 e삼성 사건이다. 이 사건은 지난 2001년 대주주인 이전무가 2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자 삼성 계열사들이 이전무의 지분을 사들인 것으로, 참여연대 등이 경영권 승계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그는 2005년 참여연대의 고발에 의해 현재 피고발인 명단에 올라 있다. 이 사건의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횡령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 ㄱ변호사의 설명이다.
특검팀이 2월12일부터 e삼성 주식 매입 사건 관계자들을 본격적으로 소환 조사하기 시작한 점은 그래서 특히 이목을 끌고 있다. 에버랜드 사건 등 다른 사건에 비해서 e삼성 사건의 경우 이전에 검찰 수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외의 성과가 이 부분 수사에서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낳고 있다.
특검팀이 이전무의 계좌까지 폭넓게 추적하고 있는 정황도 확인되었다. 금감원과 국세청의 관련 자료 조사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또한 이전무에 대한 혐의점을 확인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회장은 삼성 비자금 의혹이 불거진 이후 지난해 11월 검찰로부터 출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그는 지난해 12월28일 이당선인과의 회동 때 한 차례 모습을 드러낸 것 말고는 일체 외부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당초 예상을 상당히 앞질러 이부회장이 한남동 특검사무실에 등장하면서 특검의 다음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고 있다. 이부회장에게 총체적인 책임을 물을 것인지 아니면 이회장 부자를 향한 사전 단계 수순인지, 특검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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