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줘야 팔린다” 그래도 남으니까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8.02.1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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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수입차 업체, 가격 할인 경쟁 점입가경 부품 고마진 전략으로 수익 보전하기도

국내 완성차 및 수입차 업체들이 최근 일제히 가격 인하 경쟁에 들어갔다. 제네시스라는 강적을 만난 기아차는 기존 오피러스 GH270 일부 편의 사양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차값을 3백만원가량 낮추었다. 1000㏄ 경차 뉴모닝이 판매 한 달 만에 계약 대수 2만대에 이르자 GM대우는 ‘경차 마티즈 출시 10주년 기념’을 내세워 기존 사양을 그대로 둔 채 최대 53만원을 내렸다. 업계에서는 오피러스와 마티즈의 가격 인하가 다른 차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수입차 시장의 가격 인하 경쟁은 본격적인 브랜드별 시장점유율 싸움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는 3월부터 S500(2억6백60만원)의 일부 편의 장치를 뺀 대신 가격을 2천만~3천만원가량 낮춰 판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S500 풀옵션 모델의 가격은 그대로 묶어두어 기존 구입 고객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방침이다.

벤츠는 지난 1월 사상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렇게 매출이 호조를 보임에도 벤츠가 최상위급의 차 가격을 대폭 내릴 수밖에 없는 데는 사정이 있다.
수입차 업계에서 S클래스의 가격 붕괴론이 제기된 것은 수개월 전부터이다. 병행 수입차 업체들의 난립으로 사업자들이 중구난방으로 수입해 인천 보세 창고에 쌓여 있는 S클래스가 수천대 규모라는 얘기가 나돈다. 비공식 수입 업체들이 보세 창고의 저렴한 주차비(월 10만원 수준)와 캐피탈 회사의 차를 담보로 한 ‘재고 금융’을 활용해 마구잡이로 차를 수입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매물이 대거 할인 세일로 풀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데다 하반기 출시 예정인 BMW7 시리즈로 옮겨갈 고객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벤츠에서 가격 인하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벤츠가 신규로 공급하는 S클래스 가격은 벤츠 병행수입 사업을 하는 SK네트웍스가 시장에 공급하는 가격대와 동일하다.

병행수입 업체들의 공세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아우디는 지난 2월13일 기함 모델인 A8의 부분 변경 모델을 출시하면서 최대 1천3백80만원까지 가격을 인하한다고 발표하며, 차값 인하 러시에 동참했다.
BMW코리아는 지난해 5월 ‘BMW 뉴5 시리즈’ 4개 모델을 출시하면서 주력 차종인 뉴528i 가격을 이전 모델(525i) 가격보다 1천9백만원이나 싼 6천7백50만원으로 책정해 수입차 가격 인하 러시의 선봉에 섰다. 뉴528i는 525i와 비교해 엔진 배기량(2996㏄)을 높여 최고 출력과 최대 토크가 10%가량 향상되었다. 성능은 올리되 가격은 25% 이상 낮춘 것이다. 폭스바겐코리아는 지난해 9월 골프 TDI의 2008년식 모델을 5백만원 내린 데 이어 10월에는 2008년식 제타 2.0 TDI 모델을 기존보다 3백만원 싼 3천1백90만원에 선보였다.

업체들의 가격 전략에는 각사의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혼다의 2008년형 뉴어코드 2.4는 3천4백90만원이고, 3.5는 3천9백40만원이다. 주목할 점은 배기량이 1100㏄나 차이가 남에도 2.4와 3.5의 가격 차이는 4백50만원밖에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동급의 국산차와 비교해보면 더욱 의미가 도드라진다. 수입차에 붙는 제세금 34%를 감안하면 배기량 기준으로 했을 때 국산차의 가격이 더 높다. 현대차 그랜저 2.4의 경우는 2천5백13만원이고, 그랜저 3.8은 4천59만원이다. 이를 통해 현대차가 세계적인 대중차 브랜드인 혼다에 비해 비싸고 어코드 2.4가 어코드 3.5보다 상대적으로 고가이며, 혼다가 고객들의 구매를 3.5로 유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다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고급 승용차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수입차 업체들의 이런 가격 인하에도 국내 수입차 가격은 여전히 미국 내 판매가보다 40%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 가격은 제조사가 제시하는 소비자 가격 기준이다.

 

외국 시장보다 여전히 높은 수입차 값

혼다의 뉴 어코드 3.5는 국내에서는 3천9백40만원이지만 미국에서 3만3천3백60달러(3천1백50만원, 세후 기준)대에 팔리고 있다.
지난해 BMW가 파격적으로 가격을 낮춘 ‘528i’(국내 시판가 6천7백50만원) 역시 미국에서는 4만8천6백80달러(4천6백만원)에 팔리고 있다.
도요타 렉서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렉서스 460L’의 국내 시판가는 1억6천3백만원으로 미국 내 판매가인 7만8천40달러(7천3백90만원)보다 배 이상 비싸다. 렉서스의 기함 모델인 LS600hl의 경우 국내 판매 가격은 1억9천7백만원(부가세 포함)이고, 미국 판매 가격은 풀옵션을 더해도 12만6천달러(1억1천5백만원 선)에 불과하다. 일본 판매 모델은 풀옵션이 1천5백20만 엔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1억1천9백만원. 국내 가격보다 8천만원가량 싸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품질 또는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내세워 국내 동급 차량과 비교해 ‘착한 가격’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대표적인 예가 혼다의 CR-V인데, 최저 사양의 기본 가격이 3천90만원으로 현대차 싼타페와 비슷하다. 그러나 부품 가격 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 차 전체가 애프터 서비스(A/S)에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CR-V의 주요 부품 가격은 국내 완성차 부품 가격의 최고 7~8배에 달한다. 결국 수입차의 낮은 판매 가격은 수입차 구매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한 것이다.
수입차 업체들의 비싼 부품 가격 정책 때문에 업체의 의무 보증 기간이 끝났거나 병행수입 업체를 통해 수입차를 구매한 고객들은 온라인 카페 등을 만들어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일부 무역 오퍼상들은 해외로부터 순정 부품을 구입해 강남의 일부 수입차 전문 정비 업체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부품 가격의 고마진 전략은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1991년 쌍용자동차가 메르세데스 벤츠와 제휴한 뒤 벤츠로부터 배운 마케팅 전략 중 하나는 차량 출고시 적용하는 각종 옵션 및 A/S 부품 가격의 탄력적인 적용이었다. 이전만 하더라도 쌍용차는 사실상 완성차 판매를 통해서만 수익을 올렸다. 쌍용차 A/S 사업 부문 책임자였던 한 전직 임원은 “2006년 쌍용차의 수익 중 A/S 및 부품 판매에서 약 7백억원의 이익을 올려 완성차 판매 부문의 적자를 메울 수 있었다”라고 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차종 중 최대 판매 차량은 현대차의 중형 승용차 쏘나타이다. N20 쏘나타 딜럭스가 1천7백90만원, 쏘나타 트랜스폼이 1천9백70만원이다. 쏘나타는 지난 한 해 11만9천1백33대를 판매했다. 쏘나타의 국내 누적 판매 대수는 2백30만대, 전세계적으로는 4백만대 이상 팔렸다. 통상 자동차 업계에서는 동일 플랫폼으로 30만~50만대의 생산을 달성하면 3천억~5천억원으로 추산되는 1개 승용 차종 투자비를 상회하는 손익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쏘나타의 대당 마진이 다른 차종에 비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쏘나타의 경쟁 차종으로 거론되는 르노삼성차의 SM5는 현대차와 동등한 것으로 평가되는 르노삼성차의 브랜드력 때문에 SM3를 제외한 전차종에 걸쳐 ‘현대차 대비 1%’의 고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SM5 PE가 2천만원, LE플러스가 2천5백50만원이다. 쏘나타와 SM5를 단순 비교하면 쏘나타의 차량 가격이 싼 것으로 보여지나 쏘나타가 4백만대 이상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결코 싼 가격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SM5 역시 누적 생산 대수를 감안했을 경우, 부품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국산차나 수입차 값에 더 내릴 여지가 아직도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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