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불명 ‘밀수품’ 밥상을 점령한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2.1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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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탁은 이미 중국산에 완전히 점령당했다. 시중 대형음식점에서 골목길 작은 식당까지 온통 중국산으로 넘쳐난다. 학교 급식도 중국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아이들의 음식이 중국산 식자재로 조리되고 있다. 김치, 갈비탕, 꼬리곰탕, 마늘, 떡 등 값싼 중국산이 하루가 다르게 밀려오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산은 얼마나 안전할까.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중국산 가공 식품과 일반 음식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음식은 인체에 무해한 것일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왠지 불안하고 찜찜하면서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산 식품’이다. 또 국산으로 둔갑한 중국산을 속아서 먹기도 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중국산 식품을 얼마나 믿고 먹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시사저널>은 국내에 유통되는 중국산 가공 식품의 유통 경로를 조사하기 위해 전방위 취재를 진행했다. 취재 결과 우리가 먹고 있는 중국산 제품의 안전 문제는 심각했다. 식약청의 검사를 통과한 제품만 시중에 유통되는 것이 아니었다. 안전 검사를 받지 않은 밀수품이나 일명 ‘따이공’으로 불리는 보따리상들이 들여온 제품들이 대량 유통되고 있었다. 이 제품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제품들에 대한 성분이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중국산 가공 식품이 얼마나 식탁에 오르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ㅊ뷔페는 서울 시내 대형 뷔페 중 하나이다. 이 뷔페는 공휴일과 주말에는 1인당(성인 기준) 2만7천원을 받는 고급 음식점이다.
 

고급 대형 뷔페들도 중국산 식자재 선호

<시사저널> 취재진은 지난 2월11일 저녁 9시쯤 영업이 끝날 때에 맞추어 ㅊ뷔페를 찾았다. 뷔페 건물 뒤편 길가에는 뷔페에서 배출한 각종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다. 취재진은 쓰레기더미를 일일이 뒤져 음식을 포장했거나 담았던 용기를 찾아냈다. 캔 용기(단밤, 표고버섯, 소꼬리곰탕, 죽순, 만다린 오렌지 등) 10개 중 9개의 원산지가 중국산이었으며, 1개가 태국산이었다. 국산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빵이나 떡, 갈비탕 등 비닐로 싸인 파우치 제품 등도 모두 중국산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약청의 검사를 받지 않은 ‘정체불명의 제품’은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ㄷ뷔페는 저녁 시간에 1인당(성인 기준) 1만원의 음식값을 받는다. 이 뷔페의 식단도 거의 대부분 중국산으로 차려져 있었다. 지배인도 “갈비 등은 중국에서 수입해온 것을 중간 도매상을 통해 들여온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시중에 중국산 밀수 가공 식품이 대량 유통되고 있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직접 실태 파악에 나섰다. 먼저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과 서울 가리봉동의 ‘국경 없는 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중국 한족과 조선족 등이 집단 거주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산 원곡동에서는 중국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직접 음식을 맛보았다. 소면과 냉면 그리고 만두를 주문했는데, 겉보기에는 여느 중국 음식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흑룡강성 출신의 조선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 종업원은 직접 제조한 만두를 판다며 구매를 권유했다. 그는 “한족이 제조한 만두는 불결하고 냄새 나서 우리도 못 먹는다. 우리 것은 좋은 고기를 섞어서 넣기 때문에 안전하고 맛있다”라고 연신 홍보했다.

 

밀수품과 정식 통관 제품 비율 7 대 3

안산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 거리에는 크고 작은 중국 식품점들이 즐비했다. 다섯 집 건너 한 집은 ‘중국 식품점’이라고 할 정도로 꽤 많았다. 이곳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는 ‘ㅈ중국식품’을 찾았다. 약 35평쯤 되는 매장에는 중국산 식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중 정식 통관 검사를 거친 제품들이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대다수 제품이 밀수품이었다.
통관 검사를 받은 제품들은 ‘식품위생법에 의한 한글 표시’를 하도록 되어 있으나, 밀수품에는 당연하게도 한글 표기가 없었다. 밀수품과 정식 통관 제품의 비율은 7 대 3 정도였다. 밀수품들은 생산 일자와 유통 기한이 제대로 표기되지 않았다. 제품 가운데는 라벨이나 파우치에 인쇄된 글씨가 변색된 것도 수두룩했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냉장 식품 진열대에 놓여 있는 만두였다. 이 만두는 ‘ㅅ중국식당’에서 만든 것인데 비닐 파우치에 담아서 3천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현행 식품위생법에서는 제조된 식품에 대해 자가 품질 검사를 실시해 적합 판정을 받은 제품만 판매할 수 있다. 다른 식품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매장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진열 상태나 보관 상태는 비슷했다.
특히 보관 상태가 엉망이었다. 5개가 한 세트로 되어 있는 2천원짜리 찐 오리알은 껍질이 깨진 채 팔리고 있었다. 매장에 진열된 다른 제품들 가운데도 비닐 파우치가 터져서 내용물이 흘러나오는 것이 있었다. 중국산 담배인 ‘중남해’‘장백산’‘홍해’‘한’ 등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가리봉동 국경 없는 마을 거리와 주변 재래 상점에서도 중국산 밀수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중국 상점은 국산 가공 식품과 중국산 가공 식품을 함께 진열해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중국식품점 주인은 허가 받지 않은 제품들을 팔아도 되느냐고 묻자 “(중국산) 물건을 공급하는 곳이 있다. 제품에 이상이 없는데 파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느냐”라고 오히려 반문했다.
취재진은 시중에서 밀수 가공 식품 20여 가지를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중국산 밀수품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것이다. 관계 당국의 단속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수입된 중국산 가공 식품의 규모는 금액으로 볼 때 총 9억8천4백61만4천53달러, 중량으로는 11억3천1백85만9천4백8kg이다. 수입량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중국산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금액 기준 품목별로는 두류 가공품, 배추김치, 기타 가공품, 향신료 조제품 순이다. 김치나 쇠고기 캔의 경우 중국산 제품이 총 수입 규모의 약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품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수치는 국내 수입 업체들이 정식으로 수입하는 양을 토대로 한 것일 뿐이다. 밀수품의 경우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 국내로 유입되는 중국산 가공 식품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산 제품이 국내로 유입되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내 수입 업체가 중국 현지 제조 업체에 주문한 후 정식 통관검사를 받고 시중에 유통시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OEM 방식의 주문이 많다. 또 한 가지는 기업형 밀수업자가 몰래 들여오는 것이다.
보따리상으로 불리는 따이공들은 개인 사업(자영업)형 밀수꾼에 속한다. 따이공들 중 단순하게 운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 여객선 승객의 90%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의 주된 수입원은 운반료이다. 전문적인 따이공들은 상품을 직접 판매해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여객선 승객의 2~3% 정도가 전문적인 따이공이라고 보면 된다.
가공 식품 밀수는 주로 중국 연안 또는 서해상에서 이루어진다. 대부분 어선으로 가장한 밀수 선박을 이용하지만, 종종 컨테이너선을 이용하는 간 큰 밀수범들도 있다. 이들은 물물 교환이나 현금을 통해 물건을 구입한 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소규모 어항이나 포구로 들여온다. 따이공을 통한 밀수는 가장 보편화되어 있다.

문제는 밀수를 통해 유입되어 유통되는 식품들이다. 밀수 가공식품은 은밀하게 들여와 시중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관계 당국의 추적이 불가능하다. 이 정체불명의 상품들은 수입 상가, 재래시장, 중국 상품 전문점 등을 거쳐 일반 소비자들의 밥상에 올라간다. 가짜 제조 상품이나 각종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통제할 길이 없다. 결국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
관세청이 내놓은 밀수 식품 단속 현황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식료품 밀수 검거 건수는 총 7백41건이었으며 이를 액수로 환산하면 5백90억원이었다. 밀수 규모는 2002년 1백17건, 66억원에서 2006년 1백99건, 1백33억원으로 3년새 2배가량 증가했다. 식품목으로는 김치류가 가장 많았고 어육류가 그 다음을 차지했다.

 

수익만 탐내는 국내 수입 업자도 지탄받아야

중국 식품의 안전성 문제는 현지 생산·유통·보관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중국의 육류·야채 등의 식자재는 냉동·냉장 설비에 보관되지 않고 상온에서 유통된다. 냉동·냉장 설비를 갖추는데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한 가구 소득에 비해 전기료가 상대적으로 매우 비싼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고온 다습한 중국의 기후 여건상 식자재의 오염과 부패가 쉽게 일어난다. 중국 위생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1년 불량식품으로 인해 2만2천여 명이 식중독에 걸렸고, 이 중 1백84명이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중독 사고는 10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중국 식품 산업의 영세성도 주요한 요인이다. 중국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에 따르면 중국에는 10만개 이상의 식품 업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70%가 직원 10명 이내의 가내 수공업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식품 업체의 10%는 영업 허가증이 없고, 자체 검역 능력을 지닌 업체는 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후한 시설에서 오로지 가격 경쟁으로 승부를 보는 영세 식품 업체들에게서 식품 위생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정부 당국의 느슨한 검역 체계와 검사 기준도 문제이다. 중국 수입 식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잔류농약 문제이다. 그러나 현재 가공 식품 가운데 잔류 농약 검사가 의무화된 것은 녹차, 인삼 등의 몇 개 제품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서갑종 식약청 수입식품팀장은 “식품을 가공할 경우 세척이나 탈피, 가열 등의 과정을 거치면 농작물에 잔류하는 미량한 농약은 분해되어 사라진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여러 가지 원료가 혼합된 가공 식품에 대해서는 기준을 설정하거나 검사해서 관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국내 수입 업자들의 부도덕성도 지탄받아야 할 문제이다. 중국산 가공 식품은 주로 한국 수입 업자와 계약을 통한 OEM 방식으로 생산을 한다. 중국 식품 가공 업체들은 한국 수입업자가 원하는 가격, 품질, 규격, 포장 등에 따라 제품을 생산할 뿐이다. 터무니없이 낮은 단가로 생산 주문을 하다 보니 저질 식재료를 사용하고, 위생 관리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유해 식품류의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해서는 식품보건당국의 세밀하고 철저한 관리 감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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