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이 정직해야 정치가 산다
  • 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서울복지재단 대표) ()
  • 승인 2008.02.18 15: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권이 새판 짜기와 ‘공천 전쟁’으로 연일 시끄럽다. 한나라당은 공천 신청 기준을 둘러싸고 친이·친박 진영 간에 한바탕 내전을 벌였다. 통합민주당은 ‘무난한 공천은 무난한 죽음’이라고 경고하면서 대대적인 호남 물갈이를 예고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자유선진당 총재로 슬그머니 복귀했다. 하지만, 총재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시대착오적인 ‘제왕적 총재 체제’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0년 1월 진보 정당을 표방하고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임시 당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 체제가 내놓은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분당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자주파와 평등파 간의 ‘불안한 동거’ 체제가 끝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새로운 정치를 줄기차게 외쳤던 창조한국당은 사실상 문국현 대표 1인 체제로 전락해 와해 위기에 직면했다.

1987년 이후 계속 퇴보하는 한국 정당 정치

한국 정당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한국 정당 정치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측근을 살리기 위해 원칙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상황도 벌어진다. 두 번의 실질적 정권 교체를 경험하고, 60% 이상의 초선 의원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의정 60년을 맞이하고 있는데 한국 정당 정치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한마디로 정당 체계가 불안정하고 이념과 정책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라기보다 인물과 지역을 중심으로 정당 간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민과 당원 모두 자신이 지지하고 소속된 정당에 대한 일체감이 지극히 약한 것도 한 요인이다. 정당 일체감이란 정당에 대해 오랜 기간 간직하고 있는 당파적 태도이다. 이것이 약하면 정당이 뿌리를 내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바람이 세차게 불면 쉽게 무너지고 선거가 한 번 끝나면 밑바닥부터 흔들리기 쉽다.
한국 정당 정치가 정상화되려면 무엇보다 인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이를 위해 4월 총선이 한국 정당 앙시앵레짐(ancien regime) 타파의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 2백73명 중 1백57명(57.5%)이 공천되었고, 이 중 재선에 성공한 사람은 92명(58.6%)이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호남에서 재선을 노렸던 일곱 명이 모두 당선되었고, 한나라당도 영남에서 36명 중 32명(88.9%)이 재선에 성공했다. 지역 텃밭주의가 어김없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번 18대 총선은 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천 과정 자체가 전문적이고 투명해야 하며, 공천을 통해서 정말 전문성 있고 일할 수 있는 인물을 지역에 내보내야 한다. 이제 국민은 내용 있는 공천을 통해 깊은 감동을 주는 정당에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다. 전문성과 경쟁력, 경제와 복지의 융합 의지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비전을 갖고 있는 참신한 인물을 대거 충원한 정당에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다.
국민은 어떤 정당이 지역주의와 혈연·학연 같은 구태·구습을 뛰어넘어 정치 발전과 정당 민주화를 위한 사다리를 놓기 위해 몸부림치는지 정확하게 판별해낼 것이다. 정치권도 이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