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에 빠진 미국 무엇이 ‘열광’ 을 만드는가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 승인 2008.02.2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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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10연승 질주로 클린턴 앞질러 최근 여론조사에서 마침내 ‘역전’ … 매케인과 가상 대결에서도 우위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 이제는 새로운 페이지를 기록할 때가 왔다.” 지난 2월12일, 워싱턴 D.C.와 버지니아, 메릴랜드 등 수도권에서 승리한 오바마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신중하다는 평가를 듣는 그가 ‘승리 선언’을 하자 그 자리에 모인 지지자들은 마치 새해를 맞은 뉴욕 타임스퀘어의 군중들처럼 환호했다. 최근 오바마의 지지 유세 현장에서는 오바마 진영의 티셔츠나 모자를 착용하고 나온 가족들의 모습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오바마니아(오바마의 열성 지지자를 일컫는 말)들은 “CHANGE WE CAN BELIEVE(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가 쓰인 푯말을 흔들며 유세장의 분위기를 한껏 흥겹게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월12일 판에서 오바마가 인기를 끄는 원인을 “오바마는 국민의 절실한 변화의 요구에 유일하게 응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1928년 이후 처음으로 현직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출마하지 않아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가능한 때이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의 재임 기간 8년 동안 미국인들은 “미국의 노선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라고 느끼며 변화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절감하고 있었다.
오바마는 스스로를 ‘희망의 전도사’라고 부른다. 부드러운 태도와 절제된 언어로 현재 출마한 후보들 중 최고의 연설가로 평가받고 있다.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으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후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는 등의 다채로운 삶의 경험은 그의 연설에 녹아 다양한 인종과 계층에게 공감을 주고 있다.
클린턴 8년과 부시 8년을 보낸 미국인들이 힐러리 클린턴을 새롭게 여기지 않는 것도 오바마에게 득이다. ‘클린턴’ 대 ‘부시’의 흔적에 염증을 느끼는 미국민은 클린턴을 구 시대의 인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그는 1960년대에 출생해 베트남 전쟁 등 냉전 시대의 이념 대립에서 다른 후보들보다 훨씬 자유롭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미국을 변화시키는 데는 최적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미국민은 그에게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수퍼 화요일에도 가려지지 않았던 민주당 대선 경쟁도 그 끝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지난 2월20일 막을 내린 위스콘신과 하와이 경선에서 오바마가 모두 승리해 10연승을 달리면서 확보한 대의원 수에서도 한 발짝 앞서고 있다. 2월20일 AP 통신은 “오바마 의원이 확보한 대의원 수는 1천1백78명, 클린턴 의원이 확보한 대의원 수는 1천24명으로 나타났다”라고 보도했다. 이미 1백54명의 차이가 벌어진 셈이다. 아직 남아 있는 대의원 수는 1천25명이다. 클린턴이 1백54명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단순 계산으로도 평균 60%가 넘는 지지율로 이겨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위스콘신 주와 하와이 주에서 패배를 당하면서 클린턴 진영은 큰 타격을 입었다. 클린턴 진영도 이런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수도권에서 오바마 후보에게 패한 뒤 클린턴은 텍사스 주로 향하며 ‘미니 수퍼 화요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3월4일에 열릴 미니 수퍼 화요일에는 텍사스, 오하이오 등 4개 주 4백44명의 대의원이 걸려 있다. 민주당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3월4일에 열릴 텍사스 주와 오하이오 주의 선거, 그리고 4월22일의 펜실베니아 주 선거에서 클린턴이 한 주라도 패한다면 오바마가 후보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미국 변화시킬 최적의 인물”…당 내외 우려 잠재워

위스콘신과 하와이에서 패배한 이후 미국 언론들은 “클린턴에게 남은 지지층은 백인 여성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히스패닉계는 클린턴 진영의 희망이다. 4백41명의 최다 대의원이 걸린 캘리포니아를 클린턴이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도 투표에 참여한 히스패닉계 중 69%가 클린턴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클린턴 진영은 선거운동용 TV 광고에 히스패닉계 가족과 함께 등장하는 클린턴 후보의 이미지를 사용해 히스패닉계 공략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클린턴 진영이 오는 3월4일에 열릴 텍사스 주 선거를 비롯한 미니 수퍼 화요일에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도 히스패닉계의 지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히스패닉계는 텍사스 주 인구의 3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 3월4일까지는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시간상으로는 충분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10연패를 당하면서 선거운동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점이다.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 진영 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지지세와 선거 후원금에도 악영향이 염려되고 있다. 특히 선거 후원금 문제는 클린턴 진영에게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다. 클린턴 진영은 지난 1월 한 달 동안 1천3백50만 달러를 모금했지만 오바마 진영은 무려 3천2백만 달러를 모금했다. 선거의 약세가 계속된다면 자금 압박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3월4일까지 선거 캠프의 모든 힘을 결집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오바마가 받고 있는 순풍은 생각보다 훨씬 강한 바람이다. 지금까지 거론되어온 오바마의 약점은 민주당 경선에서만큼은 그의 발목을 잡지 못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1월24일자 사설을 통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지지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 상원의원의 지적인 능력과 폭넓은 경험에 감동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은 부시 정권 이후의 내정과 외교에 바로 전력을 투입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고 지금 시기에서는 클린턴 의원이 적격이다”라고 지지의 이유를 설명했다. 오바마 의원의 일천한 국정 경험이 약점이라는 지적이었다.
정치 칼럼니스트인 찰리 쿡은 클린턴과 오바마를 주식에 비교하며 설명했다. 그는 “클린턴은 안정주이다. 누구나 그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사전 지식을 충분히 익힌 뒤 그녀에게 투자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오바마 의원을 두고 그는 “오바마는 가격이 급격히 변하는 주식이다. 급상승과 급하강의 가능성을 모두 안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미지수인 주식이다”라고 평가했다. 쿡의 말대로라면 미지수였던 오바마라는 주식은 때를 제대로 만나 계속 상종가를 치고 있는 셈이다.

선거에서는 추세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오바마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있는 클린턴에 비해 바람을 타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갤럽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1년 전인 2007년 2월11일, 클린턴은 ‘민주당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48%를 얻어 23%에 그친 오바마 의원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린턴의 지지율이 이후 2~3개월 단위로 이루어진 조사에서 42~45%를 기록하며 부진한 사이에 오바마는 33%까지 획득하며 치고 올라갔다. 올해 1월13일의 조사에서 힐러리는 45%의 지지율를 기록했고, 오바마는 3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추세는 외부의 여러 가지 요인과 맞물려 변화할 수 있다. 작은 선거구이지만 미국 대선의 첫발을 디딘다는 측면에서 상징성이 매우 큰 1월3일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오바마는 38%의 지지를 얻어 29%에 그친 클린턴을 제쳤다. 첫 선거전에서 클린턴을 이기자 언론 매체들은 오바마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오바마의 전국적인 지지도가 상승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갤럽의 조사에서 유일하게 오바마가 클린턴을 따라잡은 순간이기도 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의 결과가 발표된 직후의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는 클린턴과 같은 33%의 지지도를 기록해 동률을 이루었다. 첫 선거구의 승리가 상승 추세를 형성하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오프라 윈프리의 지지가 유권자 믿음 굳히는 데 큰 역할

 
오바마가 첫 선거구에서 승리를 거두고 뉴햄프셔에서 클린턴과 접전을 벌인 이후 그는 큰 선물을 받았다. ‘흑인층의 결집’이 그것이다. 흑인인 오바마를 흑인층이 당연히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흑인과 여성 등은 정치적 약자라는 점에서 민주당에 호의적이다. 이들을 둘러싼 민주당 후보들의 전투는 치열하다. 특히 클린턴이 여성 표를 획득하는 데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흑인들의 표가 어디로 흐를 것인가는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보수적 흑인층에서는 오바마를 반기지 않았다. 오바마는 전형적인 ‘아프리카 아메리칸(미국 흑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콜롬비아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거친 엘리트이다. 백인 사회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흑인층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과연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흑인층이 지지하기 어려운 점이었다. 하지만 클린턴과 대등한 승부를 벌이고 흑인층의 큰 별인 오프라 윈프리가 오바마를 위해 발 벗고 나서면서 ‘오바마는 안 된다’라고 했던 흑인 사회의 흐름이 바뀌게 되었다.

선거전에서 상승 추세는 결국 무서운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지난 2월20일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그비’가 발표한 대통령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바마는 52%의 지지를 얻어 38%의 지지율을 획득한 클린턴을 상당히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한 달여 만에 두 후보의 처지가 뒤바뀐 셈이다.
위스콘신과 하와이의 경선 결과가 발표된 이후 오바마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는 보도가 점점 늘고 있다. 공화당 후보로 유력한 존 매케인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오바마의 승리를 전망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반면에 클린턴은 38%의 지지를 획득해 50%를 얻은 매케인에게 완패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경선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후보와의 본선 경쟁력을 의식하게 된다. 올해는 여러 모로 민주당 후보에게 유리한 정세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대선의 승패를 점칠 수 있는 2006년의 중간 선거에서 승리한 기세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는 선거자금 모금에서 드러난다. 공화당 정권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은 선거자금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2007년 선거자금 모금 결과를 보면 1위는 클린턴이, 2위는 오바마가 차지했다. 민주당 후보들이 모은 정치자금의 총액은 5천3백40만 달러로 공화당 후보들의 모금액을 크게 웃돌고 있다. 권력이 보이는 곳에 돈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미국인들이 주목하는 선거의 쟁점도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갤럽이 조사한 ‘미국민이 꼽은 중요한 문제’의 결과를 보면 지난해 6월 조사에서는 ‘경제’가 31%, ‘이라크 전쟁’이 23%를 차지했다. 하지만 각 당의 대선 후보 예비 경선이 시작된 올해 1월10일 조사에서는 ‘경제(35%)’와 ‘이라크 전쟁(25%)’의 차이가 더욱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 등으로 미국 경제의 하강 조짐이 뚜렷한 책임 소재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시점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본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를 지지하기는 어려워진다. 오바마가 매케인에게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지속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오바마를 더욱 신뢰하게 되고 그 신뢰는 클린턴과의 민주당 예비경선의 승리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14일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오바마의 약진, 클린턴의 부진을 두고 “공화당의 존 매케인과 맞붙을 경우 승리를 확신하지 못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당의 경선을 통과한 흑인 대통령 후보가 탄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물론 본선인 11월4일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지만 지금의 미국 정세를 짐작해보건대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예측하는 것도 그리 호들갑스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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