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어디를 성형할까?
  • 김지혜 기자 karam1117@sisapress.com ()
  • 승인 2008.02.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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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캠퍼스 새내기들에 ‘수능 성형’ 인기몰이 ‘막무가내’ 수술 후 만족 못해 집착 보이기도

현재 입학을 앞둔 예비 대학생들의 상당수는 수능을 거쳐 ‘제2의 대학 입시 관문’까지 넘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업그레이드 된 외모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화려한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 이른바 ‘수능 성형’을 마무리한 것이다. 논술은 상위권 학생들만 보지만 여기에는 성적과 관계없이 관심 있는 학생들이 대거 몰려든다. 인터넷에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모으고 먼저 경험한 ‘선배’의 조언도 듣고 전문가에게 상담도 받는다. 친구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것은 기본이다.
수능 바로 다음날부터 2월 초까지 성형외과가 몰려 있는 압구정동 4,5번 출구 근처에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로 붐볐던 것은 ‘성형 투어’ 때문이었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의사와 상담하고 병원을 돌며 가격 비교도 하기 때문에 ‘성형 쇼핑’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압구정동 성형외과들에 따르면 겨울 성수기 수술 20~30% 정도가 고등학생들이 하는 ‘수능 성형’이라고 한다.

 

‘얼짱’ 겨냥한 남학생들 성형도 갈수록 증가 추세

고등학생들이 성형수술을 생각하는 방식은 예전과 달라졌다. 화장을 하고 치아 교정을 하듯 아름다워지기 위한 개인적인 선택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수술 사실을 밝히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수능이 끝나고 며칠 지난 후 마포구에 있는 한 인문계 여자 고등학교의 복도. 한 학생의 주변에 아이들이 모였다. “예뻐졌다. 어느 성형외과에서 했니? 아프지 않니?” 따위 질문이 쏟아지고 학생은 이것저것 대답하느라 정신이 없다. 비난이나 수군거림보다는 호기심과 부러움이 많다. 지나가던 선생님도 “많이 달라졌다. 우리 아이도 해주려고 하는데 어디
서 했니?”라고 묻는다. 얼마 전 쌍꺼풀 수술을 한 김정선양(19)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녀는 주변에 수능이 끝난 후 성형수술을 한 친구들이 많다며 “외모가 달라진 아이들은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멋진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렌다”라고 말했다.
성형수술을 한 친구를 흘끔거리며 보던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이 고등학교는 보통 한 반 학생 30명 가운데 네댓 명 정도가 성형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중에 한두 명은 수능전에 방학을 틈타 일찌감치 성형수술을 마친 경우이다.
‘수능 성형’이라는 추세가 ‘중·고등학교 재학생 성형’으로도 번지고 있다. 이미 이들의 비율이 총 성형 인구의 5%는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드물게는 초등학생도 한다. 압구정 서울 성형외과 이민구 원장의 말에 의하면 ‘아이참(쌍커풀 만드는 일회용 스티커)으로 원하는 쌍꺼풀을 만들때까지 학교에 안 가거나 지각하는 자녀를 보면서 속이 터져서’ 병원을 찾는 부모들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남학생들의 ‘수능 성형’도 부쩍 늘었다. 박상훈 성형외과 원장은 “수능 성형의 10~20%는 남학생이다. 이들 사이에서 티가 거의 나지 않는 ‘권상우 쌍꺼풀’은 이미 유명하다”라면서 여학생들처럼 공개적이지 않을 뿐 대학 입학 때 멋진 외모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은 비슷하다고 전했다. S재림 성형외과 박재우 원장은 “얼굴도 잘 생기고 공부와 운동을 모두 잘하는 남학생이 있었는데, 키 1백90cm에 몸무게가 무려 1백40kg이었다. 여학생들로부터 친구로는 좋지만 남자친구로는 싫다는 말을 듣고 지방흡입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라면서 얼짱, 꽃미남 등 날씬하고멋진 외모를 선호하는 문화가 여학생 위주의 ‘수능 성형’에서 ‘남학생 수능 성형’으로 확산되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학생들에게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원정 성형 수술족’ 역시 압구정에 위치한 성형외과들의 주요 고객이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전후해서 성형수술을 받고 나가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들은 서구적인 외모를 많이 접해서 그런지 진한 쌍꺼풀이나 과감한 몸매로 수술하는 경향도 보인다고 한다.

“친구 데려가면 할인해준다” 소문에 단체로 몰려가기도

서울성형외과 이민구 원장은 “비만 남학생의 경우 봉긋한 모양의 ‘여성형 유방’을 가진 경우가 많아서 옷도 마음 놓고 못 입고 목욕탕에도 안갈 만큼 심한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이런 학생들이 가슴 성형을 받고 자신감을 얻을 때 의사로서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대다수 학생과 부모들도 ‘수능 성형’의 가장 큰 장점이 ‘자신감을 얻는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면서 과도한 집착이 아니라면 성형에 대한 편견을 가질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형외과 의사들은 현장에서 학생들을 대하다 보면 ‘과연 이들이 성형을 결정할 만큼 성숙했는지’ 의심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상당수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다는 강한 동기나 성형에 진지한 고민이 없이 ‘친구들이 하니까’ ‘지금보다 예뻐질 것 같아서’와 같이 막연한 이유로 수술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후회한다면서 완전히 성인이 될 때까지 시간을 두고 결정할 것을 권했다.
‘고등학생 상담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 의사들의 토로는 성형을 결정할 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고등학생들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인터넷을 통해 성형 성공 사례만을 접하면서 환상은 커지고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일시적인 유행을 따르는 경향도 있다. 의사의 권유를 가장 안 따르는 층도 10대이다.
신촌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안병준 원장은 “ 매몰법, 절개법 같은 전문 용어를 쓰면서 쌍커풀을 몇mm 해달라고 요구하는 학생들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수술 방법과 정도는 사람마다 달라야 하고 의사들도 심사숙고하는 부분인데 인터넷에서 성공한 케이스만 보고 해달라고 우길 때면 난감하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일부 성형외과들은 판단력이 약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법이 금지한 ‘환자 유인행위’를 한다. 수능을 본 학생들에게 50% 할인 쿠폰을 발행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특별 할인을 제공하는 식이다. 성형외과들간 경쟁이 심화되고 서로 고발하면서 다소 줄어들었지만 공공연한 ‘학생 손님 끌어오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유명한 성형외과에서 눈과 코 수술을 받았다는 김 아무개양(19)은 “친구를 데리고 간다고 했더니 100만원을 할인해주었다”라면서 ‘친구 동반 할인’으로 한 반에서 서너 명이 같은 성형외과에 가는 일은 흔하다고 했다. 고등학생들이 입소문에 유난히 더 솔깃해하는 심리를 이용해 성형 욕구를 부채질하는 셈이다.
안원장은 “성형수술을 한 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학생이 10%는 된다. 상담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과도하게 성형에 집착하거나 자아가 약한 사람은 돌려보내곤 한다. 하지만 수술 후 예상치 못하게 병적인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항상 나타난다” 라면서 성형 후 회복 과정에서 과도한 불안을 보이거나, 충분한 결과인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수술에 집착하는 이들에게는 진심으로 정신과 치료를 권하고 싶다고 했다. 심한 경우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성형수술에 대한 환상이 크거나, 자아가 약한 학생일수록 이런 현상이 심하다며 고등학생들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성형 열풍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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