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당하느니 공장 빼고 말지”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2.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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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 불탄 공장 증축 놓고 이천시와 ‘불협화음’ “지역 경제 무너진다” 주민들 반발

 
CJ 그룹이 운영하는 이천 육가공 공장의 이전을 둘러싸고 지역 사회가 시끄럽다. 이곳은 지난해 11월 화재가 발생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곳이다. 공장은 당시 화재로 생산기반을 대부분 잃었다. 회사측은 피해액만 최소 100억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CJ그룹이 이 공장을 충북 진천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CJ측은 화재로 인한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냥 복구 상황만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CJ그룹의 한 관계자는 “화재 사고로 생산시설이 거의 불에 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조속히 생산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공장 이전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CJ가 육가공 공장의 이전지로 점찍은 진천 산업단지에는 이 그룹이 운영하는 두부 생산 공장 등이 위치해 있다. 육가공 공장이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면 냉장류 생산 라인이 하나의 콜드 체인을 형성하게 된다. CJ는 공장 이전으로 이같은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천시·의회, 부랴부랴 조례 개정 추진

하지만 하이닉스 공장 증설 문제로 홍역을 앓았던 이천시 지역 사회에서는 또 하나의 대기업 공장이 이천시를 떠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이천시의 한 고위 관계자는 “CJ 이천 공장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 이같은 효자 기업을 떠나보낼 이유가 없다. 가능하다면 잡고 싶은 것이 시의 솔직한 심정이다”라고 밝혔다.
이천시는 CJ그룹과 공장 이전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최근 CJ그룹 본사 임원과 공장장이 시장실을 찾아와 이전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장 이전이 이천시와 CJ측의 ‘불협화음’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CJ가 시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공장을 옮긴 것으로 현지 주민들은 보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화재가 난 공장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이천시와 CJ그룹이 갈등을 겪었고, 결국 CJ측이 진천으로 공장 이전을 결심하게 된 것
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천시가 최근 관련 조례를 개정하려는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CJ측을 압박하려는 조치로 여겨지고 있다. CJ 육가공 공장이 떠난 자리는 물류센터로 활용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이천시와 이천시의회가 대형 물류창고 건립을 규제하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천시측은 “대형 물류 창고와 같은 시설은 부지만 잡아먹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용 창출 효과를 내려면 조례 개정이 불가피하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움직임이 주민들의 눈에는 ‘CJ 발목 잡기’로 비쳐지고 있다. 드러내놓고 이전을 반대할 수는 없지만 시의회를 동원해 공장 이전을 막기위한 방편으로 조례를 개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CJ그룹의 이번 공장 이전이 사실상의 공장 증축에 대한 시의 규제 때문에 비롯된 것이 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CJ 공장의 경우 그동안 화재가 난 공장과 인근 창고를 합해 증축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천시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충북으로의 이전을 강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자는 지난 2월19일 CJ 이천 공장을 찾았다. 화재가 발생한 지 세 달 여가 지났지만 이천 공장은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불이 나 흉물스럽게 변한 공장은 펜스로 막아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놓았다.
CJ측은 이천시에 아직까지 건물 재건축을 위한 어떤 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되었다. 이천시의 한 관계자는 “현행 건축법상 화재가 난 건물의 재건축은 허가 사항이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장 재건축에 관한 신고가 접수되어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천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재건축을 위한 설계 도면을 놓고 그동안 CJ그룹과 시가 여러 차례 의논을 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규제가 심해 다들어줄 수는 없었다. 이같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CJ그룹이 공장을 진천으로 이전하기로 한 것 같다”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엄밀히 말하자면 중축 허가를 안 내주는 것이 아니라 못내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수도권에 위치한 제조 시설이나 사무실의 경우 부지 허용 한도가 최대 1천㎡(약 3백평)이 전부이다. 그 이상은 늘리고 싶어도 현행법상 엄격한 규제를 받아 불가능하다. 기존 개발지와 인접해 개발할 수 있는 한도도 최대 3만㎡(약 9천평)만 허가받을 수 있다. 이같은 엄격한 규제로 인해 규모가 큰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견 기업도 사실상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천시 “허가 안 해주는 게 아니라 못해주는 것”

이 관계자는 “이런 법 규정에 매달리다 보니 관내의 모든 기업이 언젠가는 모두 떠나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의 규정대로라면 기존 공장들에게 나가라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규제 때문에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나머지 기업들도 모두 떠나게 될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CJ 공장의 이전에 앞서 현대오토넷도 최근 이천에서 충북 진천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는 종업원만 1천여 명 이상으로 지역의 수익 기반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현대오토넷에 이어 CJ마저 생산 시설 이전에 나서면서 현지에서는 나머지 기업들의 이전 도미노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이천시의 한 관계자는 “현행법은 전두환 정권 시절 때 만들어진 것으로 글로벌 환경에는 맞지 않다. 상황 변화에 따라 좀더 유연하게 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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