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삶의 노래 부르다
  •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 ()
  • 승인 2008.02.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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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이영훈, 한국형 발라드의 전범 만들고 타계

오늘의 음악과 예전의 음악에 대한 비교는 종종 옛 음악의 손을 드는 것으로 끝나곤 한다. 이는 어쩔 수 없다. 지금의 음악 애호가는 과거의 음악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지금의 음악과 앞으로의 음악이란 과거의 음악에 대한 대체물이다. 그렇게 보면 음악 애호가란 오리와 비슷하다. 오리가 알에서 깨어 ‘처음 보는 것’을 어미로 알고 따르듯 음악 애호가 역시 귀를 ‘처음 열어 준’ 존재를 음악적 어미로 받아들인다. 지금 30~40대 음악 팬들 중에는 자신의 ‘음악적 어미’가 이문세의 노래였던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의 새로운 발라드, 이영훈과 이문세

 
많은 사람들이 이영훈을 ‘이문세의 작곡가’로 기억한다. 이는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일 수는 있다. 이영훈은 타계하기 직전까지 음악을 놓지 않았다. 그는 영화와 드라마 음악을 작곡했고, 신인 가수를 데뷔시켰으며, 자신의 작품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하기도 했고, 초특급 스타들이 참여한 리메이크 음반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모두 이문세와의 음반 작업 외에 그가 했던 활동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들이 이문세와의 작업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음악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이다.
거칠게 볼 때,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새로운 한국형 발라드’는 1980년대 중·후반에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발라드는 이전의 음악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에코로 둘러싸인 보컬, 둔탁하게 울리는 드럼, 얄팍한 느낌의 신서사이저, 반짝거리던 윈드차임, 포크에 영향 받은 부드러운 멜로디, 수줍고 문학적인 가사. 당시 TV를 지배하던 것은 조용필이었지만 심야 라디오에 흐르던 것은 이런 음악들이었다. 조동진, 유재하, 어떤 날, 시인과 촌장, 들국화의 음악들. 그리고 이영훈이 이문세를 만난 것도 1985년이었다.그들이 같이 만든 첫 음반인 이문세의 3집에서는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등이 히트했고, 이 성공은 이문세를 ‘하이틴 스타’에서 ‘진짜 가수’로 바꿔놓았다. 클래식과 재즈의 어법이 적용된 이 음반은 우아한 멜로디와 ‘청춘의 감정’이 만난 음반이었다. 그러나 그 만남이 완전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딱히 흠을 잡을 곳은 없었지만 뭔가 분명히 정리된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런 우려는 1987년에 나온 4집에서 사라진다. 이 음반은 전작보다 더 크게 히트했지만, 음반이 거둔 음악적 성과는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사랑이 지나가면> <깊은 밤을 날아서> <그녀의 웃음소리뿐> 등 음반의 거의 모든 곡에서 이영훈의 정체성이 드러났다. 짙푸른 낭만주의, 서정적이고 울적한 멜로디, 풍성하고 클래시컬하며 완벽에 가까운 편곡 감각. 이는 ‘새로운 한국형 발라드’의 전범(典範)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거기에 대작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있었다. 이영훈 음악의 ‘극적(劇的)’인 성격(이문세를 만나기 전, 그는 무대 음악과 방송 음악 일을 했다)이 정교하게 구현된 이 곡은 지금 들어도 압도적이다. ‘7분짜리 발라드’를 히트시키는 사람은 지금도 거의 없다. 그러나 3분짜리 아니면 방송도 못 타던 그때 그런 일이 가능했다. 이 곡이 그랬다.

이영훈의 절정, 이문세의 5집

1988년에 나온 5집에서 이영훈의 음악적 세계는 실질적으로 완성된다. 이 음반은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런 성공이 일견 놀라울 만큼 탐미적이고 우울한, ‘죽음 앞에 선 삶의 노래들’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음반이었다. <붉은 노을> 정도를 제외한다면 이 음반의 곡들은 모두 단순한 실연 이상의 감정, 즉 ‘진정한’ 상실감과 죽음에 연관된 감정들을 잘 짜여진 멜로디와 풍성한 편곡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문세의 5집은 이영훈(과 이문세) 경력의 절정이자,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탐미적이고 처연한 발라드 모음집이다.

 
따라서 이 음반 이후 이영훈과 이문세의 작업들이 점차 하향세를 보였다는 것은, 결과론적으로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6집과 7집에도 좋은 곡(<해바라기> <옛사랑>)이 있기는 했지만 ‘훌륭한’ 곡은 아니었다. 결별 이후 재결합해 내놓은 일련의 음반들도, 이문세와의 작업 이후 이영훈의 작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일 세 장의 소품집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품집들에서 그는 창작곡과 예전의 히트곡들을 클래식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 들려준다. 창작곡들은 예쁘지만 창백하다. ‘대중가요 악기’와 이문세의 목소리가 없는 편곡은 심심하다. 그의 유작이나 다름없게 된 <The Story Of Musicians: 옛사랑> 시리즈는 그의 곡들을 임재범, 클래지콰이, SG 워너비, 이승철 등의 초특급 스타가 부른 음반이지만 ‘원곡보다 나은 리메이크는 없다’라는 속설을 뒤집지는 못했다.
그는 늘 훌륭한 작곡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저 한때 ‘훌륭한’ 작곡가라고만 부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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