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들은 퇴각 나팔소리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 승인 2008.02.25 15: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7명의 중대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지만…

 
전쟁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삶과 죽음이 교차해 있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모르는 긴장감이 관객들을 다시 긴장시키고 화면 속의 배우가 죽어나갈 때마다, 그들이 사지에서 살아나올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은 같이 죽고 같이 산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엄청난 관객몰이를 한 것도 동생을 살리기 위한 형의 처절한 몸부림이 눈물겨워서였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명작인 이유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한 가족의 마지막 자식을 살리기 위한 미국 정부의 엉뚱한 발상이 결국 구하러간 자들과 라이언 일병 모두를 죽게 하는 아이러니가 있어서였다.

“집결호가 들리지 않으면 끝까지 사수하라”

<집결호>라는 이상한 제목을 단 이 영화에서 집결호의 뜻은, 한자로는 ‘모이라는 신호’인데 영화를보면 그 의미가 퇴각 나팔 소리로 해석된다. 영화는 시작부터 전투 장면으로 관객들의 숨소리를 집어삼킨다. <태극기 휘날리며> <트로이> 등 한국·중국·미국 드림팀이 모여 만들었다는 말답게 전투는 실제 상황을 방불하게 한다. 중국 인민해방군 중대장 구지디(장한위 분)는 이 전투에서 70명의 부하를 잃고 연대 본부로 귀대한다. 남은 인원은 47명. 연대장은 다시 구지디에게 폐광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가 내린 조건은 단 두 가지이다. 집결호가 울리면 즉시 퇴각하라, 집결호가 울리지 않으면 단 1명이 남을 때까지 폐광을 사수하라.

인원 보충도 없이 야포 1문과 맥심 기관총 두 정을 지원받아 사지로 떠나는 중대장 구지디는 가는 길에 자꾸 뒤를 돌아본다. 폐광에 도착한 구지디는 전방이 확 트여 방어가 쉽지 않다고 느끼지만 국민당 군의 기습에 대비해 중대원들을 배치하고 연대본부 영창에 갇혀 있던 교사 출신 왕금존(위안 원캉분)을 지도원으로 임명한다. 왕금존은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겁쟁이로 구지디가 병력이 아쉬워 데려온인물이다. 다음날 정오까지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거듭된 전투에도 집결호는 들려오지 않는다. 탱크를 막기 위해 화염병을 들고 돌진하고 사상자는 늘어만 간다.

중대원들은 7명밖에 남지 않자 서로 집결호를 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중대장 구지디는 듣지 못했다며 고지 사수를 명령한다. 결국 국민당 군의 엄청난 공세에 중대원들은 몰살을 당하고 중대장 구지디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영화는 후반부에서 중대원들의 명예를 위해 그들의 시신을 찾는‘미친’구지디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마침내 그들의 주검 위에서 집결호가 울린다. 47명의 군사들이 그토록 애타게 듣기를 원했던 집결호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구지디가 마침내 그들에게 들려준 집결호. 그러나 퇴각은 없었다.
3월6일 개봉.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