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예 학원에서 잠까지 재우시지요!’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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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는 잠만 재우십시오.” 입시를 담당하는 어느 학원이 전단지 전면에 내세운 문구이다. 말 그대로 집은 학생의 숙소 기능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 외에 학업에 관한 모든 것은 학원이 책임지겠단다.
이 학원은 ‘방과 후 전과목 끝장반’을 운영한다. 집에서 잠만자고 학교 수업 외의 시간을 전부 학원에서 장악해 전과목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서는 오로지 입시를 위한 수업만 이루어진다.
“사교육 시장을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라는 모토는 정권이 들어서고, 장관이 바뀌고,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교육 시장은 비대해지고 있고, 자녀를 둔 가정이 학원비로 압박을 받는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자녀 교육비 부담이 저출산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이다.
공교육을 강화한다면서 정부가 발표하는 교육 정책은 매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교육 시장 판도를 바꾸며 시장 규모를 키워놓는 부작용을 낳고는 했다. 논술이 강화된 입시 정책 덕에 논술 학원에 대박이 났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영어 몰입교육 논란이 일면서 영어 관련 학원들이 사교육계의 왕좌에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영어 교육 광풍의 조짐이 보인다. 영어 유치원과 영어 학원에 학부모들이 몰리고 각 지방 자치단체들은 영어 마을 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은 우리의 부모님들은 영어 관련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는 곳으로 기꺼이 집을 옮길 준비가 되어 있다.
하긴 집이야 ‘잠만 재우는’ 곳이니 어디로 옮기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학원이 다 알아서 해준다고 하니 특목고나 자립형사립고가 아니라면 학교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어느 학원을 선택할지만 궁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물론 비싼 학원비를 감내할 자세는 되어 있어야 한다.
학원가는 당국의 정책 방향에 맞춰 항상 발 빠르게 움직여왔다. 내년 신학기에 등장할 학원 전단지에는 이런 문구가 나오지 않을까.
“집에서는 잠만 재우십시오. 시즌 2-방과 후 전과목 영어로 끝장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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