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등쌀에 적금도 깰 판”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물가 시대 현장의 목소리 / “기름값·학원비 너무 빠르게 올라 겁난다”

 
보통 사람들에게 당장 와닿는 물가고는 기름값과 밀가루값, 학원비를 비롯한 자녀 사교육비인데, 요즘 이를 절절히 실감하고 있다.
서울 창동에 사는 이정남씨(43)는 고등학생·중학생 딸만 둘을 둔 전업 주부이다. 이씨는 “물가가 통상적으로 오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요즘은 너무 빠르게 올라 겁이 난다”라고 말했다. 공무원인 남편 봉급은 뻔한데 식료품 구입 비용이 갈수록 늘고 학원비는 너무 가파르게 올라 걱정이 크다는 것이다. 이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도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씨 가정의 생활을 가장 크게 압박하는 것은 학원비이다. 방학 때마다 특강비다 뭐다 해서 부담이 늘어나는 데다 최근 단과반 학원비가 과목당 3만원 정도씩 올랐다. 이씨는 “사실 먹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많이 오르지 않았다. 학원비는 당국의 규제를 받는데도 왜 이렇게 오르는지 모르겠다. 학원을 안 보낼 수도 없고…”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녀에게 물가가 지금처럼 계속 오른다면 무엇부터 줄이겠냐는 질문을 하자 “매달 나가는 적금이나 학원비를 빼고는 더 이상 줄일 게 없다. 굳이 줄인다면 적금을 깨야겠다”라고 말했다.
이씨와 비슷한 또래의 서울 강남 주부들에게도 물가 오름세는 큰 걱정거리였다.
청담동에 사는 김미혜씨(45)는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두고 있다. 인근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씨는 아이들 학원비와 기름값, 과자값으로 고물가를 실감하고 있다. 김씨가 사는 동네의 학원비도 지난해 가을께 올랐다. 학원비 단가는 강북보다 강남 쪽이 평균적으로 비싸다. 단과반의 수강료는 30만원 안팎으로 비슷했지만 수학 등 일부 과목은 과목당 40만원선을 훌쩍 넘는다. 강남 주민이나 강북 주민 모두 과중한 사교육비에 대한 체감도는 비슷했다. 김씨 역시 “학원비가 식음료비보다 더 무섭다”라고 토로했다.

“수입은 그대로, 대출 이자는 못 줄이니 결국 식비 줄여야”

각종 물가가 오르면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려 사실상 가격을 올리는 사례도 많다.
김씨 가족이 즐겨 찾는 동네 추어탕집 음식 가격이 지난해 11월에 1인분 7천원에서 8천원으로 올랐지만 양도 적어지고 더 묽어졌다고 한다.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일대 음식점의 경우 주차료를 1천원에서 2천원으로 인상해 결국 음식값을 올려놓은 셈이다.
김씨 가족은 빵이나 과자류를 즐겨 먹는다고 했다. 최근 동네의 제과 체인점에서 내놓는 제빵류 대부분이 크게 부풀리기만 했을 뿐 내용물은 전보다 훨씬 부실해졌다. 이들은 종전과 같은 돈을 내고 지금은 질이 떨어지는 빵을 먹게 된 것이다.
실제 지난 2월27일 세계 곡물시장에서 밀가루값은 하루 사이에 22%나 폭등했다. 이런 가격 폭등세는 국내 제과업계에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울 삼성동에서 제빵사로 일하는 박현웅씨(28)는 “밀가루값 인상, 빵값 인상에 손님들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제과점 업계의 매출은 이미 크게 줄어들었다. 이제 종업원을 줄여야 할 판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박혜리씨(39·일산 거주)도 아이 간식을 살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다섯 개에 1천원 하던 붕어빵이 네 개 1천원으로 바뀌었고 떡볶이 1천원어치의 양이 이전의 절반으로 줄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있는 박씨의 집에는 차가 한 대 있고 그 차를 외근이 잦은 남편이 출퇴근용으로 쓰고 있어 기름값 부담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인터넷으로 기름값을 비교 검색해서 싼 곳만 골라 주유를 하고 있지만 값이 더 뛸 경우 이들 부부는 서울 외곽으로 나온 일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내 집 마련을 하기 위해 서울 밖으로 나왔지만 오르기만 하는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생활의 질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원유값이 올라 휘발유값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단기간에 너무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은 문제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배려해서 충격을 완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서울 개봉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선희씨(53)는 자녀 둘을 모두 대학을 졸업시킨 전업 주부이다.
남편이 말단 공무원이어서 벌이가 시원치 않은데 5년 전 자택을 마련하면서 빌려 쓴 은행 돈의 이자를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 매달 지급해야 할 대출 이자는 늘어나는데 생필품값이 오르자 가계 부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서민들에게는 앞으로 우려되는 생활고가 더 큰 고민거리

김씨는 “많은 사람들이 은행 돈을 대출받아 내 집 마련을 한다. 물가가 올라 생활비를 아껴 쓰고 싶어도 대출금과 이자를 줄일 수는 없다. 결국 식비에 손을 대는데, 그래서 먹고사는 것이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형 할인마트와 집 근처 재래시장의 가격을 꼼꼼히 따져보고 장을 본다고 했다. 김씨는 “밀가루값은 50%가 올랐고 라면값이 오른다고 했는데 아직 정식으로 올려 받고 있지는 않다. 요즘 야채 가격은 할인점보다 재래시장이 더 싸서 재래시장을 자주 이용한다. 생활이 팍팍해지다 보니 물가가 오르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사실 김씨에게는 당장의 고물가 못지않게 앞으로 우려되는 생활고도 고민거리이다. 남편이 2년 뒤면 정년 퇴직을 한다. 과연 남편의 퇴직연금으로 현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서 언론에서 ‘공무원 연금 개혁안’ 소식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한다. 김씨는 “이런 속도로 물가가 오르면 자녀들이 용돈을 준다고 해도 연금으로 살기 힘든데 연금마저 줄인다는 쪽으로 자꾸 얘기가 나와 불안하다”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