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깍두기? 조직 폭력도 국제화 시대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 승인 2008.03.0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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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접수한 나이지리아 조폭, 무법천지 해외 폭력 조직 27개파 전국에서 ‘암약’ 중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지구대 뒤쪽은 일명 ‘나이지리아 거리’로 통한다. 나이지리아인들이 몰려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그동안 이태원은 영어권 사람들의 동네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과 이태원 상권의 침체가 맞물려 이태원의 명성은 사그라들고 있다. 영어권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줄어들었다. 그 자리에 어느새 아프리카인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의 나이지리아 거리가 만들어진 것은 2000년대 초반. 이태원 상인들에 따르면 그 이전에는 주로 가나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이지리아 거리는 낯선 이방인에게 폐쇄적인 곳이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자신들만의 터전을 만든다. 한국인도 이곳에서는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나이지리아 거리에서 ‘Mobile African’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나이지리아인 주꾸 씨는 올해 한국에 온 지 17년째이다. 주꾸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인들의 커뮤니티 대표를 맡았다. 한국말이 유창한 그는 “나이지리아인들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열심이다. 나이지리아와 관련한 비즈니스 상담은 언제든지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거리는 이태원 내에서는 ‘범죄 사각지대’로 불린다. 나이지리아인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 신분이다 보니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함으로써 보호망을 치고 있다. 이들은 낮에는 옷 등 생활 필수품을 대량으로 구입해 자국에 파는 ‘보따리 무역’을 하다가 밤에 이태원에 몰려든다.
최근에는 자생적인 범죄 조직도 뿌리 내렸다. 일명 ‘이태원파’이다. 이들은 실체를 숨기면서 유흥가를 중심으로 각종 범죄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마약 거래가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아프리카 지역의 값싼 대마초를 대량으로 밀반입하거나, 한국인 여성을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하다가 국정원과 검찰에 적발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나이지리아인들에 의한 범죄가 늘어나자 국정원은 범죄 피해 방지를 위한 안내책자를 만들어 국내외 주요 기관 등에 배포하기도 했다.
경찰이나 출입국사무소 등 관할 기관의 단속은 소극적인 자세에 머무르고 있다. 형사 사건이나 범죄 신고가 접수되기 전에는 수수방관하는 모습이다. 불법 체류자 단속도 적극적이지 않다. 때문에 나이지리아 거리는 치외 법권 지대나 무법천지가 되다시피 했다.
서울출입국 사무소 감사과의 정 아무개 조사관은 “서울 지역의 불법 체류자 단속은 상시로 하고 있다. 이태원의 경우 미국인 등 정상적인 체류자가 많아 특별한 사건이 접수되었을 때나 단속을 실시한다. 아직까지 불법 체류 중인 나이지리아인들을 단속하거나 검거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용산경찰서 이태원 지구대 경찰관들에 따르면 “폭력 사건이나 범죄를 저질러 지구대에 신고가 접수되거나 붙잡혀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나이지리아인들이 신고할 리도 만무하지만, 나이지리아 거리에 있는 한국인 상인들이 보복을 두려워해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국내 주먹들과 나이지리아 주먹들의 세력 다툼은 없다고 한다. 일단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다가 일부러 부딪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의 영역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정경훈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사무국장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태원의 물이 흐려졌다. 폐쇄적인 성향이다 보니 이태원의 또 다른 이방 지대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태원에 나이지리아 조직이 있다면 서울 가리봉동과 안산 원곡동에는 중국의 흑사회 등이 있다. 또 주요 외국인 거점마다 일본 야쿠자, 러시아 마피아 그리고 제3국의 폭력 조직들이 은거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다.
 

무역이나 관광 명분으로 들어와 각종 이권에 개입해

지난 2002년 이후 국내와 연계된 국제 범죄 조직은 30여 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06년 국정원이 원혜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내 진출 해외 폭력 조직 현황’을 보면 27개파가 진출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적별로 보면 러시아 마피아(10개 조직), 일본 야쿠자(일본 내 21개 조직 중 5개 조직), 중국 범죄 조직(7개 조직), 기타(5개 조직)이다.
러시아 마피아와 일본 야쿠자 등 국제 범죄 조직들은 무역이나 관광 등과 같은 명분으로 국내에 입국해 국내 조직과 연계하는 등의 방법으로 거점을 구축했다. 러시아 마피아들은 국내 수산 업체와 연계하는 등 오래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 야쿠자는 국내 조폭 세력과 공모해 부동산 거래와 마약 밀매 등에 손을 대왔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악명을 떨치고 있는 해외 폭력 조직은 중국의 흑사회이다. 경찰청이 ‘흑사회에 대해 알아봅시다’라는 자료를 낼 정도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흑사회는 ‘어둠의 자식들’이라는 뜻으로 중국 본토의 폭력 조직을 통칭하는 말이다. 홍콩·마카오·타이완 등에서는 ‘삼합회’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세력별로 나누어 보면 복건성 삼진회, 연길 광주 황사장파, 연길 강동화파, 심양 보석파, 위해 광명파, 심양 연길파, 북경 경덕파 등이다. 이외에도 뱀파, 호박파, 상해파 등이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중국 폭력 조직들은 주로 조선족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근거지로 삼고 있다. 서울 가리봉동, 대림동, 가산동, 독산동, 봉천동, 신림동, 안산 원곡동 일대가 활동 무대이다.
최근까지 국내에서 벌어진 토막 살인 사건 등 각종 강력 사건에는 흑사회 조직원들이 개입해왔다. 이들은 국내 폭력 조직과 손잡고 마약, 밀수, 살인, 청부 등 각종 범죄에 개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선족 동포들의 체불 임금을 받아주는 청부업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한국 범죄 조직이 조선족을 고용해 채권 해결 등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동남아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자생적인 이주자들의 폭력 조직도 생겨나고 있다. 한편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에서는 외국인의 마약과 위조 지폐, 국제 범죄 단체와의 연계 등을 집중 감시하고 있다. 특히 점차 조직화하고 있는 외국인 범죄 단체의 움직임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국정원 국제범죄정보센터 담당관은 “국내에 외국인 범죄조직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국제조직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연계하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아직 대형 조직화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조직화할 위험성이 있다. 우리는 이중삼중으로 감시시스템을 작동하고 있다. 국제 범죄조직원이나 요주의 인물이 국내에 입국하면 24시간 밀착 감시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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