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세르비아!’ 5백년 만의 환호
  • 조흥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03.03 17: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소보 독립 선언에 세르비아 전역 패닉 상태 미국·러시아 등 국제 관계 이해 얽혀 해결 난망

 
코소보가 지난 2월17일 독립을 선언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코소보 인구 2백50만명의 95%를 차지하는 알바니아인들이 세르비아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이다. 세르비아의 압제가 얼마나 지독했으면 등판에 ‘굿바이 세르비아!’를 새긴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누비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을까. 수도 프리슈타나를 비롯한전국에서 알바니아인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인구 30만명의 수도에서는 거의 전시민이 거리를 메웠다. 환호와 열광의 열기는 영하 10°의 추위도 녹였다. 그들은 웃고 울고 노래 부르고 국기를 흔들었다. 6백여 회의 전쟁을 치르며 5백년을 기다려온 독립이고 자유이다.
그러나 코소보를 잃은 세르비아인들은 어머니를 잃은 아이처럼 슬펐다. 분노가 치밀고 배신감마저 느꼈다. 폭동이 일어나고 미국 대사관을 비롯해 외국 대사관 대여섯곳에 불까지 질렀다. 세르비아 전역이 증오로 들끓었다.
코소보의 독립을 저지하려는 세르비아의 결의가 마지막 발작인지 발칸 반도를 뒤흔들 대지진의 전조인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두 인종 간 증오가 너무 뿌리 깊고, 5백년의 역사도 피로 얼룩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친 서방 노선을 표방하며 알바니아인과의 화해를 모색했던 사람들마저 복수를 별렀다. 슬로보단 밀로세비치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함께 손잡고 거리를 누볐던 어제의 동지는 어느새 원수로 변했다. 코소보의 독립에 대한 세르비아의 상실감에 세르비아인 자신들마저 놀라고 있다. 유리창이 깨어지고 외국 대사관이 공격을 받던 지난 2월21일 밤의 폭동을 본 시민들은 스스로의 폭력성에 치를 떨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을 향한 증오도 대단했다. 이들은 “그들에게 침을 뱉고 싶다. 단지 힘이 세다는 이유로 코소보를 빼앗아갈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세르비아인들에게 코소보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온 고향 땅이자 자존심 자체이다. 하지만 코소보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 밀로세비치가 인종 청소라는 이름으로 알바니아인들을 학살한 만행으로 인해 세르비아가 코소보를 지배할 수 있는 도덕적·법적 근거는 소멸했다는 것이다.
코소보 독립을 반기는 워싱턴과 브뤼셀의 관리들은 코소보에 대한 세르비아의 끈끈한 인연을 과소 평가한 것 같다. 이쯤 되었으면 세르비아도 미련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가기를 바라는 것이 미국과 유럽의 바람이다. 또다시 알바니아인들과 전쟁을 벌여 고립을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공기는 딴판이다.
코소보의 독립은 1991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와 함께 유고슬라비아가 분할된 이후 발생한 일련의 분리 독립 분쟁 중 최대의 사건이자 세르비아에게는 최악의 사건이다. 산산조각 갈라지는 유고연방을 속절없이 바라보던 몬테니그로도 2006년 세르비아와의 유대를 단절했다. 밀로세비치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을 때만 해도 세르비아는 희망에 부풀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언젠가는 유럽연합(EU)에도 가입해 잘 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세르비아 국민은 코소보 독립은 모든 기대를 앗아갔다고 생각하고 있다.
10만명의 군중이 분노를 분출하고 외국 대사관을 공격한 이후 베오그라드는 조용하다. 정상을 회복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불에 탄 미국 대사관 모습과 폭동 진압 장비로 무장한 경찰은 언제 정적이 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자아낸다.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폭동이 세르비아 정부의 사주에 의해 자행된 데 불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세르비아의 미래는 없다는 비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미국 대사관을 지키던 70명의 경찰관들은 엄청난 군중에 압도되었다. 대사관이 불타는데도 증원 병력은 오지 않았다. 정부가 고의적으로 그랬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세르비아 총리는 세르비아 안에 “가짜 국가가 세워졌다”라고 말했다.
 

주변 강대국, “독립 도미노 올라” 찬반 엇갈려

세르비아 정부가 코소보를 자극하면 할수록 알바니아인들의 저항은 강해진다. “코소보의 미래를 축복하지는 못할망정 이처럼 저주해서는 안 된다.” 알바니아인들이 토해내는 분노의 소리이다. 코소보의 전도를 어둡게 하는 것은 내부 갈등만이 아니다. 주변 강대국들도 두 편으로 갈라졌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EU 주요 국가들은 독립을 지지하는 반면 러시아, 중국, 스페인 등은 반대한다.
탄자니아를 방문 중인 부시 대통령은 코소보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 후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 지도자들을 만나 코소보의 독립에 반대하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타이완 독립을 우려하는 중국은 러시아의 노선에 동참하고 있고, 스페인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을 고무할까 두려워 코소보 독립에 부정적이다. 강대국들 외에도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터키는독립을 지지하고 아제르바이잔, 루마니아, 그루지아, 스리랑카,베트남, 터키 등은 반대한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2월18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코소보 사태를 논의했으나 합의된 성명을 발표하지 못했다.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누구도 향후 사태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주변 상황이 아무리 복잡해도 코소보의 탄생은 정당하고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17년 전 슬로베니아에서 유고 분할 전쟁이 터진 이후 끝없이 계속된 유혈 사태를 종식하는 차선의 대안이 코소보 독립밖에 없다는 것이다. 코소보 독립이 초래한 갈등이 아무리 커도 그렇지 않은 경우의 비극보다는 낫다는 판단이다. 세르비아는 인종 청소 게임에서 패배했다. 그때 생긴 상처는 치유할 수 있는 선을넘었다. 코소보 독립을 지연시킬수록 발칸 반도의 안정은 멀어진다. EU회원국 27개국 중 20개국 이상이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될 경우 코소보 독립을 승인하겠다고 밝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한 국가의 독립에 만장일치의 축복을 내려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대세를 따르는 것이 순리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이 전례 없이 같은 보조를 취하고 있다.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을 화해시키려는 노력은 지난해까지도 실패했다. 세르비아는 지금까지 코소보의 알바니아 민족을 도닥거리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1987년 4월24일 독재자 밀로세비치가 코소보에 가서 알바니아인들의 독립을 허용하는 것은 조상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부터 두 민족의 화해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밀로세비치는 코소보 탄압을 이용해 유고를 슬라브 국가로 바꾸려 했다. 그 와중에서 크로아티아와 마케도니아가 독립했다. 그러나 코소보는 제 갈 길을 가서는 안 되는 최후의 ‘죽은 국가’ 로 남았다. 코소보 독립은 이 죽은 국가를 되살려낸 것이다.
알바니아인들은 코소보 인구 중 95%를 차지한다. 나머지 5%의 세르비아인들은 다수의 알바니아인들을 죽이고 탄압하고 추방했다. 1999년 나토가 개입할 때까지 만행은 계속되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증오의 강은 이때부터 흐르기 시작했다. 코스튜니차 세르비아 총리는 코소보의 독립은 단 1분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르비아의 집착은 증오를 사랑하는 허무주의 수준에 이르렀다. 1999년 유엔이 결의안 1244호를 통해 코소보의 자치권을 유엔과 나토의 보호 아래 둔다고 선언한 뒤에도 세르비아는 변하지 않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