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든 살든 붙어보자” 낙하산 탄 장수들 중원의 ‘끝장 대결’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 승인 2008.03.1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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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거물급 인사들, 당 호출 받고 수도권 집결 종로구·중구 등 ‘전략 요충지’에서 정면 승부 예고

 
4·9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빅매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이 지역에 통합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의 간판급 정치인들이 출사표를 던지며 ‘바람몰이’에 나설 예정이다. 한나라당도 전략 공천을 통해 ‘바람 재우기’로 맞설 태세여서 유력 정치인들의 격돌로 총선전이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수도권은 의석 수에서부터 다른 지역을 압도한다. 서울 48석, 인천 12석, 경기 51석 등 총 1백11석으로 전체 지역구 의석 2백45석의 45%에 이른다. 각 정당이 이 지역에 사활을 거는 이유이다. 특히 영남과 호남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양분하고 있어 총선 승부는 결국 수도권 쟁탈전에서 판가름이 난다.
민주당에서는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과 손학규 대표, 강금실 최고위원 등이 서울이나 경기 지역 출마를 검토 중이다. 당초 호남 지역이나 비례대표를 염두에 두기도 했지만 당내 여론이 ‘수도권 도전’을 요청하고 있어 조만간 결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감지되고 있는 민심의 변화가 이들의 수도권 출마를 재촉하고 있다. 당초 이번 총선은 한나라당의 압도적 우위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과반을 훌쩍 넘어 2백석 내외의 성적을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야당에서는 ‘해보나 마나 한 게임’이라는 패배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새 정부의 인사 파동으로 촉발된 민심의 동요가 공천 후폭풍과 맞물리면서 예상치 못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여당의 ‘안정론’이 감소하는 반면 야당의 ‘견제론’이 차츰 힘을 얻는 분위기이다.
지난 3월4일 현대리서치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안정론 대 견제론은 45.3% 대 42.5%로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한 달 전 안정론이 상당한 우세를 보였던 것과는 다른 결과이다. 50%를 웃돌던 한나라당 지지도 역시 40%대 초·중반으로 내려앉았다. 15% 안팎에 머무르고 있는 민주당과의 격차가 여전히 크지만 그 간격이 점차 좁혀지는 추세이다.
‘수도권 전멸’을 우려했던 민주당 내에서는 ‘해볼 만하다’라는 기대감이 되살아나고 있다. 유력 정치인들이 수도권에 출마해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이유이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거론하며 간판급 인사와 호남 중진의 수도권 출마를 요청하고 나섰다.

정동영·손학규, ‘종로구·중구 쌍끌이’ 나서나

 
당내 여론도 대체적으로 수도권 출마를 요구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정동영 전 장관과 손학규 대표가 서울 종로구와 중구에 출마해 수도권 돌풍을 이끄는 ‘쌍끌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을 대표하는 두 정치인이 선거 최전선에 직접 참여해 총선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지난 3월4일 자신의 ‘텃밭’ 전북이 아닌 서울 지역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요구한 당 지도급 인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나 자신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반면 서울 어느 지역구에 출마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했다. 그는 “서울의 어느 지역도 쉬운 곳이 없지만 최종 출마 지역은 전적으로 당의 결정에 따를 것이다”라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이 출마 지역구를 결정하지 못한 이유는 정치적 상징성을 살리면서 당선 가능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역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17대에 이어 18대까지 원외가 될 경우 향후 정치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지만 이 경우 ‘당을 살리겠다’는 출마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정 전 장관의 한 측근은 “공천심사위원회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정면 돌파 쪽으로 이미 가닥을 잡았다. 현재로서는 서울 출마라는 원칙만 확정해놓은 상태이다. 당 지도부의 입장도 있고 해서 지역구 선택은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의 출마 예상 지역구로는 종로구와 중구를 비롯해 구로 을, 동작 을, 서대문 을, 관악 을 등이 거론되어왔다. 이 중 관악 을은 이 지역의 ‘터줏대감’ 격인 이해찬 전 총리가 “정치적 도의에 맞지 않다”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치 1번지’ 종로구 출마 가능성이 힘을 얻는 분위기이다. 당 관계자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 지역이 괜찮게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구로 을과 동작 을도 검토 대상이지만 정치적 상징성에서 종로구에 뒤처지고, 강금실 최고위원의 출마 예상 지역과 겹쳐지는 부분도 있어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중구는 손학규 대표의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지역구이다. 당내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비례대표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손대표 스스로 ‘지도급 인사들의 살신성인’을 강조해온 만큼 지역구 출마를 통해 총선 정국을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동영 전 장관이 종로구, 손대표가 중구에 출마할 경우 이 두 곳을 진앙으로 삼아 수도권 전체에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손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마포에서 중구로 이사한 것도 이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었다.
반면 손대표가 도지사를 지낸 경기 지역에서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고향인 시흥과 함께 경기지사 시절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던 파주 등이 거론된다. 정치적 상징성에서 떨어지지만 당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다. 손대표 역시 출마 지역 결정을 앞두고 정 전 장관과 마찬가지의 고민을 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강금실 최고위원도 상황을 지켜본 후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출마에 대한 당내 요구가 일고 있지만 구체적인 확답은 삼가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내심 비례대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손대표가 지역구 출마를 결정할 경우 강최고위원도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출마 지역으로는 김한길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구로 을이 꾸준하게 거론되고 있다.
 

한나라당 ‘전략 공천’ 맞대응…정몽준, 종로구 출마 가능성도

정동영·손학규·강금실 ‘빅 3’의 결단은 공천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3월 중순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공천 결과도 지켜보고 지역 여론도 더 살펴본 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측면에서이다. 반면 이들 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해온 공천 신청자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가는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종로구에 공천을 신청한 비례대표 유승희 의원측은 “이번 총선은 지역 출마자에게 맡겨야 한다. 중앙에서 전국적인 정치인이 내려온다고 해서 반드시 승산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종로구의 경우 전략 공천을 했다가 선거 후에 빠져나가고 해서 지역 기반이 약해져 있다. 이번에도 그러한 악순환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유의원은 이 지역 출마를 2년여 동안 준비해왔다.
민주당 간판 인사들의 수도권 출마가 가시화하면서 한나라당도 맞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서울 종로구, 중구, 관악 을 등 이들의 출마가 점쳐지는 지역에 대해 전략 공천을 검토하고 있다. 이 지역의 승부가 수도권 전체 판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서 공천을 하겠다는 뜻이다.
정동영 전 장관이 출마를 검토 중인 종로구는 현재 3선을 노리는 박진 의원이 단수로 공천을 신청해둔 상태이다. 초선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을 역임한 박의원은 재선에 성공한 뒤 서울시당위원장을 지내는 등 당내 영향력을 키워왔다. 최근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통일안보분과위 간사를 맡기도 했다.
박의원은 “어떤 거물도 물리칠 수 있다”라는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몽준 최고위원이 이 지역 공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전략 공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박의원측은 “종로가 정치적 상징성이 워낙 강해서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 이 지역에 전략 공천을 한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후 “공천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손학규 대표의 예상 출마 지역으로 거론되는 중구의 경우 현역인 박성범 의원과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최종 공천권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들도 전략 공천과 관련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의원측은 “야당 거물이 나올 것을 염두에 두고 전략 공천을 한다고 하는데,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지역 현안이라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방송인 출신의 박의원은 서울시당위원장을 지냈으며 이번이 3선 도전이다.
구로 을 지역에는 비례대표인 고경화 의원을 일찌감치 전략 공천했다. 고의원은 강서 을에 공천 신청을 했고 1차 공천 통과자 발표 때에도 강서 을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구로 을 지역을 낙점받았다. 이 지역 민주당 후보로 강금실 최고위원이 나올 것을 염두에 두고 ‘여성 대 여성’ 대결을 펼치겠다는 전략적 고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챙겨주기 공천’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국현 “이재오와 대결”…심상정·노회찬도 수도권 도전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5.8%의 득표율을 올려 정치적 가능성을 보였던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는 은평 을 출마를 선언했다. 이 지역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의 ‘텃밭’이다. 3선인 이의원은 현 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으로 최고의 권력 실세로 평가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의 ‘전도사’이기도 하다.
문대표는 “선거 유불리를 떠나 이명박 정부의 사실상 2인자이자 대리인 격인 이재오 의원을 상대로 싸워 승리하는 것이 사람과 환경을 살려온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김동규 대변인은 “여론이 좋다. 지지율 조사 결과에서도 괜찮게 나오고 있고 계속 상승하는 추세이다. 바람이 더 불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문대표의 총선 성적표는 대선 이후 불거진 당내 차입금 논란과 주요 당직자들의 사퇴 등 우여곡절을 겪은 창조한국당이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진보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심상정·노회찬 의원도 이번 총선을 통해 당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지겠다며 ‘수도권 진입’에 나섰다. 심상정 의원은 경기도 고양 덕양 갑 출마를 선언했다. 무소속 유시민 의원이 대구 출마를 결정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지역구이다. 노회찬 의원도 예전부터 준비해온 서울 노원 병 지역에 출마한다. 임채정 국회의장의 불출마 선언으로 역시 무주공산이 된 이 지역에서 재선을 노린다.
대권 도전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시기도 한 유력 정치인들에게 총선 승리는 국회의원 당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번 총선을 통해 자신의 정치 역량을 입증하고 더 큰 도전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패배의 쓴 잔과 함께 쓸쓸히 무대 뒤로 물러나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정치 생명’을 걸고 펼치는 이들의 승부는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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