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봐 클린턴” “두고 보자 오바마” ‘바람’은 어디로 불 까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 승인 2008.03.10 15: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힐러리 클린턴, 3월4일 텍사스·오하이오 주에서 압승 민주당 경선, 8월 말 전당대회까지 가는 장기전 될 수도

3월4일, 오하이오 주의 콜럼버스에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정장 차림으로 단상에 선 그녀는 “우리는 여전히 강하다. 그리고 계속 선거를 진행할 것이다”라며 승리를 선언했다. 그 자리에 모인 1천여 명에 달하는 지지자들은 “그녀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클린턴을 연호했다.
3월4일의 미니 수퍼화요일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승리를 거두며 막을 내렸다. 클린턴은 대의원 수가 많은 텍사스 주와 오하이오 주에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로드아일랜드 주도 승리했다. 오바마는 버몬트 주에서만 완승을 거두었다.
CNN의 출구 조사에 따르면 텍사스 주의 경우 클린턴에게 투표한 사람의 60% 정도와 오바마에게 투표한 사람의 40% 정도가 투표일 3일 이내에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고 한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클린턴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 많다는 점은 이번 텍사스 주 선거판이 요동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클린턴의 선거 참모이자 정치컨설팅계의 거두로 평가받는 마크 펜은 선거를 앞두고 “클린턴은 지금 뉴햄프셔 주 때의 승리처럼 오바마와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2월28일 클린턴은 저소득 계층을 위해 육아 부담의 짐을 덜 수 있는 정책을 새롭게 발표했다. 저소득 계층과 히스패닉계를 노린 이 정책 발표는 클린턴이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점을 다시 부각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보수적 정치평론가인 뷰캐넌은 “클린턴은 지난 10년간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싸워왔다. 선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명확한 정책’에 밀린 ‘변혁의 바람’… “오바마 재고한다는 신호”

이번 복지 정책 발표는 텍사스 주와 오하이오 주에서 힘을 발휘했다. 텍사스 주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히스패닉계는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에게 박빙으로 밀리던 클린턴에게 표를 몰아 텍사스 주 경선 승리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오하이오의 저소득 백인 유권자들 역시 클린턴에게 표를 던져 54% 대 44%, 10% 차이로 오바마에게 압승을 거두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반대로 풀이해보면 이번 미니 수퍼화요일의 경선 결과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오바마를 재고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오바마의 젊음이 이전에는 ‘변혁의 바람’으로 여겨졌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클린턴의 ‘명확한 정책’에 밀렸다는 평가가 많다.
클린턴은 지난 2월5일의 수퍼화요일에서 패배를 당한 이후 텍사스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클린턴 선거 캠프는 “오전 3시,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멘트와 함께 클린턴이 백악관에서 전화를 받는 TV 광고를 텍사스 주에 내보내며 그녀가 준비된 후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반면 오바마측은 클린턴의 TV 광고를 패러디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생각나게 하는 광고를 내보냈다. 그리고 이런 오바마측의 행동은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정책으로 맞상대하지 않고 장난스럽게 패러디하면서 오바마의 신뢰도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특히 텍사스와 오하이오 주의 유권자들은 의료보험 제도 개혁, NAFTA (북미자유무역협정)를 둘러싼 산업 공동화와 실업 문제 등 경제나 고용, 사회 복지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조사가 쏟아져나왔지만 오바마는 유권자에게 ‘이렇게 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라는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책론에 관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라는 막연한 주장만 되풀이했다. 3월4일의 CNN 출구조사를 살펴보면 경제와 금융 정책 등에 관한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클린턴은 오바마보다 훨씬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뜻밖의 원군이 클린턴을 도왔을지도 모른다. 이번 경선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이 클린턴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있다. 텍사스 주립대학에 재학 중인 한 유학생은 “등굣길에 듣는 보수파 정치 평론가의 라디오 토크쇼에서 사회자가 공화당 지지자에게 ‘이번만은 민주당에 등록해 클린턴을 찍어주자’라고 호소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클린턴이 미니 수퍼화요일에서 탈락하는 것보다는 오바마와 치열한 싸움을 계속해주는 편이 공화당 입장에서는 좋은 것 아니겠느냐”라고 추측했다.

 

오바마의 승리를 쉽게 예측하던 사람들도 이번 경선 결과를 두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경선 결과를 예측하는 데 좀더 신중해질 것 같다. 물론 향후 민주당 경선의 시나리오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외신을 종합해보면 민주당 경선에서 예상할 수 있는 전개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클린턴이 후보에서 물러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 클린턴이 3월4일 경선에서 세 개 주에서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확보한 대의원 수에서는 여전히 오바마에게 뒤지고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기 위해서는 2천25명의 대의원이 필요하다. CNN은 클린턴이 확보한 대의원 수를 1천3백57명으로 추정한 반면 오바마는 1천4백34명의 대의원을 확보한 것으로 전망했다. 오바마는 미니 수퍼화요일의 개표가 끝난 후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서 한 연설에서 “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확보한 대의원 수가 저쪽보다 훨씬 많다. 후보 지명에 한 발짝 앞서 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우위를 강조했다.
당내의 싸늘한 시선도 클린턴이 경선을 진행하는 데 넘어야 할 산이다. 당내 경선이 오래 진행되면서 민주당 내에서는 경선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월 민주당 경선 후보를 사퇴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3월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니 수퍼화요일의 결과가 나온 이후 대의원 수가 적은 사람은 사퇴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민주당 내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물론 8월 말 덴버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경선을 끌고 가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6월7일의 푸에르토리코 경선까지 후보가 결정되지 않는다면 전당대회에서 슈퍼 대의원의 손에 대통령 후보가 정해진다. 만약 이런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면 경선으로 생길 장·단점은 명확해 보인다.                                                       우선 각 주에서 펼쳐지는 민주당의 예비선거가 유례없는 투표율을 보이면서 공화당보다 훨씬 주목받는 것은 장점이다. 11월4일에 열린 본선 투표에 가장 근접한 시간까지 미국 전역의 눈길을 민주당에 붙잡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슈퍼 대의원의 표결까지 끌고 간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MSNBC는 3월4일의 개표 결과를 보도하면서 “50 대 50의 구도로 유권자들이 지지를 했는데 그것이 무시되고 결국 당 원로들의 손에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는 것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지도자 평의회(DLC)를 만든 앨 프롬 회장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후보 지명도 6월에서야 이루어졌다. 경선이 장기화된다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전하면서도 슈퍼 대의원의 표결 이전에 대화에 의한 해결을 우선 추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슈퍼 대의원 표결로 가기 전에 ‘대화’로 끝낼 가능성도

캠프 내에는 전당대회를 염두에 두고 있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블룸버그는 자체적으로 입수한 오바마 캠프 내 자료를 보도하면서 “오바마 캠프는 3월4일 버몬트 주를 제외한 3개 주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전망하고 있었다”라고 보도했다. 이 자료를 살펴보면 오바마는 이후 벌어질 3월8일 와이오밍 주, 11일의 미시시피 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하고 4월22일 1백88명의 대의원이 걸린 펜실베니아 주 예비선거에서는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이런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후보자 결정은 민주당이 우려한 대로 슈퍼 대의원의 손에 좌우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7백96명의 슈퍼 대의원 중 지지 의사를 밝힌 슈퍼 대의원 가운데 오바마 지지자는 1백96명, 클린턴 지지자는 2백41명이다. 오바마 지지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지만 이번 3월4일의 승리가 오바마를 지지하려는 슈퍼 대의원들을 다시 관망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고 있는 대의원 3백59명의 손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결정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 3백59명을 자신 쪽으로 포섭하기 위한 당내 암투는 이미 민주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
본격적인 검증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오바마를 괴롭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추려진다. 하나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과 관련된 문제. 오하이오 주 유세에서 오바마는 경제가 안 좋은 이 지역 상황을 고려해서 “캐나다 정부와 NAFTA 문제를 재협상하겠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가 강하게 항의하자 오바마측은 “모두 선거용 구호에 불과하니 안심하라”라고 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또 하나는 토니 레즈코 사건이다. 레즈코는 오바마가 일리노이 주에서 정치가로 첫발을 디딜 무렵부터 그를 도운 후원자인데 지난 2004년 62만 달러에 산 토지를 오바마에게 10만4천 달러라는 싼 값에 넘겨 문제가 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