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제3 후보 “대선도 삼세판”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 승인 2008.03.10 15: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0년·2004년 미국 대선 출마한 네이더 “역사 바꾼 사표” 비아냥 속 올해도 ‘출사표’

“한국의 랄프 네이더는 필요없다’라는 한 교수의 기고문이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대선으로 정신없던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일이다. 민노당에 투표하면서 생기는 사표가 보수 정당의 대통령 당선을 돕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을 보고 투표하라는 내용이었다. 네이더는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9만여 표를 얻었는데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고어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5백37표 차이로 부시에게 패배해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었다. ‘네이더에게 간 사표가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버렸다’라는 원망섞인 말도 나왔다.
어쨌든 우리나라 대선 때도 가끔씩 이름을 접할 수 있는 네이더가 이번에 또 미국 대선에 나오겠다고 한다. 그는 지난 2월24일 NBC 방송에 출연해 “현재의 후보들로는 미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소수에 집중된 권력 구조를 다수를 위해 변화시키려고 한다”라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민주당은 표가 잠식될 것을 우려해 그의 출마를 비판하고 나섰고, 그와 반대로 공화당은 두 손을 들어 환영하고 있다. 오바마는 “그를 비난할 의도는 없으며 그는 훌륭한 인물이다”라고 점잖게 이야기하면서도 “그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네이더는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미국의 소비자운동가이다. 그는 1965년 <어떤 속도에도 안전하지 않다>라는 책을 펴내며 미국산 자동차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고, 미국에서 대기업과 전쟁을 벌이며 본격적으로 소비자운동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운동가로 활동해왔다. ‘네이더리즘’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전세계에 소비자운동이라는 개념을 전파시킨 사람이다.

 

“2000년 부시 당선에 간접적 공헌했다” 비판 받아

하지만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시기는 소비자운동을 하던 때가 아니라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였다. 네이더는 당시 총 득표 수의 2.74%인 2백90여 만 표를 얻어 ‘민주당 표를 잠식해 부시 대통령의 당선에 간접적으로 공헌했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그는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이라크를 공격할 때도 도매금으로 함께 비판받는 처지가 되었다. 네이더가 2004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를 선언했을 때는 양상이 더욱 복잡해졌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지난 번에는 유권자들이 기성 정치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그에게 표를 주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분노하고 있다”라고 그의 출마를 비판했다. 그는 2000년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2004년에 녹색당은 당내 인물인 데이비드 콥을 녹색당 후보로 출마시켰고, 네이더는 결국 무소속으로 출마해 겨우 24만여 표를 얻는 데 그쳤다.
2000년 네이더의 출마는 미국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당 정치에 소외되는 정치적 소수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과 정치인이 정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2004년 무리하게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소비자운동을 대표하는 명망가’ ‘새로운 정치 세력의 희망’에서 권력에 집착하는 노정치인의 이미지로 전락해버렸다. 그렇게 네이더는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다. 양강 구도인 미국 대선의 틈바구니를 노려 자신의 이용 가치를 상승시키는 기회주의자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고 4백만 달러 이상의 주식과 부동산을 보유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2008년 미국 대선에 또 출사표를 던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