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 씨 어머니 인터뷰
  • 이은지 기자 lej81@sisapress.com ()
  • 승인 2008.03.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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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우리 딸을 죽였다”

 
란 씨가 사망한 지 꼭 한 달이 지난 3월7일, 어머니 휭 김 안 씨(49)가 한국을 찾았다. 딸의 죽음을 직접 확인하고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고 싶어서다. 3월8~9일 이틀간 사위 하 아무개씨와 만나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을 것이라는 주변의 말과 달리 3월10일 경북 경산경찰서에서 만난 그녀는 숨이 넘어갈 듯 오열하고 있었다. 딸의 주검을 찍은 사진을 보고 난 직후였다. 연신 ‘난 너밖에 없는데 왜 그렇게 죽었느냐’라고 외치며 몇 시간을 통곡하고 난 뒤에야 그녀와 간신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금 심정이 어떤가?
옷도 안 입고 영안실에 누워 있는 내 딸을 사진으로 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딸이 한국으로 가기 전에 ‘잘 살면 좋지만 남편과 못 살더라도 베트남으로 꼭 돌아오겠다’라고 말했다. ‘이전에 자살했던 베트남 신부들처럼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라고도 했다. 그렇게 말한 딸이 자살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내 딸의 죽음을 둘러싼 구체적인 정황을 모두 밝혀야겠다.
경찰측에 무엇을 요구했나?
딸이 죽은 2월6일 아침 9시를 전후한 정황과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혀달라고 부탁했다. 또 딸이 죽기 전에 쓴 일기장을 보면 시어머니와 갈등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사건 당일 시어머니와의 다툼은 없었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어제 사위를 만나서는 무슨 얘기를 나눴나?
딸이 한국에 있는 한 달 동안 사위가 전화를 바꿔주지 않아서 두 번밖에 통화하지 못했다. 왜 그랬냐고 묻자 그냥 죄송하다고만 하더라. 딸이 한국으로 가기 보름 전에 75만동(한국 돈으로 5만원)을 주고 휴대전화를 하나 사줬다. 전화하면 꼭 받으라고 하기에 가슴 속에 휴대 전화를 넣고 내내 기다렸는데 통화도 못하고 죽었다. 이게 뭔가. 전화만 자주 할 수 있었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왜 국제 결혼을 시켰나?
란을 임신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떠났다. 하루 종일 떡을 팔아도 3만~4만동(한국 돈으로 2~3천원)밖에 못 벌다 보니 가난했다. 주변에서 한국으로 시집가면 어머니를 편하게 모실 수 있다고 하자 란이 직접 결혼중개 업체를 찾아갔다. 거기서 사위 하 아무개씨(35)를 만났다.
란 씨가 어머니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자기 몸보다 나를 더 많이 챙겼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같이 떡을 만들고 시장에 나가 밤 10시까지 팔았다. 일의 대부분을 딸이 도맡아서 했다. ‘엄마는 관절염이 있잖아’라면서 빨래도 딸이 다했다. 그런 딸이 한국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잤다는데, 사위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국제 결혼을 시킨 것을 후회하나?
너무 후회한다. 한국에 보낼 때부터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딸만이라도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보냈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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