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끼리 부딪치니 큰 불꽃 튀네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 승인 2008.03.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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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서울 격전지 ‘빅 3’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역사의 격변기에는 늘 별이 지고 뜬다. 영웅들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운명적으로 뒤바뀐다. 4·9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선거 과정에서 기린아들이 탄생하고    어제의 스타는 무대 뒤로 사라진다.
이미 공천을 거치며 과거의 숱한 스타들이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에 판도 변화가 오고 있다.
오는 4월9일, 누가 웃고 누가 울 것인가. 어떤 영웅이 탄생하고 어떤 장수가 눈물을 훔칠 것인가. <시사저널>은 18대 총선 출마자들이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   (3월25일)하는 것에 때맞추어 총선 특집을
마련했다. 이번 호에서는 총선 최대의 화제 지역으로 ‘서울 삼국지’라고 불리는 동작 을, 종로, 중구를 찾아가보았다. 각 언론에 보도된 전국 격전지의 여론   조사 결과를 종합했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현재 판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영남과 호남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공천 후폭풍 현상이 얼마나 파괴력이 있는지도 짚   었다. 특집은 다음 호에도 계속된다. 4·9총선 최대의 격전지는 동작 을 지역이다. 벌써 전국적으로 떴다. 사당동과 흑석동, 동작동 일대가 해당한다. 중심은 사당동이다. 현역은 민주당 이계안 의원인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 지역에 이번에는 여야 최고 거물들이 격돌했다. 한나라당에서는 정몽준 최고위원이, 통합민주당에서는 지난 대선 때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출마했다. 두 사람의 승부는 그야말로 건곤일척이다. 패배하는 사람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불꽃 튀는 접전지라는 것을 보여주듯 이 지역에는 날마다 취재진이 몰린다. <시사저널>이 두 후보와 가진 인터뷰도 새마을금고와 어묵 가게에서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시간은 15분 남짓 걸렸다. 한 운동원은 “밥보다 고추장이 더 많다”라고 말했다. 운동원이나 유권자보다 취재진이 더 몰린다는 얘기였다.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는 초점이 분명했다. 3월18일 오후 3시, 사당시장. 정후보는 “정몽준입니다”라며 일일이 가게를 방문했다. 파란 점퍼와 흰머리가 잘 어울렸다. 정후보를 따르는 운동원들은 정후보의 명함을 돌리며 “뉴타운, 될 것입니다” “길, 넓어집니다”라고 말했다. 메시지에 일관성이 있었다. 선거운동 형태가 일정했다. 후보와 운동원들이 하는 말은 이 말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지역민들의 개발에 대한 기대 욕구를 득표 전략으로 삼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힘 있는 여당 후보가 개발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과일 가게에서 정후보와 악수한 한 주민은 “살기만 좋게 해준다면 팍팍 찍는다”라고 말했다. 정후보는 “울산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다. 이제 동작 을 지역을 그렇게 만들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최근 언론에 나와 7월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고 말한 것도 ‘힘 있는 여당 후보’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정후보는 시장을 방문하는 틈틈이 지갑을 열어 국수, 달래 등을 샀다. 한 운동원은 “후보가 나중에 꼬박 챙긴다. 우리가 먹었다가 혼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실제로 후보가 먹는다는 설명이었다. 이날 정후보는 혼자 다녔다. 부인 김영명씨는 울산에 정리할 일이 남아 있고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고 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지만 빠지지 않고 시장 구석구석을 찾았다. 악수를 청하자 피하는 아주머니를 따라갈 듯하다가 포기하며 겸연쩍은 미소를 짓던 정후보는 기자에게 “계속 따라가면 성희롱이겠죠”라고 말해 주변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그는 빠르기보다는 듬직함, 요란함보다는 조용함을 선호했다. 동행하는 두 시간 동안 그가 약간 낯을 가린다는, 유권자들에게 세심하게 접근하기보다는 한 번 크게 훑고 지나가는 선거운동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후보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중·고등학생들과 폰카를 찍었다.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남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공부 잘하느냐”라고 물었다. 운동원들은 명함을 나눠주며 “오늘 정몽준 아저씨 만났다고 말해!”라고 강조했다. 정후보의 한 측근은 네 가지 원칙을 갖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큰 정치를 한다, 네거티브 운동을 하지 않는다,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 하나는 투표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정후보는 “이번에 승리하면 6선 의원이다. 이런저런 말이 있지만 결국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당을 밀어주어야 한다는 안정론이 우세할 것이다. 나는 그저 내 갈 길을 묵묵히, 열심히 갈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조홍규 전 의원과 연극인 손숙·박정자 씨가 정후보를 격려하고자 현장을 찾았다.

 
정몽준·정동영,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당동 민심 훑기

정후보가 ‘훑고’ 지나간 다음날인 3월19일 오전 11시, 동작구 사당4동 새마을금고 앞에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가 나타났다. 어째 낯이 익다 싶었더니 전날 정몽준 후보가 지나간 바로 그 거리였다. 정동영 후보는 차에서 내리더니 바로 성큼성큼 새마을금고 안으로 들어갔다. 랜드로버에 검은색 바지, 녹색 점퍼 차림이었다. 정후보는 허리를 90° 가까이 굽혀 “정동영입니다”라고 인사했다. 정몽준 후보와는 인사 각도가 달랐다. 부인 민혜경씨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행원은 두 명이었다. 유용 보좌관은 “후보가 사람들이 많이 따라다니는 것을 싫어한다”라고 말했다. 새마을금고를 나선 정후보에게 인사하자 안부를 묻더니 대뜸 “할아버지가 나를 이곳으로 불렀다”라고 말했다. 동래 정씨 사당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정후보는 “아침에 조선 인조 이후 정승 다섯 명을 배출한 동래 정씨 사당에 참배했다. 조상들이 나를 보살피고 있으니 잘될 것 같다”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지나가던 한 주민이 정후보를 알아보며 반가워했다. “사당동이 너무 낙후되었다. 잘 부탁한다.” “알았습니다.” 정후보는 허리를 굽혔다. 정몽준 후보와 달리 그는 직접 명함을 돌렸다. 정후보는 “사당 뉴타운을 앞장서서 추진하겠다. 뉴타운이 제일 필요한 곳이 사당동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떡볶이 가게에서는 아주머니 두 명이 정후보를 반갑게 맞았다. “사모님과 닮았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너무 닮았다. 사인 좀 해달라. 오늘 장사가 잘될 것 같다.” 아주머니들은 신이 나 기자들에게도 어묵 국물을 돌렸다. 정후보는 ‘가족 여러분, 늘 처음처럼’이라고 적고 사인했다. 해병대를 제대했다는 생선 가게 청년은 스티로폼에 사인을 받아갔다. 며칠 뒤 열릴 전우 모임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정후보가 어묵을 먹는 것을 틈타 간이 인터뷰를 시도했다. 정후보는 “한 지역구가 문제가 아니라 견제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곳이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정후보는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 정몽준 후보가 훑고 간 그 거리를 가는 데 정후보는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렸다. 어딜 가나 정후보 뒤에는 ‘아줌마 부대’가 따랐다. 식당에 들어가 있는 정후보를 보기 위해 아줌마들이 일부러 식당을 찾았다. “TV에서 많이 보았다”라며 악수하고 폰카를 찍었다. 점심 무렵에는 박명광 의원이 현장을 찾았다. 박의원과 정후보는 식사를 하며 긴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의원은 “밥 사주러 왔다”라고 말했지만 주변에서는 “당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라는 말이 나왔다. 정후보는 자신의 측근들이 대거 잘려나간 공천 결과에 불편함을 갖고 있었다.
갑작스레 ‘정몽준 후보’가 현실화하면서 정후보는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진보신당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김종철 후보를 낸 것도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이 지역 현역 의원인 이계안 의원이 열심히 도와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영근 전 정동영 후보 수석부대변인, 김현종 전 메시지특보 등 측근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다. 유용 보좌관은 “분위기는 괜찮다. 득표력과 어떻게 연결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지지 세력이 결집하고 견제론이 확산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동작 을 지역은 전체적으로 호남 인구가 3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작 을에서 펼쳐지는 용(龍)들의 전쟁은 두 사람의 정치 운명을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몽준 후보가 승리한다면 그는 당권, 나아가 대권을 향한 행보를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울산’이라는 영남 기반에 서울 지역구, 현대라는 대기업에다가 국제적인 활동 반경을 가진 그의 정치적인 위상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의 요구이기는 하지만 그가 당선이 보장된 ‘울산’을 버리고 동작 을이라는 험로에 도전한 것도 높게 평가될 것이다. 물론 당선된다는 전제 아래서다.
정동영 후보도 마찬가지다. 대선 패배 이후 그는 공천 과정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많이 잃었다. 세력이 위축되었다. 당선된다면 전북이라는 든든한 기반에다가 서울 지역구를 디딤돌 삼아 총선 이후 불거질 것으로 보이는 이념 논쟁에서 그는 ‘손학규 대항마’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며 대권에 재도전하는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3월20일 현재까지 여론 흐름은 정몽준 후보가 앞서가는 것으로 나왔다. 3월16일 조선일보와 SBS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정몽준 49.3%, 정동영 37.4%, 3월18일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정몽준 48.7%, 정동영 26.7%로 나타났다. 4월9일,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웃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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