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목 잡은 ‘반 정당’ 공천
  •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 ()
  • 승인 2008.03.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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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운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정당이다. 정당은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여러 현안에 대안을 제시한다. 대의 기능이다. 물론 대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정당만이 아니다. 시민단체도 있고 인터넷의 확산으로 개인이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정당 역할이 축소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시민단체가 대행할 수 없는 정당의 기능이 있다. 바로 선거에 나설 공직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이다. 공천은 정당만의 고유한 역할이다.

물갈이는 있고 비전 제시는 없어
어떤 명분과 이름을 갖다 붙이든 공천 과정은 신(新) 세력이 등장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번 공천의 세력 재편 과정에서 빠진 부분이 있다. 양당 모두 쇄신과 물갈이 공천만 내놓았지 국민에게 새로운 비전과 약속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국민에게는 권력 투쟁으로만 보였다. 아쉬운 대목이다. 공천이라는 당내 권력 투쟁을 통해 인적 구성만이 아니라, 정당이 지향하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야 정당과 정당 정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번 공천에서 정당은 없었다. 당원도 없었다. 지역 대표성을 갖는 국회의원 후보를 뽑으면서 해당 지역 당원들의 의사도 반영하지 않았다. 게다가 공천 시기도 늦어졌다. 이렇게 정당이 스스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강제적으로 공천 완료 시기를 정할 필요가 있다. 공천 시기와 절차의 제도화가 정당과 정당 정치 발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우선 양당 모두 공천 과정을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주도했다. 공천심사위원회 구성도 외부 인사들이 절반을 넘었다. 물론 당 지도부의 공천자 최종 인준 절차도 있고 일부 재의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반발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개혁 반발로 비치기까지 했다. 이는 우리의 정당과 정당 정치의 제도화 수준이 아직도 낮은 단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역 대표성을 갖는다. 따라서 공천 과정에서 해당 지역 당원들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하지만 이번 공천 과정에서 지역 당원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하거나 지역별로 치러지는 총선이 전국 선거화하는 경향이 최근 추세라 하더라도, 이는 정당 정치의 활성화를 위해 바람직한 모습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지역구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구 당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공천 시기와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4년 공천이 총선 30여 일 전에 이루어진 것을 보면, 이번 총선은 공천이 가장 늦게 이루어진 총선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권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당과 후보를 비교할 시간이 없다. 공천 절차와 과정은 정당 스스로 정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당 정치의 제도화를 위해 강제적으로 공천 완료 시기를 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공천 절차와 방식에 대해서도 최소한 후보 선정 일정 기간 전까지 확정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정당 스스로 하지 못하니 하게끔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천 시기와 절차의 제도화가 정당과 정당 정치 발전의 기본이다.

✽ 일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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