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따라 개인 정보가 샌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3.31 14: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리점에서 다른 사용자에게 몰래 명의 변경 / 번호 이동 인센티브 노려 알면서도 불법 저질러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해지했는데 자신의 개인 정보가 여기저기로 팔려 다니고 있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께름칙한 일이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다. 휴대전화 사용 계약을 해지한 고객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카드 번호는 물론 심지어 사인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 도용되고 있다. 전국 곳곳의 휴대전화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만 단속도 허술하고 단속에 걸린다 해도 제재 조치는 고객들이 당하는 피해에 비해 미약하다.
직장인 김소라씨(25·여·가명)는 지난 3월17일 SK텔레콤 매장(판매점)을 찾았다. 개인 사정상 두 대의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한 대를 해지하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해지신청서를 작성하지도 않았는데 매장 직원이 내 신분증만 복사하더니 해지되었다고 해서 의아해했다. 그래서 해지 증명서를 요구했더니, 그날까지 사용한 이동통신 대금납부 영수증만 주었다. 그 영수증에는 ‘해지’라고 적혀 있었다. 또 30분 후부터 통화가 되지 않아서 정식으로 해지된 것으로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그 휴대전화가 해지되지 않았고, 자신의 개인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쓰이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깜짝 놀랐다. 김씨는 “다른 한 대의 휴대전화로 콜센터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는데 해지된 것이 아니라 신규 가입되었다는 엉뚱한 내용이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SK텔레콤 콜센터에 확인했으나 전화상으로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이후 판매점과 콜센터 등에 알아보니, 해지 처리는 되지도 않았고 사용이 일시 중지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동의도 없이 종전의 휴대전화 번호가 남에게 넘어간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보았으나 판매점측은 사정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오랜 승강이 끝에 관련 서류를 팩스로 받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김씨가 받은 서류(이동전화 신규·명의변경 계약서)에는 그녀의 이름·전화번호·주민등록번호가 또렷이 기재되어 있었다. 이 서류대로라면 김씨가 판매점 직원인 손 아무개씨에게 명의를 변경해준 것으로 되어 있다. 김씨는 손씨를 다그쳐 해지된 휴대전화가 사용중지로 처리되어 남에게 넘어간 경위를 따져 물었고, 손씨로부터 그녀의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같은 번호의 휴대전화를 개통해주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처럼 판매점 직원이 사용 계약을 해지한 고객의 개인 정보를 폐기하지 않고 멋대로 이용해 제3자에게 명의변경을 해주어도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해 SK텔레콤 콜센터는 “명의변경을 하기 위해서는 양도인과 양수인이 직접 대리점에 와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만일 둘 중 한 명이라도 참석하지 못할 경우에는 대리인을 내세워야 한다. 대신 대리인에게 인감도장이 찍힌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지참하게 해야 한다. 또 사실 확인을 위해 당사자와 전화 통화도 해야 한다. 만일 이런 절차를 하나라도 이행하지 않으면 명의변경은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나는 명의변경 서류를 작성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 위임장을 써준 적도 없다. 만일 명의를 변경해줄 생각이었다면 왜 굳이 해지를 했겠는가. 이를 따졌더니 SK텔레콤 판매점은 해지 신청을 보통 그렇게 처리한다고 얼버무려 어이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작성된 그 서류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자동이체신청란에 계좌(카드)번호와 예금주(카드주)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서류가 정식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은 SK텔레콤 본사가 묵인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SK텔레콤 본사측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시인했다. 또 판매점들은 유령 은행 계좌번호를 준비해두고 있다고도 했다. SK대리점에서 3년 동안 근무한 강 아무개씨는 “고객의 사정으로 계좌번호를 기재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판매점은 다른 은행 계좌번호를 준비해놓고 있다. 그 계좌번호를 입력하고 서류를 처리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대리점 “돈 벌겠다고 하는 짓인데 무엇인들 못하겠나”
또 서류에는 인감증명서나 위임장도 첨부되어 있지 않았다. 김씨가 명의변경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대리점 직원 강씨는 “판매점이나 대리점이 마음만 먹으면 그런 서류 없이도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돈 벌겠다고 하는 짓인데 무엇인들 못하겠는가”라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판매점측이 이렇게 자신의 명의를 도용하고 문서 자체를 위조한 것을 문제 삼아 SK텔레콤 콜센터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민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씨는 “콜센터측은 계약 해지든 일시 중지든 요금을 내지 않는데 왜 그러느냐며 좋게 넘어가자는 식으로 반응을 보였다. 남의 개인 정보를 이용해 서류를 날조한 범죄 행위인데도 이렇게 대처하는 SK텔레콤측의 처사에 기가 막혔다”라고 불쾌해했다.
이에 대한 SK텔레콤 본사의 입장은 무엇일까. SK텔레콤 본사는 “엄밀히 말하면 대리점·판매점은 내부 조직이 아니라 외부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수익을 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강구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다”라고 답변했다. 대리점은 본사와 계약을 맺은 일종의 도매상이고, 판매점은 대리점과 연계된 하부 판매 조직일 뿐이어서 자신들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비자가 신규 계약이나 명의변경, 번호 이동 등을 위해 작성하는 서류에는 ‘SK텔레콤주식회사 대표이사 김신배’라는 문구와 직인까지 찍혀 있다. 소비자는 대리점·판매점과 계약한 것이 아니라 SK텔레콤 본사와 계약을 맺은 것이다.
실제 SK텔레콤은 대리점·판매점 등 다양한 유통 조직을 이용해 가입자를 늘리면서도 가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상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대리점 직원은 “본사가 대리점이나 판매점의 영업 방법을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알고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본사는 거의 실시간으로 시장을 파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후 1시 KTF가 번호 이동 가입자 모집 수수료를 10만원으로 결정했다면, 2시에 SK텔레콤은 12만원으로 올린다. 영업 조직은 모집 수수료를 조금이라도 많이 주는 이동통신 회사로 가입자를 몰아준다. 본사의 영업 정책이 이처럼 치밀한데 대리점과 판매점의 영업 방법을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꼬집었다.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다른 이동통신회사에서 SK텔레콤으로 넘어온 번호 이동 신청을 처리하는 데 겨우 2~3초 걸린다. 그러나 그 가입 신청자가 신규 가입자인지 번호 이동자인지 확인할 시간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류에는 소비자의 전화번호와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어 전화 한 통화면 가입자가 신규 가입을 한 것인지 번호 이동을 한 것인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측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해지를 시키지 않고 대리점·판매점이 불법·편법을 동원해 가입자를 모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SK텔레콤 대리점의 한 주인은 “본사로부터 보통 10만~50만원까지 인센티브를 받는다. 가입자를 신규로 확보할 때보다 적어도 2~3배가 많은 액수다. 소비자가 다른 통신사로 이동하는 것을 MNP(Mobile Number Portability)라고 한다. 대리점·판매점이 MNP를 하면 실적도 좋게 평가받는다. 아무래도 해지가 많은 대리점이나 판매점을 본사가 좋게 볼 리 만무하다. 따라서 대리점과 판매점은 어떻게 해서라도 해지를 줄이고 MNP를 늘리려고 한다. 물론 이는 고객들 모르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SK텔레콤측도 “신규 가입자보다 번호 이동 가입자를 유치하면 본사가 대리점·판매점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번호 이동 가입자는 이미 이동통신을 이용해본 ‘검증된 우량 고객’이기 때문이다. 또 이동통신 3사의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번호 이동 가입자를 반기고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일들이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관행처럼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으나 이를 아는 고객들은 많지 않다. SK텔레콤측은 “2007년 한 해 동안 조사해보니 정상적인 번호 이동 가입자는 30%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고객들 몰래 부정한 방법으로 명의를 변경해 가입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나름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각 판매점에 아이디를 부여하고 있고, 감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한 전산 시스템도 구축 중이다. 판매점의 불법 사례가 많아지면 거래 중지 등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름·전화번호·신용카드 번호까지 도용
이런 공공연한 비밀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고객들이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SK텔레콤측은 “계약을 해지하거나 명의를 변경한 고객에게는 본사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관련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 대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고객이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번호를 쓰면 메시지를 전달할 길이 없다. 고객이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개인 정보가 도용당해도 모르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만일 고객이 그런 사실을 알고 본사나 대리점·판매점에 항의한다 해도 대부분 직원의 실수였다는 사과의 말을 듣고 끝내기 일쑤다. 경우에 따라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는 고객에게 상품권 같은 사은품을 주며 달래기도 한다고 한다. SK텔레콤 대리점의 한 주인은 “직원의 실수라고 하면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 특히 여성이나 노인 등 노약자들은 이동통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복잡한 명의변경 과정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동통신사 본사의 직영 대리점에서도 개인 정보가 새고 있다. 직장인 조상미씨(32·여·가명)는 지난 3월10일 오전 업무상 사용하던 휴대전화 두 대 중 한 대를 해지하기 위해 KTF 대리점을 찾았다. 대리점측의 요청대로 해지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복사해서 제출했다. 그리고 몇 분 만에 대리점측으로부터 해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 자신의 다른 휴대전화로 LG텔레콤에 신규 가입이 되었고 명의변경까지 되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LG텔레콤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신규 가입자가 된 경위를 물었으나 콜센터측은 가입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조씨가 어렵게 입수한 서류(명의변경신청서·번호이동신청서)에는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는 물론 신용카드 4자리 끝 번호가 적혀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사인까지 위조되어 있었다. 서류상으로는 조씨가 다른 사람에게 명의변경과 번호 이동을 해준 것이다. 조씨는 “LG텔레콤에 이같은 서류를 작성해준 적이 없다. 물론 카드번호를 알려준 적도 없으며 사인도 내 사인이 아니다. 또 인감증명서나 위임장도 당연히 건네준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KTF 대리점이 조씨의 개인 정보를 다른 판매점에 넘긴 것이다. 판매점측은 이 정보를 이용해 명의변경·번호 이동 서류를 가짜로 작성했다. 이 서류는 LG텔레콤으로 전달되어 신규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사용된 것이다. 조씨는 “KTF와 LG텔레콤측은 (내가) 다 알고 있는 줄 알았다며 별 문제 아니라고 넘기려 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TF측은 “대리점 직원이 전산 처리가 지연되어 해지를 하지 않고 번호 이동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고객에게 피해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KTF측은 “규정을 정해두어도 이를 어기는 대리점들이 있다. 본사도 선의의 피해자다. 아무튼 개인 정보를 유출한 대리점에 대해서는 위약금 5백만원과 전산 정지 5일에 해당하는 제재 조치를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대리점에서 넘겨받은 서류를 근거로 신규 고객을 가입시킨 LG텔레콤은 책임이 없을까. LG텔레콤측은 “KTF 대리점에서 나온 개인 정보가 판매점을 통해 LG텔레콤 대리점으로 넘어왔다. 소비자 본인에 대한 확인을 하지 못한 잘못을 시인한다”라고 말했다.
이동통신 3사는 현재 전국 곳곳에 6천개 정도의 대리점과 1만2천여 개의 판매점을 두고 있다. 이들 점포에서 하루에 고객의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해 명의를 변경하고 번호를 이동시키는 불법 행위가 수시로 자행되고 있어도 관리 감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회사원 박봉진씨(45)는 “현실적으로 휴대전화 한 대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대리점이나 판매점의 불법 행위에 당하고도 확인할 길이 전혀 없다. 이런 식이면 단순히 명의변경이나 번호 이동 말고 다른 범죄에 고객들의 개인 정보가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해지하면 가입 고객의 개인 정보는 반드시 폐기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