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옐로우카드 받은 이명박 정부, 긴장하라
  • 유창선(정치평론가) ()
  • 승인 2008.03.3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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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정책·공천 실패로 삐그덕…이대통령, 민심 제대로 읽고 직접 문제 조정·해결 주도하는 모습 보여야

 
너무 어려운 게 많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3월25일 국무회의에서 꺼낸 말이다. 취임하자마자 조각 파문, 경제 환경의 악화, 한나라당 내 공천 파동, 지지율 하락을 잇달아 겪으면서 생겨난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를 지켜보았던 국민도 역시 어려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했던가. 이명박 대통령은 불과 3개월여 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유례없이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에 대한 기대는 BBK를 뒤덮고 남을 만큼 뜨거운 것이었다. 그런데 취임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그 기대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분위기를 읽게 된다. 여론조사 결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역대 정부 출범 초와 비교할 때 최악의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 하나 박수를 쳐줄 만한 일은 뚜렷이 보이는 것이 없고, 실망을 안겨주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기대를 걸었던 이명박 정부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국민도 그만큼 어려웠다.
출범 한 달 만에 ‘민심 이반’이라는 표현까지 나오는 원인은 무엇일까. 한 달 간의 국정 운영이 일단 실패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몇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인사·정책·공천에서의 실패가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은 민심을 도외시한 ‘묻지 마 인사’에서였다. 국보위 입법위원과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냈던 이경숙 총장을 인수위원장으로 기용한 것은 전주곡에 불과했다. ‘고·소·영 내각’에 이은 ‘강·부·자 내각’의 등장은 정말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문제 있고 국민의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만 모을 수 있었는지, 한마디로 국민 무시의 조각이었다.
더구나 논란의 당사자들이 해명이랍시고 꺼냈던 이야기들은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러버렸다. “남편이 기념으로 오피스텔을 사주었다” “배용준을 봐라” “부부 교수 30억이면 양반 아니냐”…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던 이들의 해명 아닌 해명은 ‘이명박 사람들’과 국민의 정서적 거리가 얼마나 먼 것인가를 확인시켜주고 말았다. 그들은 대다수 서민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다른 가치관을 신봉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로 비치기에 이르렀다.
이명박 대통령의 두 번째 실패는 정책에 관한 것이었다. 역시 핵심은 경제였다. 지난 대선에서 ‘묻지 마 지지’ 현상이 나타났던 것은 두말할 것 없이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 심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계약 관계였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믿고 당신을 지지했다는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 심리가 사라질 때 2007년의 지지는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안팎 경제 환경의 악화는 이명박 정부가 걸음을 떼자마자 만나게 된 악재다. 물론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 상황이 이명박 정부의 탓은 아니다. 국제 금융 불안과 고유가라는 대외적 환경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문제다. 현재로서는 이명박 정부가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경제 문제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아직까지는 기대 이하의 수준이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라면을 쌀로 만드는 게 나을지, 설렁탕 사리 대신 밥을 주는 게 나을지, 이런 시시콜콜한 문제에 대통령이 나서는 것이 아니다. 경제 살리기의 관건인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가능하게 할 구체적인 정책 프로그램 마련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곁가지 문제들에 대한 세세한 발언은 많이 하면서도 정작 경제 정책의 줄기에 대한 진취적인 청사진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CEO 출신이라서 경제를 살릴 것이라고 믿어주는 단계는 지나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숱한 문제 불거지는 과정에서 대통령은 ‘부재 중’

세 번째 실패는 한나라당의 공천에서 생겨났다. 한나라당은 ‘개혁 공천’을 표방하며 영남권 등에서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그러나 ‘친이’-‘친박’ 갈등, ‘친이’ 진영 내부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계파 갈등에 대한 관심이 개혁 공천의 성과를 덮어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공천 갈등이 단지 박근혜 전 대표측의 반발을 넘어 ‘친이’ 세력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비쳐지고, 그 중심에 이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 공천 문제가 자리했다는 점에서, 이대통령 역시 한나라당 공천 갈등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더욱이 이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이상득 부의장, 이재오 의원, 정두언 의원이 ‘친이’ 세력 내부 갈등의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결국 ‘이명박의 사람들’이 정권을 잡자마자 권력 투쟁에 빠져버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정권 초기부터 자기들끼리 대결하고, 심지어 청와대의 사과까지 요구하고 나선 모습은, 취임 한 달 만에 레임덕을 맞은 것 아니냐는 냉소적 반응까지 낳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지난 한 달 동안 숱한 문제들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정작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부·자 내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비등한 상황에서도, ‘형님 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집권 여당 내 권력 투쟁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경제 살리기를 기대했던 국민의 열망이 식어가는 상황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책임 있는 메시지를 내놓지 못했다. 집권 초기의 시행착오가 따르는 과정에서 잘못은 있을 수 있다 해도, 대통령이 문제의 조정과 해결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상황을 방치한 것은 여러 모로 불안한 장면이었다. 한편으로는 정치력의 부재,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 능력의 부재를 지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던 세력이 거꾸로 그 소리를 들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는 셈이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부·자 내각’은 국민 정서를 조금이라도 읽을 줄 아는 대통령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부동산 투기자들의 내각 기용이라는, 국민 정서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나선 인사의 책임은 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는 것이었다. 이대통령이 민심과 엇박자를 내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그것 한 번이 아니었다. 인수위윈회 시절 영어 몰입 교육 논란 속에서 이경숙 위원장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보여준 일, 숭례문 화재 사건 때 느닷없이 국민 성금 모금 제안을 하고 나섰던 일. 모두가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였다.
지난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고 평가받은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노무현 대통령이 열심히 해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민심 이반에 직면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 자신이 민심을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판단만 옳다고 믿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던 결과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가 더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이대통령은 대기업 CEO 출신이고 재력가다. ‘강·부·자 내각’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듯이, 그의 인맥은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눈높이가 서민들과 같은 지점에 있지 못하고 자신을 둘러쌌던 상류층에 맞춰지기 쉬운 이유다. 스스로 이를 의식하고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패도 결국 민심 읽기에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임 한 달 만에 여론이 꺼내든 옐로우카드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새롭게 마음을 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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