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년 묵은 ‘연서’ 왜 현대 여성 녹일까
  • 반도헌 기자 bani001@sisapress.com ()
  • 승인 2008.04.07 16: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과 삶, 다양한 장르로 ‘변주’해 인기몰이

 

최근 연강홀에서 공연된 뮤지컬 <아이러브유 비코즈>, 영화 <비커밍 제인> <어톤먼트>, 3월 말 DVD로 발매된 영화 <제인 오스틴 북클럽> <설득>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19세기 초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을 맡은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으로부터 촉발되었던 제인 오스틴 열풍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뮤지컬 <아이러브유…>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이 모티브가 된 작품이고 <제인 오스틴 북클럽>은 말 그대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라는 ‘로맨틱’한 설정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의 편지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들 작품과 함께 영국 BBC가 제작한 텔레비전 방송용 미니 시리즈인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 <설득(Persuasion)> 등의 타이틀은 올해 소리 소문 없이 DVD로 발매되면서 꾸준히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르고 있다.

왜 제인 오스틴의 작품과 삶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 TV 드라마, 뮤지컬, 소설 등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 또 ‘제인 오스틴’이라는 타이틀을 달면 국내에서 무조건 흥행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2007년에 개봉한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 자신의 사랑과 삶을 다루면서 그녀의 작품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를 보여주었고, 최근에 DVD로 발매된 <제인 오스틴 북클럽>은 제목 그대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열광해 독서 모임을 만든 6명의 남녀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등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받은 <어톤먼트>는 <오만과 편견>의 조 라이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원작자인 이언 매큐언이 초반부를 가리켜 “내가 쓴 제인 오스틴 소설”이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제인 오스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관객들도 “제인 오스틴의 소설 같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로 만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그녀는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 <엠마(Emma)>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 <설득> 등의 작품을 남겼는데 이 중 대부분이 영화로 제작되었다. <오만과 편견>이나 <이성과 감성> 같은 작품은 1940년대 이후 세대별로 계속 리메이크되고, 동양을 배경으로 번안된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2백년 이상 묵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계속 당대에 소비되는 것은 그녀가 들려주는 연애 이야기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 영화에서 자주 보아온 것들이다. 현대의 대다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제인 오스틴표 연애담’의 변주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로맨틱 코미디 작품의 등장 인물에 제인 오스틴 작품의 주인공이 오버랩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성격, 자라온 배경 등이 판이한 두 남녀가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에는 극적으로 연인이 되고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물론 그녀의 작품들은 18세기 중·상류층 여성들과 귀족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필치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으로서도 인정받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같은 연애담에 익숙해

제인 오스틴의 고향인 영국에서 그녀의 소설들은 TV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영국의 국영 방송인 BBC와 민영 방송인 ITV가 거의 모든 작품을 꾸준히 드라마로 제작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EBS가 BBC의 2008년작 <센스 앤 센서빌리티>를 4월5일부터 방영할 예정이다.

영국에서 나온 제인 오스틴 드라마 시리즈의 대표작은 뭐니뭐니 해도 BBC가 1995년에 제작한 <오만과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역대 BBC 클래식 드라마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세계 45개국에서 방영했으며 최고 권위의 TV 프로그램 시상식인 반프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받기도 했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달시 역은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맡았다. 우리에게는 <러브 액츄얼리>로 이름을 알렸지만 영국에서는 이전부터 이 작품으로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콜린 퍼스가 맡은 인물의 극중 이름이 마크 달시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BBC판 <오만과 편견>은 DVD로도 발매되어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설득> <센스 앤 센서빌리티> DVD를 발매한 KBS 미디어의 윤호중 PD는 “<오만과 편견>은 지금까지 약 1만3천 세트가 팔렸다. 웬만한 할리우드 빅 히트작보다 더 많은 판매량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도 2천 세트 이상이 판매되는 평균 이상의 판매 성과를 거두었다”라고 말했다.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원작 소설로도 이어지고 있다. 교보문고·영풍문고 등 대형 서점에는 어김없이 수십 가지 종류의 제인 오스틴 소설이 진열되어 있다. Yes24·인터파크 등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도 마찬가지다. 여섯 작품을 집필했을 뿐인 그녀의 소설이 이처럼 많은 버전으로 나온 것은 출판사들이 제인 오스틴 붐을 노리고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그녀의 작품을 너나할 것 없이 찍어냈기 때문이다.

최근에 붐이 일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베스트셀러라기보다는 스테디셀러에 가깝다.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리티> 두 권의 제인 오스틴 소설을 펴낸 민음사의 홈페이지에도 두 작품을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소개하고 있다. 민음사의 한 관계자는 “영화가 개봉하면서 책의 판매량도 일시적으로 올라간 적이 있다. 하지만 이미 인기 있는 고전이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시간이 지났지만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주옥 같은 로맨스 소설을 남겼지만 제인 오스틴은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여성들은 경제적인 능력도 상속권도 없었다. 결혼만이 여성들에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현대 여성의 권리와 경제력은 그녀가 살던 시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그녀의 작품이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현대 여성에게도 결혼이 행복의 도피처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