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는 왜 눈이 컸을까?
  • 이문신 (관악연세안과 원장) ()
  • 승인 2008.04.07 16: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구 돌출,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생기는 질환…심하면 수술로 치료해야

 

전신 질환 중에서 눈에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가 갑상선기능항진증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도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지 않았나 하는 견해가 있다. 이집트 덴데라에 클레오파트라로 추정되는 여인상이 있는데 목 부분이 크게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는 여성은 질병의 특성상 매력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우선 살이 찌지 않기 때문에 날씬한 체형을 가지고 눈은 약간 커 보인다. 본인은 불편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좋아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갑상선 종양이나 뇌하수체 종양과 같은 위험한 질환도 있지만, 가장 흔한 형태의 갑상선기능항진증은 자가면역질환인 그레이브스병이다. 보통 젊은 나이인 20세에서 40세 사이의 여성에서 많이 발생한다. 증상은 모든 몸의 기능이 올라간 것으로 나타난다. 맥박도 빨라지고 땀도 많이 흘리고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오히려 빠지게 된다. 온몸이 갑상선 호르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눈에도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갑상선 항진증이 5% 정도 진행되면 눈에 증상이 나타나게 되며, 10~25% 정도에서는 다른 이상 없이 눈에만 이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을 한 <토탈 리콜>이라는 영화가 있다. 첫 장면에서도 잠깐 나오지만 거의 끝 장면에서 공기가 없는 화성에 맨몸으로 내팽개쳐진 남녀 주인공의 눈이 툭 튀어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것을 볼 때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바로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인한 안구 돌출이었다. 갑상선기능항진증에서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안구 돌출이다. 또한 거꾸로 안구 돌출의 가장 흔한 원인이 갑상선기능항진증이기도 하다. 흔히 양쪽 눈에 다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쪽 눈에 먼저 나타나기도 한다. 실제로 양쪽 혹은 한쪽 눈 안구 돌출의 가장 많은 원인이 모두 갑상선기능항진증이다. 백해무익한 담배가 이 질환에서도 역시 위험 인자로 자리하고 있다. 안구 돌출의 양상은 ‘약간 눈이 크네!’ 혹은 ‘눈이 좀 나왔네!’ 정도의 약한 경우도 많지만 심한 경우는 미용상이나 기능상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갑상선의 기능 상태가 안구 돌출 정도와는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갑상선 치료가 초기의 안구 돌출의 치료에는 도움이 된다. 안구 돌출은 초기에 눈 주변 조직의 삼투압이 높아져 수분을 빨아들이면서 말 그대로 조직이 부어서 발생한다. 이단계라면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치료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단계를 지나서 눈 주변의 조직이 섬유화되는 단계가 되면 이미 흉터처럼 조직이 변하기 때문에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심한 경우 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수술 방법이 생각보다는 좀 과격하다. 부어 있는 조직을 떼어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눈 주변을 둘러싼 뼈를 깨뜨려서 부종 조직을 눈 주변의 부비동으로 빠뜨리는 방법이다.

눈이 점점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갑상선 기능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물론 눈 자체에 대한 CT나 MRI 촬영이 필요하기도 하다. 눈 주변 조직이 붓거나 섬유화되기 때문에 눈이 튀어나오는 것 외에도 눈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어 사시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나타난 사시의 경우는 일반적인 사시와 달리, 눈 움직임 자체에 장애가 생기는 기계적인 사시 양상을 보이게 된다.

눈 잘 안 감기고 시력 떨어지기도

안구 돌출로 인해서 눈이 잘 안 감기기도 하지만 눈꺼풀 근육 자체의 문제로 인해서도 눈이 잘 안 감길 수 있다. 이 경우를 눈꺼풀 후퇴(lid retraction)라고 한다. 대부분은 안구 돌출과 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노출성 각막염이 발생하기 쉽고 심한 경우 세균 감염과 반복된 염증으로 인해서 심각한 시력 저하를 보이기도 한다. 안구 돌출 없이 눈꺼풀에만 문제가 있다면 억지로 힘을 주어 눈을 깜박일 수도 있어 증상을 덜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면 중에는 눈이 잘 감기지 않아 심한 안구건조증 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 갑상선기능항진증 치료를 받은 경우에도 눈이 잘 감기지 않는 현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럴 때는 플러그를 이용해 누소관을 막는 방법이 유용하다. 개선이 잘 안 되는 경우 잘 때 안대를 사용하거나 눈을 종이반창고로 붙이고 자기도 한다. 눈꺼풀 자체에 대한 치료보다는 각막 손상을 방지하는 것에 치료의 초점을 맞추게 된다.

안구 돌출이나 눈꺼풀 후퇴처럼 눈에 확 띄는 부작용도 좋지 않지만 가장 안 좋은 것은 시신경 병증이다. 눈 주변의 조직이 부어서 시신경을 압박하면서 시신경 병증이 발생하는데 동양인에게는 안구 돌출 없이 시신경 병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예전에 레지던트 1년차로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30대 초반의 남성이 엑시머 레이저 수술을 받으려고 수술 전 검사를 받았는데, 시야 검사에서 광범위한 시야 장애가 관찰되었다. 녹내장은 아닌 것으로 판명되어서 수술을 진행했다. 그 후에 각막 상처가 생각한 것보다 오래가는 것까지 보고 다른 파트로 옮겼다.

한 1년인가 경과한 후에 다시 그 파트에 2년차로 갔을 때 그 환자를 다시 만났는데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몸이 바짝 마르고 전형적인 갑상선기능항진증에 의한 안구 돌출과 눈꺼풀 후퇴가 얼굴에 있었다. 그 환자가 울면서 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 이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요?” 엑시머 레이저 수술이 갑상선기능항진증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어쨌든 감기지 않아 붉어진 눈에서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는 초기 갑상선 기능 검사는 정상이었으나 뒤늦게 증상이 나타난 운이 나쁜 경우라고 보아야 하겠다.

효율적인 치료를 하려면 갑상선기능항진증부터 고쳐야 한다. 갑상선 기능이 원상태가 되어도 눈에서의 문제는 지속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원인이 되는 질환을 조절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눈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막이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눈이 튀어나와도, 눈이 잘 안 감겨도 눈이 마르면서 각막 손상이 발생하는 노출성 각막염이 생길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해주어야 한다. 또한 치료 시기도 매우 중요하다. 앞서 안구 돌출에 관한 설명에서 처음에 조직이 붓기만 하는 단계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잘 하면 어느 정도 원상태 회복이 가능해진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