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물 먹은 그들이 야구장 물 바꾼다
  • 허재원 (한국일보 스포츠부 기자) ()
  • 승인 2008.04.0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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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명의 MLB 출신들, 박진감 넘치는 경기 예고

 

TV리모콘만 손에 쥐고 있으면 메이저리그나 프리미어리그나 안방에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요한 산타나(뉴욕 메츠)가 던지는 공을 블라디미르 게레로(LA 에인절스)가 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팀 동료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터뜨리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열광하는 한국의 스포츠팬을 보는 일도 어렵지 않다.

현재 K-리그에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 FC 출신의 키키 무삼파(31)가 FC서울에 영입되어 한껏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로농구에서는 용병 제도가 드래프트제로 바뀌기 전인 2006~2007시즌까지 미국 프로농구(NBA) 문턱까지 갔던 월봉 10만 달러(약 1억원)짜리 선수들이 코트를 휘저었다.

그러나 가장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종목은 역시 야구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거포 타이론 우즈가 두산의 전성기를 이끈 이후로 국내 프로 야구판의 화려한 용병 라인업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부산의 영웅’으로까지 불렸던 펠릭스 호세(43)가 롯데의 간판 스타로 활약했고, 20승 고지에 올라선 다니엘 리오스는 최고 대우 수준으로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진출했다.

KIA의 호세 리마, “국내 최고 수준” 평가받아

이미 미국 야구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큰 시장으로 자리를 잡은 한국 프로야구. 올시즌에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최초로 외국인 감독으로 영입된 제리 로이스터(56)가 롯데 사령탑을 맡고 있고,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투수였던 호세 리마(36)가 KIA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 가히 쓰나미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발 해일. 그 엄청난 물결이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 휘몰아치고 있다.

올시즌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된 4백87명 중 ‘메이저리그 물’을 먹어본 선수는 모두 19명,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서재응(31), 최희섭(29)과 윌슨 발데스(30), 호세 리마(36)를 보유한 KIA가 4명으로 최다이고 1명뿐인 SK와 우리 히어로즈가 최소다. 나머지 6개 팀은 2~3명이 메이저리그를 경험했다.

올시즌에 가장 크게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선수는 단연 KIA의 호세 리마. 이름값으로도 리마가 역대 최고 용병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이던 1999년 21승을 비롯해 통산 89승을 올린 리마의 서클체인지업과 스플리터는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SK의 다윈 쿠비얀(36) 역시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한신)을 고루 거친 베테랑이다. 시범경기에서 쿠비얀은 1백50㎞를 넘는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압도했다. 롯데의 마티 매클레리(34), 다양한 변화구로 무장한 LG 제이미 브라운(31)은 일찌감치 에이스 자리를 예약했다. 삼성의 웨스 오버뮬러(32), 한화 브래드 토마스(31)는 시범경기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아직 판단은 이르다.

이들 해외파에 못지 않게 메이저리그 물을 먹은 국내파 투수들도 만만치 않다. 동갑내기 서재응과 김선우(31·두산)가 대표주자. 서재응과 김선우는 최근 들어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각각 4월1일과 3월30일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재기를 노리는 삼성 조진호(33)는 유력한 5선발 후보다.

지난해 한화에서 3번을 치며 3할2푼1리 22홈런을 기록한 제이콥 크루즈(35ㆍ삼성)는 올해 삼성으로 옮겨 양준혁·심정수와 클린업 트리오를 이룬다. 홈런왕 후보 1순위인 히어로즈 브룸바(34)는 용병과 토종을 통틀어 최고의 오른손 거포다. 메이저리그 텍사스, 일본 오릭스 등을 거친 브룸바는 각 팀 투수들의 경계 대상 1호. 멕시코 국가대표 출신인 롯데의 카림 가르시아(33)는 4번 타자 이대호의 뒤를 받치게 된다. 왼손 타자인 가르시아는 지난 3월20일 두산과의 시범경기에서 김선우의 바깥쪽 직구를 밀어서 홈런을 쳤을 만큼 파워가 뛰어나다. KIA 발데스는 용병치고는 보기 드문 ‘발바리’다. 발데스는 시범경기에서 도루 10개로 1위에 오를 만큼 스피드가 강점이다. 토종으로는 최희섭이 유일하다. 지난해 5월 국내로 복귀한 최희섭은 올해는 본격적인 홈런왕 경쟁에 뛰어들겠다고 공언했다. 힘에서는 용병들을 압도하고도 남는 최희섭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시즌 초반 성적은 어떨까. 아직까지는 판단을 보류해야 할 만큼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선수가 드물다. 롯데의 중심 타선을 책임져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카림 가르시아는 개막 2연전에서 7타수 1안타에 그쳤고 한화의 클락 역시 6타수 무안타에 허덕였다. 삼성의 크루즈 정도만이 개막전에서 3타수 2안타로 이름값을 해냈고, 우리 히어로즈의 클리프 브룸바가 1일 목동에서 열린 시즌 홈 개막전에서 홈런포를 터뜨렸을 뿐, 나머지 타자들은 아직까지 메이저리거로서의 명성에 못미치고 있다.

시범경기에서 ‘파워’ 선보여…관중몰이 기대

투수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롯데의 매클래리가 첫 등판에서 5이닝 동안 6안타 7실점의 뭇매를 맞은 것을 비롯해 한화의 마무리 브래드 토마스가 이미 블론 세이브(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 등판해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하는 것)를 기록했다. SK와 LG의 에이스로 활약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케니 레이번(SK)과 제이미 브라운(LG) 역시 3월29일 개막전에서 일합을 겨루었지만 각각 3이닝 5안타 4실점, 4와 3분의 2이닝 7안타 4실점으로 고전했다

메이저리거의 꿈을 접고 국내 유턴을 선언한 서재응은 4월1일 국내 복귀전에서 6이닝 동안 5안타 1실점으로 호투를 했다. 비록 타선의 지원 부족으로 패전의 명예를 썼지만, 당시 경기의 구심을 본 이영재 심판은 서재응의 투구에 대해 “힘 있는 공이 낮게 컨트롤 되는 게 기가 막혔다. 특히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산의 김선우 역시 시범경기 내내 호투를 선보이며 관중들로부터 ‘역시 메이저리거’라는 호평을 들었다.
타석에서도 역시 메이저리그발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KIA의 발데스는 빠른 발로 연방 도루에 성공하며 용병 타자의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하고 있고 롯데 가르시아 역시 예전 펠릭스 호세 못지않은 인기몰이를 할 태세다.

 


여기에 최희섭까지 대열에 합류해준다면 올시즌 프로야구에서는 메이저리그 못지않게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연일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 시즌에 모두 19명의 메이저리그 출신이 동시에 뛰는 것은 세계 어느 리그에 가서도 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5백만명 이상의 관중 동원 목표를 세운 KBL. 그 열쇠는 메이저리그 출신 해외파들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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