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사 의거 배후에 조선 왕조 의친왕이 있었다면…”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4.14 16: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극단 에이콤 인터내셔널 윤호진 대표 / “하얼빈역 의거 장면은 매우 극적인 소재”

 

안 중근 의사의 영웅담이 뮤지컬로 재현된다. 극단 에이콤인터내셔널의 윤호진 대표는 요즘 안의사의 의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윤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뮤지컬계의 간판 인물이다.

연극 연출가 출신인 그가 지난 1995년 12월 무대에 올린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는 해마다 진전된 버전으로 변신하면서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국내 창작 공연물 최초로 관객 100만명 돌파를 기록하는 등 뮤지컬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불후의 명작 <명성황후>에 이어 또 다른 창작 뮤지컬 대작이 나올 것인가. 윤대표는 지난 3월 말 자신의 무대 인생에 또 하나의 좌표를 찍겠다며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의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안중근 의사는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한민족의 의미를 일깨운 역사적인 인물로 평가받지만 그에 관한 구체적인 흔적은 별로 없다. 후손인 우리 모두의 무관심 탓일 것이다. 윤대표의 <영웅>이 주목을 받는 것은 안의사 의거 100주년(2009년)을 앞두고 그를 제대로 기리기 위한 새로운 모멘텀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명성황후를 뮤지컬로 되살린 그가 교과서에 역사적 사실로만 갇혀 있는 안중근 의사를 어떻게 조명해낼지는 큰 관심거리다.
윤대표를 만나 <영웅>에 관한 모든 것을 들어보았다.

언제부터 <영웅>을 준비했나?

지난 2004년 안중근 기념사업회의 함세웅 이사장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2009년이 안의사 의거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거기에 맞춰서 뮤지컬을 제작하는 것이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때는 그렇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러다 또 사람이 찾아와서 명성황후 후속편으로 제작해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안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첫 번째 이유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있으니까, <명성황후>를 이을 수 있는 소재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에 작가 이문열씨에게 대본을 의뢰했는데 안의사를 둘러싼 에피소드가 너무 부족했고, 이씨가 미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작업이 무산되었다. 그래서 구한말 역사에 참신한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한아름이라는 친구를 발견했다. 한씨가 글을 쓰기 시작해 지난해 말 1차 대본을 내놓았다. 지난 3월25일 제작 발표회 때는 5차 대본을 완성했다.

제작 발표회 직전에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을 다녀왔다고 하던데.

3월 초에 뤼순, 하얼빈, 블라디보스톡 등 안의사의 행적을 따라 제작팀과 함께 현장 답사를 다녀왔다. 뤼순의 감옥에서 나와 교수대까지 걸어가는 언덕길을 걸으면서 ‘서른 살 안팎의 안의사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라고 반문해보았다. 안의사는 1909년 10월26일 거사를 한 뒤 그해 겨울부터 다음해 3월26일까지 감방에서 만주의 매서운 겨울을 맞았을 것이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감옥에서 동양 평화를 생각하던 안의사야말로 영웅이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담아서 안의사의 내면을 진지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뮤지컬 소재로 적당한가?

뮤지컬은 감동과 재미를 주어야 한다. <명성황후>는 스테디셀러다. 관객이 지루하지 않으니까 찾는 것이지 재미없으면 보겠나? 명성황후는 뮤지컬을 통해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영웅>을 통해서 안의사를 우리 시대로 불러내고 싶다.

인간의 내면을 추적하는 것은 연극적인 공간이다. 재미가 없다. 반면 뮤지컬 공간은 볼거리가 있어야 하고 그만큼 스펙터클한 공간이다.

안중근 의사의 의지와 웅대한 기개와 믿음,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시각화해 감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하얼빈역의 의거 장면은 극적인 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안의사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안의사에 대해 알려진 것이 너무 없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것만 빼고는 모두 상상력으로 메워야 한다. 조선조 말에 ‘익문사’라는 조직이 있었다. 일종의 국가정보원 같은 것이다. 헤이그 밀사 파견 등에 자금과 조직을 지원한 것이 바로 ‘익문사’다. 픽션이지만 <영웅>에서는 의친왕 이강이 이 조직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등장한다. 안의사가 받았던 ‘의병참모중장’이라는 직함도 누군가 내린 것으로 그리고자 한다. 안의사 의거의 배후에 조선 왕조가 있었다면? 여기서 상상력이 출발한다.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았던 궁녀(설희)도 등장한다. 이 궁녀가 일어와 춤, 노래에 출중해 을미사변 후 이토의 눈에 띄어 그의 총애를 받게 된다는 픽션도 추가했다. 설희는 이토와 함께 만주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그 기차에서 그를 죽이려다 실패한다.

제작비는 어느 정도 예상하나?

50억원 정도 들지 않겠나 생각한다. 명성황후는 1995년에 12억원을 투자해서 만들었다. 지금 돈으로 따지면 20억원이 넘는다. 명성황후도 재공연을 할 때마다 조금씩 볼거리를 늘렸다. 굿 장면이나 무과 급제 장면은 초연할 때 없던 장면이다. <명성황후>에서 얻은 경험이라면 장중하고 무게가 있는 작품이 오래간다는 점이다. 묵직한 소재가 극을 오래가게 하는 힘이다.

원래 연극 연출가가 아닌가. 뮤지컬과 연극, 뮤지컬과 악극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뮤지컬은 음악적 요소가 강하다. 연극은 대사로써 상상력을 극대화시킨다. 악극은 넓게 보면 뮤지컬의 범주에 들지만 판소리나 민요 등 우리의 전통적인 연희 방식이나 정서를 많이 첨가해 뮤지컬과는 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뮤지컬 극단에 비해 라이선스 공연물이 적은 편이다.

나는 연극 연출가로 출발했다. 우리 것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고 자부한다. 굳이 라이선스 공연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몽유도원도>도 치밀하게 정리해서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무대로 개작했다. 곧 재공연을 할 것이다.

지난해 대형 창작 뮤지컬이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는데.

소재 자체가 부실했다. 작품 하나를 하려면 몇 년씩 숙성시켜야 한다. 남의 작품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돈을 꽤 번 것으로 알고 있다.

<명성황후>는 초연 이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요즘도 <명성황후>에서 1년에 70억원 정도의 매출이 나온다. <영웅>이 국내 무대에서 성공하면 중국이나 일본 시장에 갈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의 흥행은 기대할 만하다. <명성황후>에서는 일본인들이 가해자이지만 <영웅>에서는 조선인 안중근이 가해자로 나온다. 따라서 일본 팬들의 거부감이 덜할 것이다. 안의사의 ‘동양평화론’과 이토 히로부미의 ‘동아공영론’을 대비시켜 전개해나가는 것도 일본인들의 시선을 끌 수 있으리라 본다.

현재 뮤지컬협회장을 맡고 있는데.

관객이 늘지 않는데 제작비가 오른다면 결국 공멸할 것이다. 국내 공연계의 비용을 상승시키는 주범은 단기 공연이다. 배우를 비롯한 인건비의 상승도 만만치 않지만 가장 큰 문제는 대관료다. 장기 공연할 곳이 마땅하지 않고, 그래서 대관료가 너무 비싸다. 국·공립 기관인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까지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모두 대관료를 올렸다. 얼마 전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이들 공연 시설에 “돈 벌 생각 말라”라고 말했는데 어떤 형태로든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세종문화회관은 지금 조명 사용료도 따로 받고 있다.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게 있다면.

새 정부가 재계에 친 기업 마인드를 보여주고 있지만 공연계에도 그런 관심을 표명해달고 부탁하고 싶다. 창작 뮤지컬을 지원하는 펀드 상품 같은 것도 마련해 문화 산업을 일으켜주었으면 한다. 이동식 텐트 극장인 빅탑씨어터를 들여와 상설 뮤지컬 공연장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텐트를 칠 만한 공유지의 사용 대가로 서울시에서는 매출액의 8%를 요구하더라. 그러면 일반 극장 대관료보다 더 비싼 셈이다. 너무 가혹하다. 정부나 지자체들이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 공연업계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서태지 노래를 뮤지컬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빅탑씨어터용으로 적당한 것 같아서 5년 전에 서태지 노래만으로 꾸며지는 작품을 기획한 바 있다. 이후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중단한 상태다. 서태지측에서 별도의 저작권료와 이익금의 50%를 달라고 했는데 제작사 입장에서 들어주기에는 무리였다.

국내 공연계 현황은 어떤가?

그나마 뮤지컬이 연극보다는 낫다. 뮤지컬 극단 중에서 빚이 없는 극단은 PMC와 에이콤 정도가 아닐까 싶다.

국내 뮤지컬의 수준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한국 뮤지컬 배우들은 아시아 톱 수준이다. 우리는 옛부터 가무에 능한 민족이 아닌가. 일본의 경우 뮤지컬 시장이 클 뿐이지 우리나라만큼의 열정이나 다양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국내 뮤지컬의 거품론도 나오고 있다.

우리 뮤지컬 제작비 수준이 영국과 맞먹는다. 오히려 영국이 더 싸다는 소리도 나온다. 뮤지컬을 하는 사람이 늘었지만 지금 거품이 끼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언젠가는 빠질 것이다. 신규 자본이 창작 뮤지컬 쪽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있다. 유명 라이선스 공연으로 몰려 거품을 조장하는 것 같다.

영국에서도 뮤지컬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국 현지에서 <보이첵>을 공연하려고 기획하고 있다. 일종의 현지 주문 제작인 셈이다. 내년쯤 공연할 계획이다. 예산 규모는 7억~8억원 수준으로 국내 제작비보다 싸다. 오는 5월쯤에 그쪽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