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돈 들여 꼭 가셔야 했나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 승인 2008.04.2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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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결특위 소속 의원 등 5명 중남미행…목적은 “예산 제도 조사”, 일정 대부분은 관광

 
제17대 국회의원 임기를 불과 한 달여 남겨둔 시점에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위원장과 위원들이 관광성 해외 출장을 떠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회 예결특위 원혜영 위원장, 통합민주당 변재일 위원, 무소속 이원복 위원을 비롯해 신해룡 수석전문위원(차관보급), 임명현 입법조사관 등 5명은 지난 4월18일부터 29일까지 10박11일 일정으로 중남미 지역으로 해외 출장을 떠났다. 미국을 경유한 이들의 방문지는 멕시코·쿠바·코스타리카·페루 등 4개국이었다. 출장 목적은 ‘예산 제도 관련 연구 조사’. 출장 경비는 국외 여비 규정에 따라 국회 예산으로 집행된다.
그런데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들의 해외 일정을 보면 예산 제도와 관련된 연구 조사라기보다는 관광을 목적으로 한 출장이라는 의혹이 짙다. 이들은 세계적인 해변 휴양지인 멕시코 칸쿤을 거쳐 우리나라와는 미수교국인 쿠바의 하바나에 머물렀다. 마지막 행선지였던 페루에서는 일행을 두 개 팀으로 나누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티티카카 호수와 잉카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마추픽추도 둘러본다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그나마 일정표를 보면 코스타리카의 산호세와 페루의 리마에서 예산과 경제 관련 기관을 방문한다고 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번 해외 출장 지역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인 데다, 출장 기간 일정의 대부분이 관광으로 채워져 있어 외유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예결특위 일행 5명은 지난 4월18일 오전 10시 대한항공 KE035편에 탑승해, 미국 현지 시각으로 4월18일 오전 10시30분쯤 미국 동부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같은 날 오후 12시23분 애틀랜타를 떠난 일행은 오후 2시5분쯤 멕시코의 칸쿤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칸쿤은 세계 최고의 해변 휴양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칸쿤의 남쪽에는 엘 레이(El Rey) 왕이 지배했던 마야 유적지가 있다. 일행은 이곳에서 4월20일까지 2박3일 동안 머물렀다. 여기서 별다른 일정은 없었고, 일행 모두가 자유 시간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 행선지는 풍광이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유명한 쿠바의 수도 하바나였다. 이곳에서도 4월20일부터 22일까지 2박3일 동안 머물렀는데, 칸쿤에서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쿠바는 아직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에 대사관이나 해외 공관이 없다. 이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하바나 무역관 관계자들이 무역관 방문을 비롯해 현지 안내를 맡았다. 이처럼 멕시코와 쿠바 등에서 머문 처음 4박5일 동안은 관광과 휴양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해외 출장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되는 지역들이었다.
그리고 4월22일 하나바를 떠난 일행은 24일까지 코스타리카의 수도인 산호세에 체류했다. 주코스타리카 한국대사관측에서 일행을 줄곧 안내했으며, 현지 여행사를 통해 산호세 시내 등을 관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나마 이번 출장에서 제대로 된 ‘일’을 처음으로 한 곳은 산호세였다. 예결특위 일행의 일정표를 보면 코스타리카의 예산 관련 기관이나 경제 단체 등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 국회 예결특위 관계자는 “코스타리카 국회의장과 예산위원장을 만나기로 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해당 의원측 “연락 안 된다” “지역구에 있다” 말 돌리며 ‘쉬쉬’

4월24일 산호세를 떠난 일행은 같은 날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 도착했다. 예결특위 관계자는 “페루에서는 한국·페루친선협회측과 면담이 있고, 한 대학의 예산센터 담당 교수와 페루 예산 제도에 대해 논의하기로 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도 관광 코스는 빠지지 않았다. 일정표에 따르면, 이곳에서 4월26일까지 2박3일 동안 머무르며 세계적인 관광지인 티티카카 호수와 마추픽추 등지를 둘러보기로 되어 있다. 일행은 1팀과 2팀으로 나뉘어, 1팀은 티티카카 호수를 볼 수 있는 페루 훌리까로 떠나고, 2팀은 마추픽추를 관광하기 위해 페루 쿠스코로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1팀은 원혜영 위원장과 임명현 조사관, 2팀은 변재일·이원복 위원들과 신해룡 수석전문위원으로 짜여졌다.
티티카카 호수는 안데스 산맥의 해발 3천8백12m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다.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에 있는 이 호수의 면적은 8천3백㎢로 우리나라 충청북도 규모와 비슷하다. 마추픽추는 잉카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세계의 신(新) 7대 불가사의에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임기를 불과 한 달여 남겨둔 시점에 해외 출장을 간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17대 국회의원의 임기는 오는 5월29일에 만료된다. 그리고 18대 임기는 5월30일부터 개시된다. 따라서 이들 일행이 귀국하는 4월29일은 17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기 한 달 전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시점에 해외 출장을 떠났던 것일까.
원래 예결특위의 중남미 지역 출장은 지난 1월10일부터 20일쯤으로 잡혀 있었다. 그런데 당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권 인수 작업을 한창 진행하던 때였다. 여기에 여당이었던 통합민주당은 손학규 전 지사를 당 대표로 선출하는 문제를 놓고 의원들 간에 물밑 접촉으로 분주했다. 한나라당 역시 공천 시기와 방법을 놓고 이명박 당선인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 간의 기 싸움이 팽팽했던 시기였다. 이처럼 정치권이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중남미 출장은 연기되었다가 이번에 성사된 셈이다.
그러나 17대 국회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해외 의정 활동을 떠난 것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17대 국회가 끝나고 18대로 접어들면 국회의 모든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 위원들이 대폭 재조정된다. 따라서 현재 예결특위 위원장이나 위원이라고 해서 18대 국회에서도 예결특위에 소속될 것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원위원장 일행은 중남미의 예산 제도를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머나먼 출장을 떠난 것이다.
특히 지난 4·9 총선에서 낙선한 이원복 위원이 일행에 포함된 것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위원은 한나라당 소속이었다가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인천 남동 을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따라서 17대 국회가 끝나면 임기도 만료된다. 이번에 당선되어 18대 국회에 재입성하게 된 원혜영 위원장(경기 부천시 오정구)이나 변재일 위원(충북 청원군)과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국회 예결특위 소속 위원장과 위원 50명 가운데 단 3명만이 해외 출장을 떠난 것도 정상적인 의정 활동으로 보기 힘들다. 여기에 출장자로 선정된 기준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이처럼 이번 출장과 관련해 ‘감추어야 할 비밀’이 많아서일까. 원위원장을 비롯한 해당 위원측은 이번 해외 출장과 관련해 한결같이 ‘쉬쉬’ 하는 분위기다. 원혜영 위원장실 관계자는 지난 4월23일 있었던 전화 통화에서 “위원장님과 지금 연락할 수 없다”라고만 짧게 답변했다. 변재일 위원측 관계자도 같은 날 “지금 지역구에 계셔서 통화하기 힘들며 29일 이후에나 통화할 수 있다”라고만 말했다. 이에 기자가 “해외에 나가 계시느냐”라고 묻자 “외국에 계신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답변이었다. 이원복 위원측도 지난 4월24일 “의원님은 생각하실 것이 있어서 지금 해외에 계신다. 통화하기 힘들며, 30일 이후에나 연락이 가능하다”라고만 답변했다. 이번 출장의 리더인 원혜영 위원장은 엄호성 의원과 함께 지난 1월에도 10여 일간의 일정으로 이집트·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독일 등 유럽 5개국으로 출장 가서 외유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예결특위 관계자는 “중남미 예산과 관련해서 연구가 덜 되어 있고, 자료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번 출장은 중남미의 예산 관련 기관 관계자들을 만나고 코트라(KOTRA) 현지 관계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서 격려하기 위해 이루어졌다”라고 밝혔다. 예상했던 대로 관광성 출장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국회의원들이 해외 출장으로 구설에 오른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물의를 빚어 국민으로부터 빈축을 사곤 했다. 대사관 등 우리나라 해외 공관이나 현지 단체를 ‘잠깐’ 방문한 후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 동안 현지 관광을 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사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원이 해외 출장을 떠날 경우 의원 보좌진은 이를 ‘대외비’에 부친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통하는 이미 오래된 불문율이다. 의원 역시 소리 소문 없이 야반도주하듯 인천공항을 빠져 나간다. 그리고 외부에서 의원실로 의원을 찾는 전화가 오면 “지역구에 계시는데 지금은 전화 받기가 힘드시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느냐”라거나, “지방에서 쉬고 계시는데 나중에 연락해달라”라는 말만 녹음기처럼 반복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지방 의회 의원들도 다투어 해외로…일부는 출장이라면서 부인 동반

한 달 후면 18대 국회가 새롭게 시작된다. 국민은 당당하고 떳떳한 자세로 인천공항 게이트에서 손 흔들며 해외 출장길에 오르는 ‘의원님’의 뒷모습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한편 지방 의회 의원들도 4·9 총선 이후 봇물 터지듯이 관광성 외유를 떠나면서 비난을 사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의회 일부 의원들은 지난 4월10일부터 23일까지 남아프리카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5개국 연수에 부인을 동반해 빈축을 사고 있다. 해외 연수 명분은 ‘인삼 시장 개척 및 홍보’였다. 하지만 연수 일정에 관광지 방문과 삼바 축제 등 현지 행사 참여 등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대구 수성구의회 의원 11명도 지난 4월14일부터 7박9일 일정으로 체코와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유럽 5개국을 방문해 지역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이들 의원 역시 해외 연수보다는 국립공원이나 성당 등 유명 관광지를 찾아 관광성 출장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충청북도 옥천군의회 의원 7명과 옥천부군수 등 공무원 7명은 지난 4월24일부터 7박8일 일정으로 인도로 떠났는데, 일정 대부분이 갠지스강이나 인도 사원 등 관광지로 짜여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구 달서구와 중구 의원들, 충청북도 청주시 의원, 경기도 의원 등이 총선 이후 외유성 해외 연수를 떠났다는 구설에 휘말려 있다. 바야흐로 관광성 해외 출장이 조류 독감처럼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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