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내 청춘’의 연가
  • 이재현 기자 yjh9208@sisapress.com ()
  • 승인 2008.04.2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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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잃은 소년의 ‘훔쳐보기’ 성장 드라마 … OST도 수준급
한 편의 좋은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상당히 오래간다. 캄캄한 극장 안에 앉아 두 시간 남짓 스크린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시간을 잊게 한다. 지난 1987년 12월에 개봉했던 <개 같은 내 인생>이 그런 영화다. 제목이 주는 어감이 살벌하지만 스웨덴에서는 ‘개 같다’가 ‘좋다’는 의미로 쓰인다니 <아름다운 내 인생> 정도가 될 것 같다. 잉게마르라는 소년을 통해 벌어지는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생각하기 좋아하는 이소년은 엄마를 잃고 시골 친척 집에 내려가 산다. 한적한 마을에서의 보잘 것 없는 에피소드는 그러나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한 소년의 성장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한 영화다.
1997년 8월에 개봉되었던 <마르셀의 여름>은 가족 영화로 분류되었지만 성장 드라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한 소년이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전지전능한 사람으로 존경한다. 하지만 나중에 그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아버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새 엄마가 우리 엄마를 죽였다<할람 포> 역시 소년 할람(제이미 벨 분)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청소년기의 아픈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2년 전, 익사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할람은 새엄마 베리티(클레어 폴라니 분)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한다. 아버지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그녀가 재산을 노리고 엄마를 죽였다는 것이다. 할람은엄마가 죽은 후부터 ‘훔쳐보기’에 열중한다. 아버지와 베리티의 정사는 물론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의대상이다. 할람은 정사를 훔쳐보면서 모든 상황을 메모하고 간직한다. 이 사실을 안 베리티는 할람을 유혹하고 집을 떠나게 한다. 에든버러로 대책 없이 떠난 할람은 우연히 엄마와 빼닮은 케이트(소피아마일즈분)를 만나 정신없이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호텔리어인 케이트는 할람을 주방에 취직시켜주는데, 할람은 수시로 그녀의 뒤를 밟으며 누구를 만나는지, 집이 어디인지 알아낸다.
처음부터 끝까지 ‘훔쳐보기’로 일관하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묘한 호기심을 주는데 대부분의 장면이 정사로 채워져 미성년자 관람 불가가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감독이 왜 소년에게 ‘훔쳐보기’라는 장치를 채웠는지 짐작이 잘 안 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영화를 위해, 할람의 외로움을 위해 그랬을까. <할람 포>에서 음악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장면 장면마다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잔잔하게 깔리면서 영화를 끌어가는 또 다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근래에 보기 드문 명작으로 2007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은 작품.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4월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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