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꼬집고 시장은 엇나가고 화 못참는 프랑스
  • 파리·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8.05.0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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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65.1% “베이징올림픽에 반대” 파리 시, 달라이 라마 명예시민으로 추대 대통령 등 정부만 중국과의 화해에 쩔쩔

 

저항과 혁명의 상징인 프랑스 기질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티베트의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다. 최근 무가지 ‘인 메트로’가 서방 10개국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베이징올림픽을 반대하는 프랑스인의 비율은 65.1%로 반중국의 선봉에 서 있다.


프랑스는 지난 4월7일 가장 드라마틱하게 성화 봉송을 저지해 전세계의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키기는 했지만 그 여파가 만만치 않다. 사태 당시에 중국 내부에는 철저한 뉴스 통제로 파리에서의 사태가 크게 전달되지 않았다. 수차례에 걸친 시위대의 습격이 있었고, 세 차례에 걸쳐 성화가 꺼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방송에는 문제가 터질 때마다 평화로운 파리의 모습만이 전파를 타고 있었다. 프랑스 언론은 자국 내의 언론을 통제하여 사태 확대를 막으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라고 분석했다.

공격 대상 된 까르푸 사장 “매출 감소 없지만 사태 추이 주시”

그러나 봉송 주자 중 한 명이자 장애인이었던 진징에게 시위대가 덤벼들던 영상이 전파를 타면서 사태는 달라졌다. 휠체어에 탄 채 몸으로 성화를 지킨 것으로 전해지면서 여론이 자극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방송은 당사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전하며 성화를 지킨 용기 있는 선수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사태 초기 상황을 알지 못했던 중국인들에게 이런 내용이 전해지자 중국에서는 즉각 큰 파장이 일어났다. 중국 시민의 반발은 지난 4월20일 9개 도시에 있는 프랑스 매장 까르푸에서의 산발적인 시위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언론들은 연일 중국의 움직임과 인터뷰를 보도하며 프랑스에 반대하지만 물건은 계속 구입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보도했다. 그러나 사태가 간단치만은 않다. 중국의 시위대는 프랑스 국기에 프랑스를 나치로 표현하는가 하면 일부는 현재 프랑스령 섬이지만 과격한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코르시카를 자치화시키라며 항의하고 있다. 티베트의 독립을 구하려면 프랑스 내부 사태도 똑같이 해결하라는 논리인 셈이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올림픽 개막식을 보이코트하겠다는 뜻까지 내비쳤던 사르코지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프랑스 상원의장인 크리스티앙 퐁슬레 의장을 통해 당시 사태의 주인공이었던 진징 선수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퐁슬레 의장은 진징의 손에 입맞춤을 하는 등 극도로 예의를 갖추었다. 프랑스 정가의 중국통이자 전 국무총리인 쟝 피에르 라파랭 또한 직접 친서를 들고 중국을 찾았다. 라파랭 총리는 후진타오 주석에게 샤를 드골의 전기를 선물했다고 한다. 샤를 드골이 2차대전 후 중국을 처음으로 찾은 지도자였음을 상기시키고, 양국 간의 변함없는 우정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는 후문이다.


현재 중국 시위대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까르푸의 죠제 루이 뒤랑 사장은 현재 중국에 입점한 1백12개 까르푸 매장의 직접적인 매출 감소는 없다고 밝히면서도 “현재의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에 투자하려는 다국적 에너지 기업인 수에즈의 제라르 마스트랄레 사장 또한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에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수억의 중국 인민들을 냉각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신중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티베트 문제로 국민 여론이 중국에 대해 싸늘해져 있지만 경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마구 나갈 수는 없다는 계산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뒤따라올 비판을 무릅쓰고 대규모의 경제인들이 동행했으나 인권담당 차관보를 배제했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이번의 경우 사르코지가 보이코트 의견을 내비치는 등 강수를 두기는 했으나 이미 중국에 대한 프랑스의 눈치보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지난 시라크 정부에서도 이라크 전쟁을 두고 미국과 대립하면서도 팔아야 할 것이 많았던 중국과는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심지어 2004년을 중국의 해로 선포하며 다양한 행사와 에펠탑을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이벤트까지 연출했으나 인권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해에 치른 도서 박람회에는 중국을 주빈국으로 초대하면서 중국계 노벨상 수상자로 파리에 망명 중인 가오싱젠은 반 중국계 인사라는 이유로 초대조차 하지 않아 많은 지식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눈치보기의 극치였던 셈이다.


이처럼 사르코지 행정부 고위층이 진화 작업에 열중하는 와중에 파리시는 4월21일 달라이 라마를 파리 명예시민으로 추대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한쪽에서는 “화해 무드에서 다시 기름에 불을 붙이는 격이다”라고 우려했으나, 파리 시는 한술 더 떠 지난 4월3일 국가 전복죄로 중국 정부로부터 3년의 실형을 받은 중국계 인권운동가 후지아 씨를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자존심 상한 프랑스 체육인들도 집단 반발 움직임

현재 파리시장은 좌파 사회당의 베트랑 들라노에다. 들라노에 시장은 추대식 직후 AFP와의 인터뷰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를 파리의 명예시민으로 추대하는 것은 이란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를 추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못박았다. 이러한 움직임은 비단 들라노에 시장만의 입장이 아니다. 68 혁명의 주역이었던 다니엘 콘벤디트 유럽연합 의원을 비롯한 좌파 정치인은 물론 일부 우파 인사들까지 반 중국 친 티베트 움직임에 가담하고 있다.


또한 지난 성화 봉송에서 중국 민원경찰에게 성화 봉송을 저지당해 자존심이 상한 프랑스의 체육인들 사이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들은 성화 봉송을 저지했던 시위대와 중국 정부를 싸잡아 비난하며 이번 올림픽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라는 로고가 새겨진 배지를 착용할 것이다”라고 발표했지만, 같은 날 프랑스 육상위원회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표가 있은 직후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배지 착용을 금지시킨 체육부장관의 지지율이 급락해 프랑스의 반 중국 정서가 즉각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현재 프랑스와 중국 간의 마찰은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사태의 확산을 원치 않는 중국 정부와 적극적 화해 공세를 펼치고 있는 프랑스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프랑스 언론은 베이징올림픽 이면의 중국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국영방송인 프랑스 2의 경우 베이징 관련 기사를 거의 매일 한 꼭지씩 보도하고 있다. 내용에서도 베이징 시 주경기장의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을 중단한 아프리카 육상 선수의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다른 공영·민영 방송 또한 중국의 식량 문제에서 노동 환경 및 인신 매매나 장기 판매까지 각종 사회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올림픽에는 영어보다 프랑스어가 공식적으로 먼저 사용된다. 그것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텡이 프랑스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지구촌 축제의 이면을 그냥 두고 넘기지 않으려는 태세다. 지금 파리에서는 자유와 저항의 대명사인 68 혁명 40주년 행사로 분주한 가운데 ‘베이징 사태’를 놓고 자유와 인권을 위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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