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도 없는 머슴들 “교육 받아라” 눈 가리고 아웅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 승인 2008.05.0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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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안 맞는 ‘대기 공무원 특별 재교육’

 

관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세종로와 과천 청사 주변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던 한숨 소리가 점차 자조(自嘲)와 냉소로 바뀌고 있다. “우리는 영혼조차도 없는 머슴들이다”라는 푸념도 들린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바짝 얼어붙어 있던 청사 주변의 팽팽한 긴장감이 그 압박에 못 이겨 외부로 튕겨져 나오는 듯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공무원들에 대한 이대통령의 추상같은 ‘꾸중’이 두 달여간 계속 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지난 4월 중순의 어느 날 저녁. 서울 종로1가의 한 음식점에서 공무원으로 보이는 40~50대의 남성 서너 명이 취기를 빌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술자리의 화제에 오른 인물은 이대통령과 제리 로이스터 프로야구단 롯데 감독이었다. 경상도 억양이 강하게 묻어 있는 한 남성은 “매년 꼴찌만 하던 롯데 감독으로 부임해서 로이스터가 제일 처음 한 것은 선수들의 자신감과 기를 살려준 것이다. 우리는 하나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부심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감독이 그러니 코치들도 따라가고 자연히 선수들도 바뀌었다더라. 그런데 우리는 이게 뭔가. 대통령도 그렇고 덩달아 장관들까지 부하 직원들 약점 찾기에 바쁘다. MB(이대통령)는 로이스터한테 많이 배워야 한다”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날 또 하나의 화제가 술자리 위에 올라왔다. 4월1일부터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기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특별 재교육의 실상에 대한 조소였다. “대기 공무원들 놀리지 말고 교육시키라고 위에서 한마디 하니까, 부랴부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래서 가보니까 뭐 제대로 준비도 안 해 놨더라. 몇몇이 불만을 터뜨리니까 그 사람들은 보고서만 제출하라며 집에 보내주고. 덕분에 집에서 놀면서 교육수당까지 더 받게 생겼다고 좋아하더라”라는 얘기도 들려왔다.


대기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특별 재교육은 이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대통령은 지난 3월25일 국무회의석상에서 예외 없이 공무원들에 대해 강한 질책을 했다. 그는 “기획재정부가 각종 명목으로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조직 개편으로 발생한 잉여 인력을 한방에 모아놓는데, 이런 편법적 관리는 안 된다. 그러니까 ‘모피아’(재경부 마피아)라는 말을 듣는 것 아니냐”라고 호통쳤다. 숨죽인 회의석상에서 이대통령의 추상같은 질책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잉여 인력은 놀리지 말고 6개월, 1년 코스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시킬 수 있도록 하라. 교육을 받다 중간에 다시 돌아와서는 안 된다. 그런 온정주의로는 절대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이대통령은 원세훈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정말로 공무원이 줄었는지 직위별로 리스트를 만들어 제출하라. 장관이 밑의 말만 들으면 1년 만에 관료 사회로 돌아가는 ‘요요 현상’이 되풀이된다. 공무원들에게 놀아나지 말라”라고 거듭 강하게 질타했다.


이대통령의 발언으로 관가가 발칵 뒤집혔음은 당연하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를 대통령이 잘 지적했다는 일부 여론의 지지도 뒷받침되었다. 각 행정 부처는 애써 조직했던 TF팀을 대부분 서둘러 해체했다. 행안부는 각 부처에 교육 대상자 명단을 통보하라고 재촉했다. 각 부처는 잉여 인력으로 구분되는, 이른바 보직을 받지 못한 대기 공무원들로 교육 대상자 명단을 작성해서 부랴부랴 행안부에 통보했다. 3월까지 보직을 받지 못한 4급 이상 공무원이 그 대상이었다.


이 명단에는 모두 2백5명이 이름을 올렸다. 국장급 고위 공무원 40명, 3·4급 1백60명, 특정직 5명이었다. 명단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고민이 돌출했지만 관가의 대처는 기민했다. 3월25일 대통령의 질책이 나오고 1주일도 채 안 되어 모든 교육 준비를 끝마치는 놀라운 업무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확히 1주일 만인 4월1일 중앙공무원교육원에 모여서 입교식을 가졌다. 행안부는 “교육 대상 공무원은 모두 6개월간 교육을 받고 3개월 단위의 평가를 거친 뒤 부처별로 결원이 생겼을 때 보직을 받는다. 교육을 받더라도 보직을 받지 못한 공무원은 추가 교육을 받거나 명예퇴직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번 교육에 이어 5급 이하 잉여 인력 대상자들도 곧 선별해서 교육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 “공무원들에게 놀아나지 말라” 질타

그런데 이 교육 프로그램이 당초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불거진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행안부에 문의했다.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당초 예정대로 현재 문제 없이 교육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재차 “2백5명 전체가 빠짐없이 다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확인해보겠다”라며 즉답을 유보했다. 이어진 대답은 “일반직 공무원과 별정직·계약직 공무원으로 구분해서 교육을 따로 따로 실시하고 있다”라는 것이었다.


정확한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시사저널>은 직접 교육에 참가한 공무원들을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이 교육에 참가한 공무원 세 명과 어렵사리 접촉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현재 모두 교육원에 있지 않고 밖에 있었다. 이들은 일반직 공무원이 아니고 별정·계약직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ㄱ씨는 “일요일인 지난 3월30일께 집에서 쉬다가 난데없는 교육 통보를 받았다. 이틀 후부터 6개월간 교육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나는 별정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6개월 안에 보직을 받지 못할 경우 자동 면직이 되는 상황이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데, 난데없이 무슨 교육인가 싶었다. 4월1일 입교식에 가보니 역시 나 같은 별정·계약직 공무원들의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번 교육 대상에 일반직 공무원과 별정직 및 계약직 공무원이 모두 한데 섞여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별정·계약직 공무원인 ㄴ씨는 “별정·계약직은 일반직과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대기발령 기간인 6개월 안에 보직을 받지 못할 경우 8월31일자로 자동 면직된다. 나를 포함해서 대개 거의 모든 별정·계약직 공무원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따리를 싸고 있다. 하지만 교육원에 가서 교육 프로그램을 받아보니 교육 과정이란 것이 무슨 정책 수립 과정에 대한 방법이나 절차,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정보화 시스템 등이었다. 즉 다시 공무원으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교육 프로그램이 짜여 있었다. 복귀 가능성이 있는 일반직 공무원들에게는 필요할지 모르지만 우리 같은 면직 예정자들에게는 맞지 않는다. 당연히 별정·계약직 공무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번 교육에 참가한 전체 2백5명 중에 별정직 및 계약직 공무원은 4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차피 면직이 예정되어 있어 교육의 실효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별정·계약직 공무원까지 모두 교육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 결국 문제가 된 셈이다. 숫자 부풀리기에 급급한 ‘전시 행정’이라는 비난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부 부처들은 이미 명예퇴직을 신청한 사람이나 정년퇴직 대기자까지 무리하게 교육 대상자로 포함시켜 인력감축 실적을 부풀렸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ㄴ씨는 “별정·계약직의 경우 원래 국가에서 초빙할 때부터 개인적으로 모두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라고 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공무원 신분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업무에 관한 일반 강의를 그것도 6개월씩이나 한자리에 모아놓고 한다면 그런 강의를 누가 들으려고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별정직 공무원인 ㄷ씨는 “행안부에서도 이런 우리들의 불만을 충분히 사전에 예상했을 것이다. 실제 교육 첫날 입교식이 끝나자마자 별정·계약직은 2층 세미나실로 따로 모이라고 하더라. 거기서 자연스럽게 불만이 터져나왔다. 자신을 어느 대학의 교수라고 밝힌 한 사람은 ‘내가 명색이 대학 교수인데 여기서 무슨 교육이 필요한가. 진작 이런 결정이 되었더라면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학교로 돌아가서 강의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여기서 강의를 듣고 있으라는 건가’라며 반발하더라. 주최측에서도 할 말이 없었던지 ‘그래서 별도로 이렇게 모이라고 한 것 아닌가. 어쨌든 현재 신분이 공무원이니 교육은 해야 할 것 아니냐. 그렇다면 여기서 강의를 듣는 대신 다른 방법을 한 번 제시해보라’고 설득하더라”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결국 문제를 제기한 이 교수는 교육에 참가하는 대신 개인 프로젝트 연구안을 결과물로 내는 것으로 하고 귀가 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별정·계약직까지 교육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전시 행정”

ㄱ씨는 “나 같은 경우도 주최측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이 교육을 받겠는가’라고 하기에 ‘솔직히 내게 지금 이 프로그램이 무슨 소용이 있나. 차라리 개인 개발을 위해서 ○○교육을 받고 싶다’고 말하자 ‘현재 그런 교육을 시킬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그냥 밖에 나가 사설 학원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고, 대신 수강증을 제출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다음 날로 바로 나왔다”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40여 명의 별정·계약직의 경우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모두 귀가 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내 후배 한 명은 그냥 집에 있으면서 무슨 리포트를 쓴다고 하더라. 그게 뭐냐고 물으니 ‘자기개발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이미 다음 직장이 정해졌는지 몰라도 교육 참가도 안 하고 결과물 제출도 안 하고 그냥 집에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1주일 만에 무슨 교육 프로그램 준비를 제대로 했겠나. 일반직 공무원들은 할 수 없이 복귀를 위해서라도 안에서 잠자코 교육을 받고 있겠지만 그들도 갑갑한 심정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ㄷ씨는 “나 역시 지금 집에 있지만 현재 교육 중인 신분이다. 공무원의 경우 교육을 받으면 별도의 교육수당이 추가되기에 기존의 급여보다 월급이 더 많아지는 것은 맞다”라고 밝혔다. ㄱ씨는 “행안부에서도 현재 교육 대상인 공무원들이 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지 않고 외부로 나가는 것에 대해 다소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음인지 ‘현재 교육 중이며 다만 외부 기관에서 위탁교육을 받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추상같은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앞뒤 가릴 것 없이 우선 삽부터 쥐고 보는 ‘제2의 대불공단 전봇대’ 사례가 곳곳에서 잇따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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