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증’ 걸린 대통령 정보 라인
  • 감명국·김지영 기자 ()
  • 승인 2008.05.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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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정보기관 수장들이 저마다 정보보고에 나서면서 정부 정보 시스템에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직접 챙기려는 대통령의 ‘과욕’이 빚은 현상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전례가 없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불과 출범 2개월 만에 지지율 20%대로 급락하고 있다. ‘강부자 내각’ 비난에 이어 청와대 비서관들의 재산 의혹, 여기에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까지 이어지면서 민심의 이반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들고 있다. 벌써부터 ‘탄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남은 5년이 걱정된다”라는 한숨이 새어나온다. “청와대가 민심을 너무 못 읽는다”라고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청와대와 한나라당도 당황하고 있다.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오만과 독선이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가져왔다”라고 질타한 한나라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 분산이라는 이상론에만 빠진 채 정보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해 민심의 이반을 불러일으켰다”라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냉정한 평가였다.

그러나 지금 “그렇다면 과연 현 정부의 정보 시스템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이명박 정부는 직면해 있다. 한마디로 현재 이명박 정부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색깔도 애매모호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이 정보보고 시스템에도 똑같이 적용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자 하는 ‘과욕’이 그것이다. 이대통령은 취임 이후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정례 독대보고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군 통수권자로서 군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 기무사의 직속 상급기관인 국방부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음은 당연하다. 국방부장관과 기무사령관의 갈등설이 새어나왔다.

정보기관의 맏형 격인 국가정보원 역시 예민하게 반응했음은 물론이다. 청와대는 국정원장의 대통령 정례 보고도 부활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정보 수집 기관으로부터 정보보고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이유에서였다. 대통령 일정이 바빠서 대면보고가 힘들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서면으로 대체해서 보고하더라도 대면보고를 원칙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국정원 주변에서는 기무사령관이 월 1회이니 만큼 국정원장은 주 1회, 혹은 월 2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찰청장도 앞으로 대통령에게 직접 정보보고를 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역시 독대 형식이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실제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난 3월 이혜진·우예슬 양 납치 살해 사건이 벌어졌을 때 청와대에 들어가 이대통령에게 ‘어린이 안전 대책’과 관련해 대면보고를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찰청장 역시 대통령의 일정을 고려해서 대면보고와 서면보고를 적절히 안배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너도나도 “대통령 앞에서”…‘독대 정국’ 부활 조짐

ⓒ연합뉴스

경찰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직은 정부 출범 초기여서인지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진 것 같지는 않다. 청장의 청와대 보고가 정례 보고로 정착될 수 있을지 여부는 좀더 기다려보아야 할 것 같다”라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이쯤 되면 과거 ‘독대 정국’의 부활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대통령의 일정상 그 모든 보고 일정의 소화가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를 이대통령의 업무 스타일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해 대선 후보자 시절 이대통령에게 국방 분야 정책을 조언했던 한 예비역 장성의 설명이다.

“이대통령은 서면보고보다는 보고자를 눈앞에 두고 바로 그 자리에서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방대한 양의 구구절절한 보고서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요약이 잘된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대화와 설명을 더 중시한다. 그런 대화 과정에서 보고서의 내용을 습득하는 속도도 무척 빨랐다. 굳이 1 대 1의 독대 형식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반드시 곁에 참모를 두려고 하지도 않는다. 본인 스스로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인 듯하다.”

자연히 여론의 반발이 일었다. ‘독대’라는 말이 예민하게 받아들여진 셈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밀실 보고가 웬 말이냐는 지적이었다. 여기서부터 청와대의 정비되지 않은 시스템의 혼선이 시작되었다. 우선 독대라는 말부터 쏙 뺐다. 청와대의 한 최고위층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과의 독대는 그 누구도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대통령에게 보고를 할 때는 대통령실장이나 정무수석, 대변인 가운데 반드시 한 사람이라도 배석하고 있다. 앞으로 국정원장이 보고할 때도 대통령실장이나 정무수석이 배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독대라는 말 대신 ‘직보’ ‘대면보고’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핵심 관계자의 설명을 좀더 들어보자.

“청와대에서 유일하게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실장뿐이다. 그 외에 어느 누구도 대통령과의 독대는 없다고 보면 된다. 누군가가 배석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과 보고자, 두 사람만 대화를 나누게 되면 커뮤니케이션에 착오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시하는 대통령이나 지시받은 보고자가 나중에 착각해서 서로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이유 때문에 대통령이 누군가에게 보고를 받을 때는 대통령실장 등이 배석하는 것이다.”


“정보보고 라인에서 동맥경화증 나타나고 있다”

좋게 해석하면 굳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뜻이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전에 명확한 시스템 확립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는 셈이었다. 혼선은 또 불거졌다. 정보보고 대상의 혼선이다. 기무사 정보보고는 당초 대통령 독대에서 최근 국방부장관에 대한 주례 보고로 변경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의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기무사령관의 국방부장관 주례 보고가 생긴다고 해서 정보보고 라인이 기무사령관-국방장관-대통령으로 획일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기무사령관은 대통령 보고용 보고서와 국방부장관 보고용 보고서를 별도로 작성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기무사 정보보고서가 일부는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되고, 또 다른 일부는 각 행정 부처의 정보를 취합하는 청와대 대통령실을 거쳐 대통령에게 간접 전달되는 보고 라인 형태를 띠게 된다. 이는 경찰청 정보도 마찬가지다. 이대통령이 경찰 정보를 직접 챙기겠다고 한 이상 대통령에게 직보될 것으로 보이지만, 청와대 대통령실에서도 경찰청 정보는 취합된다. 뿐만 아니다. 대통령실 내에서도 기획조정비서관실과 정무수석실, 민정수석실 등 각각의 기관에서 모두 경찰청 정보를 취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고서의 중간 경유지가 한두 군데가 아닌 셈이다.

이대통령이 주요 정보기관의 보고서를 직접 챙기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의 정보보고서 독점 형태를 부활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과연 효율적인가 하는 또 다른 비판에 직면해 있다.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정보란 그 정보를 최종적으로 수령하는 사람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좌우된다. 아무리 좋은 정보라 하더라도 그냥 보고 넘기는 정도라면 그 정보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 너무 방대한 정보를 대통령이 혼자서 다 챙겨보겠다는 것은 현재의 시스템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자칫 밑에서는 ‘대통령이 이미 챙긴 정보인데…’ 하며 손을 놓을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폐단이 지금 실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 정부에 대해 ‘동맥경화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모든 정보가 청와대에 집중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대통령이 정보를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참모들에 의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한 정보가 대통령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보가 한 곳으로 집중되지만 이것이 제대로 소통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총체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너무 서둘러 과거 정권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새로 짜다 보니 조직 시스템이 엉망이 되었다는 걱정이 나온다.

                                                                                                                    ⓒ연합뉴스 ⓒ뉴시스

청와대 대통령실 내에도 정보 채널 제각각

이대통령을 향한 정보 라인은 크게 네 군데로 나뉜다. 국정원과 기무사, 경찰 그리고 청와대 대통령실이다. 지난 노무현 정권 때에는 이 모든 정보가 일단 청와대의 국정상황실에서 취합되었지만, 현재의 시스템은 바뀌었다. 국정상황실을 없앴다. 대신 대통령실장 아래에 직속으로 기획조정비서관실을 두고 여기서 각 행정 부처에서 올라오는 모든 정보를 취합하는 작업을 한다. 일단 과거 국정상황실의 역할을 기획조정비서관실이 대신하는 셈이다. 물론 이 정보도 이대통령에게 보고된다. 단, 기획조정비서관에 의해서 한 차례 걸러져서 보고된다.

하지만 청와대 정보보고 라인도 명확하지가 않다. 대통령에 대한 청와대의 자체 정보보고 라인은 크게 세 곳으로 분산되어 있다. 기획조정비서관실과 민정수석실, 정무수석실이 바로 청와대의 핵심 정보 부서로 통한다.

기획조정비서관실은 청와대에서 가장 많은 정보량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기획조정비서관실이 청와대 정보의 핵심 부서로 지칭되는 것은 이대통령의 신임이 상당히 두터워 ‘왕비서관’으로 불리는 박영준 비서관의 방대한 업무 영역과 파워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비서관에게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인사수석실 업무뿐만 아니라 민정수석실에서 맡고 있던 대통령실 감찰 업무까지 집중되어 있다. 특히 박비서관은 대통령실 인선을 비롯해 내각 인선까지 사실상 실무 지휘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현 정부의 첫 인사는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비서관의 중요성은 그가 각 행정 부처에서 올라오는 주요 정보들을 취합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청와대 내의 거의 모든 회의의 결과와 그 후속 조치까지도 그의 손에 의해서 최종 취합되어 대통령에게 보고된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일개 비서관이 할 수 있는 업무치고는 너무나 방대하고 과중하다. 한 사람에게만 맡겨지면 과부하가 걸리게 되어 있다”라고 지적한다.

민정수석실은 ‘전통적인’ 청와대 정보보고 라인이다. 역대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주요 사정기관과 유기적인 정보 협력을 해온 터여서 이곳 역시 정보 욕심은 대단하다. 자연스럽게 기획조정비서관실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기획조정비서관실에 밀리다 보니 쓸데없는 신경전이 벌어지는 등 불필요한 소모전이 나타난다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정무수석실은 노무현 정부 때 폐지되었다가 현 정부에서 다시 부활했다. 역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실에서 가장 핵심적인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여기에도 정치 동향과 밀접한 정보가 상당히 필요하게 된다. 실제 박재완 정무수석이 정치권 동향을 중심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실 내에서만도 정보를 다루고 경쟁하는 비서관실이 중복되고 있다. 단순 수치상 이대통령이 맞닥뜨리는 보고서는 각 정보기관과 대통령실 등 모두 6개가 되는 셈이다. 이대통령이 이 모든 정보 보고들을 매일매일 다 소화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이번 쇠고기 파동을 둘러싸고 정부의 위기 관리 능력을 의심하는 우려의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경우 위기 관리 능력이 부실해서 문제가 되었지만, 현 정부는 위기 관리에 대한 의식조차 없다고 힐난하기도 한다. 이는 국정원이나 군, 경찰 등이 대통령을 위한 정보를 올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각종 정보가 대통령 손에서 체증을 빚으며 국민과의 소통 채널이 심각하게 훼손되어가고 있는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의 자체 검증이나 민심 동향 파악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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