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 소종섭·김지혜 기자 ()
  • 승인 2008.05.09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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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집회’에 다수 참여…정치 행동은 자제

ⓒ시사저널 박은숙
“쇠고기를 수입하는 정책에 반대한다. 급식도 그렇고 집에서 사먹는 것도 그렇고, 못 믿겠다. 엄마는 쇠고기만 안 먹으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까지 갔으면 좋겠다. 영어 수업이나 우열반은 말도 안 된다. 잘하는 애들은 좋지만 성적이 중간 정도인 나도 싫다. 정책에도 반대하고 친구들끼리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같이 나왔다.”

지난 5월7일, ‘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한 서울 청계천에서 있은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구일고등학교 정재우군의 말이다. 그는 친구들 세 명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는 정씨처럼 친구들과 함께 온 학생들이 많았다. 인천에서 왔다는 다섯 명의 중·고생들은 발언대에 나와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했다고 개념이 없다고 하는데 학생도 국민이고 말할 권리가 있다”라고 외쳤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온 손정호군은 “광우병은 생존이 걸린 문제다. 내일 시험인데 나왔다. 시험 끝나면 더 나오겠다는 친구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기성 세대에 반항하기 위해 즐거운 놀이 하듯 나왔다”

5월2일 집회 때보다는 많지 않았지만 이날 집회에서도 학생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교육청이 ‘대책’ 차원에서 수백 명의 선생님들을 현장에 보냈지만 학생들의 참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날 여의도공원에서 국회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업은행 본점 들머리에서 열린 여의도 집회에는 청계천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중·고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형태는 다르다. 과거처럼 스크럼을 짜거나 돌을 쥐지는 않았다. 그들의 무기는 입이고, 펜이다. ‘너나 먹어, 미친 소’ ‘저는 아직 15년밖에 안 살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상징적이다. 놀이하듯이 분위기도 밝고 명랑하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자기들을 숨 막힌 환경 속에 몰아넣은 기성 세대에 반항하기 위해 즐거운 놀이로 놀듯이 나왔다. 아이들이 길거리로 나왔다는 데 대해 기성 세대가 반성해야 한다. 오죽하면 애들이 거리로 나왔겠나”라며 새로운 문화를 가진 세대가 거리의 주인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학생들이 거리에 등장한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학생들이 일부 연예인들이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주장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별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 나온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밝혔다. 여의도 집회에서는 정치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는 전단을 나누어주는 사람에게 “이런 것은 나누어주지 않기로 하지 않았냐”라면서 따지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특정 정치 세력이나 조직적인 동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청계천 집회에 참석한 선린인터넷고등학교의 한 학생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친구들이 ‘광우병 걸렸냐’고 농담한다. 친구들이 <PD 수첩>을 틀어놓고 보기도 한다. 영어 몰입교육이나 0교시 수업에도 반대한다”라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당국의 판단과 대응은 과거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5월7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 회의에서 “학생들이 많이 참석한 서울 여의도 집회는 남부, 동작, 구로 등 전교조가 강한 지역이다”라고 말했다. 은연 중 학생들이 참가한 배후에 전교조가 있다고 암시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놀이 문화가 부족하니까…”라며 학생들의 참여를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민심의 흐름을 가벼이 여기고 애써 외면하려는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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