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정보 찾지 말고 연차 보고서 읽어라
  • 정은호 (제로인투자자문 대표) ()
  • 승인 2008.05.0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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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들려주는 투자의 원칙

ⓒAP연합
지 난주 국내의 최대 이슈는 단연 광우병 파동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최대 업적인 청계천에서 개최된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는 1만여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했다고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을 포함해 가장 많은 인원이 거리 시위에 참여한 셈이다.

같은 날(미국 현지 시간 5월2일)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는 ‘오마하의 축제’로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주주총회 전야제가 벌어졌다. 버크셔는 잘 알려진 것처럼 워렌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투자회사다. 버크셔의 주가는 1965년 12달러에서 시작해서 현재 13만 달러를 호가하고 있다. 수익률을 계산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상승률이다. 버핏은 자신이 목표로 하고 있는 매년 20%의 수익률을 넘어 거의 45년간 연평균 30%의 수익률을 올렸다.

버핏은 2000년부터 매년 자신과 점심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경매에 내놓아 수익금을 모두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해왔다. 2007년에도 6억원이 넘는 65만100달러라는 사상 최고가의 낙찰 기록을 세웠다. 점심 한 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듣는 가격이 그 정도이니 6시간에 걸쳐 사심 없는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무료로 가질 수 있는 주주들에게 주주총회는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이날 주주들에게 들려준 버핏의 이야기는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진 평소의 철학과 다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그러나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그의 투자철학 몇 가지는 음미해볼 만하다.


가치 분석 끝나면 과감·신속하게 결단

버핏은 가장 철저한 기본적 분석가다. 이는 그의 컬럼비아 대학 시절 실질적·정신적 스승이었던 벤저민 그래이엄과 데이빗 도드로부터 비롯된다. 이 두 교수는 가치 투자에 관한 최초의 이론을 세웠던 사람들로 버핏은 가장 충실하게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한 사람이다. 주총에서도 버핏은 12세 소년에게 신문을 읽으라고 조언했다. 처음에는 싫어도 더 많이 읽으면 더 많이 배우게 되고 자신이 진정으로 흥미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버핏의 오른팔이자 버크셔의 부회장인 찰스 멍거는 그런 버핏을 ‘에버 러닝 머신(Ever Learning Machine)’이라고 부르고 있다. 투자 종목을 고르는 방식에 대한 질문에 대해 그는 회사의 연차 보고서를 열심히 읽으라고 권한다.

대다수 개인 투자자들은 종목을 선택할 때 내부 정보를 찾아 헤맨다. 남들보다 한발 앞선 정보를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버핏은 ‘나에게 100만 달러와 내부 정보만 있으면 한 달 만에 알거지가 될 수 있다’는 말로 내부 정보를 찾아 투자하는 방식이 부질없는 짓임을 가르친 바 있다. 이런 종목 선정의 방식은 실제 버크셔가 보유한 회사들의 면면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보험사인 Geico, Dairy Queen, 가구회사인 Nebraska Furniture Mart, 그리고 세계 최대의 단일 보석 판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Borsheims 등이 버크셔의 계열사다. 버핏이 평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아는 곳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가치 분석에 의한 종목 선택이 끝나면 나머지는 실행이다. 버핏은 과감하고 신속히 결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총에서도 “5분 내에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5개월 뒤에도 결정을 내릴 수 없다”라는 말로 결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누구나 버핏의 원칙을 따라 투자할 수는 없다. 특히 버핏은 분산 투자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고 있다. 이번 주총에서도 “특별한 기회가 보이면 재산의 75%를 투자하는 것이 맞다”라고 강조한다. 철저히 개인 투자가적인 발상이다. “분산 투자는 프로가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투자자에 해당되는 말”이라는 찰스 멍거 부회장의 말에, 버핏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 그나마 기회는 있다”고 맞장구를 친다. 물론 이것은 투자 종목에 대한 완전한 분석과 확신이 전제될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는 버핏식의 이른바 ‘지르는’ 투자 방식이 얼마나 불편한 투자 방식이 되는지 중국 펀드와 베트남 펀드 등을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특히 버핏은 마켓타이밍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확신이 생기면 아주 짧은 순간에 엄청난 물량을 사들인다. 그리고는 잊어버린다. 나머지는 시장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가격에 도달하면 미련없이 팔아버린다. 지난해 10월에 5배가 오른 페트로차이나 주식을 정점에서 사정없이 팔아치운 것처럼.


성공한 펀드 매니저 키우는 것은 ‘주주들의 신뢰’

우리가 투자하는 펀드는 왜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없을까? 간단히 말하면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크셔의 주식은 대략 주당 13만 달러에 거래되는 A주와 A주의 30분의 1에 해당하는 B주(의결권은 A주의 2백분의 1)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돈으로 어떤 주식을 얼마나 사는지는 전적으로 버핏에게 달려 있다. 주주들의 신뢰가 버핏의 유일한 제약이다. 우리의 펀드는 운용상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다. 남의 돈을 가지고 운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관에 더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철저하게 매니저를 감시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이런 상황에서 버핏식의 몰빵 투자(법적으로도 금지되어 있지만)나 수익 실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투자는 어떤 매니저도 선택할 수가 없다. 결국 누구나 버핏의 방식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버핏과 같은 현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반대로 10년만 매니저를 믿고 투자를 맡길 수만 있다면 우리도 많은 워렌 버핏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별 문화 행사도 없는 촛불문화제에 야간자율학습을 팽개치고 달려나온 것은 놀이 문화가 없어서가 아니다. 이번 광우병 파동은 근본적으로 신뢰의 문제다. 세계 수십개 국가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어정쩡하고 불투명한 방식은 아니다. 버핏에게서 가장 부러운 점은 그에 대한 주주들의 절대적인 신뢰다. 1분기 순이익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64%가 줄었음에도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라며 오히려 버핏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수많은 주주들, 그것이 버핏의 고수익 비결이 아닐까? 우리도 우리의 펀드 매니저들을 믿어주자, 오랫동안. 그래서 장기간 많은 수익이 나서 부자가 되면 좀 검소하게 살면서 재산의 85%쯤은 기부도 하고 상속세도 알아서 내자. 버핏처럼. 그러면 우리도 현인 비슷한 모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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