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려면 뛰는 물가부터 확실히 잡아라
  •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08.05.0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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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상황 인식 너무 안이…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률 격차 6%는 심각한 수준…물가안정 없이 성장도 불가능

지금 이명박 정권은 성장을 우선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4월 한 조찬 강연에서 “물가 걱정들 하는데 일자리가 없어지는 상황에서 물가 안정을 추구해야 하나”라고 되물었을 정도다. 물가 안정보다는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하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물가 안정 없이 지속 가능한 성장이 이룩된 사례가 역사적으로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혹시 물가상승률이 연말에도 3% 후반에 머무를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물가상승률은 장차 훨씬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월에 이미 4.1%로 크게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더 빠른 속도의 상승세를 보였다. 2월에 6.8%를 기록한 뒤 3월에는 8.0%를 기록했다. 이런 속도라면 10%를 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생산자물가가 이처럼 빠르게 상승하면, 소비자물가도 이에 따라 더 빠르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손해를 보면서 생산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의 상승률 격차가 무려 6%에 달한다는 데에 있다. 우리 경제사를 살펴보면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의 상승률이 이렇게 큰 격차를 보인 것은 1974년·1980년과 1998년뿐이다. 이 당시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1974년과 1980년에는 20%를 훌쩍 넘었었고, 1998년에는 거의 10%에 육박했었다. 성장률은 1980년과 1998년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1974년에는 경기 하강이 매우 빠른 속도를 보였었다.
간단히 말해서, 강만수 장관은 현재의 경제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경제를 책임진 입장에서는 어느 무엇보다 물가 불안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물가 불안이 나타나면 어떤 경제정책으로도 성장률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성장률을 높이려고 하면 할수록 물가 불안은 더욱 심각해지고 국제 수지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위 강연에서 강만수 장관은 “환율이 수출에 큰 효과를 주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환율 하락은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고 반문하고 싶다”라고도 말했다. 이 발언 역시 물가 안정보다는 경제 성장을 우선하겠다는 의사 표시에 다름 아니다. 환율을 상승시켜야 수출이 증가하고, 성장률도 높아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가 최근에 직접 겪은 경험은 그의 이런 기대가 틀렸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정책 당국은 2000년 하반기부터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2000년 7월 말
1천1백8원이던 환율을 2001년 12월 말에는 1천3백26원까지 끌어올렸다. 이처럼 환율을 올 리면 수출 가격은 내려갈 것이고, 그러면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경기도 상승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2001년 중 원화 가치 상승률이 -12.4%를 기록했지만, 수출은 무려 12.7%나 감소했다. 당시 세계 경제가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나,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처참한 실적을 기록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세계 경제가 부진할 때에 수출량을 늘리면 수출 가격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패했던 정책을 또 거듭하려고 하는 셈이다. 하물며 미물도 직접 경험을 하면 배우는데 말이다. 더욱이 다음과 같은 그 반대 사례까지 있다.
ⓒ뉴시스

재정 지출 늘려서 경기 부양해도 장기적으로는 효과 없어

환율은 2001년 말 1천3백26원에서 2007년 10월에는 9백7원까지 떨어진 바 있었다. 원화 가치가 그 사이에 무려 46.2%나 상승했으므로, 수출업체로서는 수출 가격을 50% 이상 올려야 했다. 인건비 상승과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감안하면 수출 가격은 더 많이 올라야 했다. 그렇다면 수출은 줄었을까? 아니다. 환율 하락세가 정착한 뒤인 2002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수출은 두자릿수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가경제 경영의 최고 책임자라면 이런 정도는 미리 살펴보았어야 하지 않은가.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추경 예산을 편성해서까지 경기를 살리려고 몸부림이다. 그는 “(추경 예산이) 인위적 경기 부양이라고 하는데 국채를 발행하는 것도 아니고 남은 돈(세계잉여금) 쓰겠다는데 무슨 문제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그만큼 경기부양에 목을 매달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되물어보자. 재정 지출을 늘려서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과연 지속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결코 지속 가능한 일이 아니다. 세계잉여금으로 부양한 경기는 올해의 성장률에 반영될 뿐이다. 그 다음해에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계속해서 재정 지출을 늘려가자는 것인가? 어느 수준까지 재정 지출을 늘려가자는 것인가?
바둑에서는 수순에 따라 사활이 달라진다.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물가 안정보다는 성장을 앞세움으로써 정책의 수순을 잘못 선택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이미 그 징조가 나타났다. 물가 불안이 심각해졌고, 성장률도 크게 낮아졌으며, 국제 수지마저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4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1%를 기록했고, 무역 수지는 4월까지 무려 6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4분의 1분기의 전기 대비 성장률이 연률 2.9%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성장률이 유지되면 올해 성장률은 3%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최악의 경제 실적을 기록 중인 데에 대해, 정책 당국은 석유와 농산품의 국제 가격이 폭등한 탓이라고 강변하지만, 이것은 설득력이 없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석유 가격이 네 배나 상승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경제난은 이명박 정권의 경제 정책이 불렀거나 더 심화시켰다고 해야 한다. 환율을 상승시킴으로써 말이다.
집권 초기부터 경제 성적이 이 지경인데 집권 말기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겠는가. 현재의 경제 정책을 유지한다면 파국적인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물가가 불안해지면 낮은 성장률마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은 악순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어떤 정책 수순을 밟아야 할까. 당연히 물가 안정을 최우선적인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이런 정책을 펼쳐서 초장기 경제 번영을 이룩한 나라가 있다. 미국이 그렇다. 미국 경제는 1990년대 초반에 중대한 위기적 국면에 처했었다. 1987년에는 주식시장이 폭락했고, 1980년대 말에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로 돌아서면서 주택대부조합(우리나라 저축은행과 유사)이 거의 모두 도산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1990년과 1990년의 성장률이 각각 0.8%와 -1.0%를 기록했다.
그렇지만 미국의 정책 당국은 재정 지출을 증가시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발상조차 하지 않았다. 재정 지출 증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스태그플레이션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수년 동안 경기 하강을 각오해야 한다는 교훈을 1970년대에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가 안정에 최선을 다했고, 물가가 안정된 수준의 범위 안에서 금리를 미세하게 인하시키는 정책을 계속해서 펼쳤다. 그러자 경기가 차츰 살아났고, 1990년대 내내 초장기 경기 팽창 국면을 연출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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