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받고 치료 받아 “지금은 암환자 상담”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 승인 2008.05.20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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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1기 극복한 백옥순씨

ⓒ시사저널 박은숙
“암 수술을 받은 후에 집안을 깨끗하게 정돈했다. 내가 죽고 난 후 누군가 살림살이를 보고 욕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5월 유방암 선고를 받은 백옥순씨(48ㆍ여)는 수술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수술을 받고 나서야 암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암이 현실로 다가오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안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수술을 받았지만 암이라는 병 자체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암 판정을 받기 한 달 전 백씨는 왼쪽 유방에서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만져지는 멍울을 발견했다. 동네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해보니 유방암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러나 설마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암이 자신에게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정밀 진단을 받기 위해 찾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재차 암 선고를 받고 나서야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백씨는 “유방암 1기라는 판정을 양정현 교수를 통해 들은 그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아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만, 정작 암환자가 되어버린 나는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도 암이 전이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수술도 비교적 쉽게 끝났다. 예전처럼 남편이 하는 사업을 도와주는 등 일상 생활도 이어나갔다. 그렇지만, 암환자인 자신을 대하는 가족들의 배려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백씨는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오죽하면 옆집 꼬마가 나에게 군대는 언제 가느냐고 물었겠는가. 항상 모자를 쓰고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하루는 고등학생 딸이 엄마가 먹고 싶은 것을 사주겠다며 사무실로 찾아왔다. 점심으로 다슬기 국을 먹었는데 돈이 모자랄까봐 나 몰래 손가락을 꼽으며 돈 계산을 하는 딸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사춘기 때 한창 웃으며 살아야 할 딸과 중학생이던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다”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마치자 빠졌던 머리카락도 새로 나왔고 피부색도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겉모습만 보아서는 암환자였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암을 이겨낸 후 백씨의 삶에는 변화가 생겼다. 그녀는 “무엇보다 나를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그 후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유방암 환자들을 매주 한 번씩 찾아가서 상담해주는 자원봉사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또 수술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암 수술을 받을 때 림프선도 같이 떼어냈기 때문에 손에 힘이 약해졌다. 그래서 헬스클럽에서 바벨을 들어 올리는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지금은 남편과 같이 골프도 즐길 정도로 건강해졌다”라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유방암은 다른 암과 달리 수술 후 20년 정도가 지나야 완치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다. 언제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백씨는 “재발한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을 것 같다. 치료를 받으면 낳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라고 느꼈다. 유방암에 걸린 여성들은 우울증이나 수치심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자신감을 잃고 과거보다 소극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암환자 중에는 자신보다 심각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들을 보면 내 병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진다. 이런 자신감과 긍정적인 생각이 암을 이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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