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민영화, 기업들 ‘과거를 잊지 마세요!’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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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시절 받은 대출, 채무 조정 작업 들어갈까 노심초사…1조2천억원 받은 동부그룹, 악재 될까 ‘안절부절’

ⓒ시사저널 박은숙
산업은행의 민영화가 사실상 확정되면서 금융가에 ‘민영화 괴담’이 떠돌고 있다. 괴담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민영화를 앞두고 산업은행 내부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가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적잖은 비리가 색출되리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산업은행에 쌓여 있는 부실 대출이 정리될 경우 기업들의 줄도산 사태가 일어나리라는 것이다.

지난 5월 중순 검찰은 공기업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 중에는 산업은행 대출 비리와 관련된 압수수색도 있었다. 산업은행측은 문제의 그랜드백화점 대출 비리가 이미 5년 전에 종결된 사건인데 왜 이 시점에 다시 들추어내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시중에는 검찰의 이런 행보가 민영화가 이루어질 경우 예상되는 공기업들의 내부 반발을 미리 누르려는 조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지난 5년간 수시로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기 때문에 털어도 나올 것이 없다”라며 곤혹스러워했다.

민영화에 대해 산업은행 내부에서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이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올 초부터 꾸준히 민영화 작업을 준비해왔기에 내부적으로 큰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 산업은행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금융가에 두 가지 괴담 떠돌며 ‘흉흉’

정부의 산업은행 민영화 의지는 확고하다. 민영화 작업은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곽승준 대통령국정수석기획이 주도하고 있다. 곽수석은 올해 안에 민영화를 완결한다는 목표 아래 대상 공기업들을 선정하고 있으며, 이들 공기업이 안고 있는 각종 문제점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금융가에서는 산업은행의 새로운 비리가 포착되어 청와대가 검찰을 통해 손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 후유증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대출받은 기업 쪽에서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공기업 상태에서의 산업은행과 민영화 이후의 산업은행의 대출 기준이 각각 달라 몇몇 기업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설이 괴담으로 변질되어 나돌고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기업이 동부그룹이다.
동부그룹은 반도체를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하고 동부전자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면서 산업은행의 대출을 받았다. 동부가 산업은행이 주도하는 신디케이트론을 통해 받은 대출 규모는 2001년 5천억원대였으나 2004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면서 1조2천억원대로 불어났다. 대출 규모가 이렇게 급증함에 따라 ‘특혜 대출’이라는 논란도 일었다. 산업은행이나 동부그룹에서는 충분한 담보가 제공되고 대출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동부그룹은 재무 상태가 부실한 동부일렉트로닉스를 수익성이 양호한 동부한농화학과 합병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동부일렉트로닉스의 영업 성과가 1조2천억원대의 신디케이트론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실했기 때문이다. 동부는 이런 성의를 보인 끝에 채권단으로부터 지난해 말 신디케이트론의 재연장조치를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자구 노력을 선행한다는 단서 조건을 달았다.

산업은행 “민영화 후에도 큰 변화 없을 것”

최근에는 동부하이텍의 수익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동부한농과 동부일렉트로닉스의 합병 이후 시중 은행들이 대출 한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은행이 민영화될 경우 동부하이텍의 숨통을 터주고 있는 신디케이트론이 이전과는 다르게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점이다. 조달 금리가 높아져 대출 금리가 오르게 되면 동부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은 분명하다. 이런 사정은 다른 기업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민영화를 하더라도 금리를 비롯한 대출 운용에 당장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부가 절반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산금채 발행 금리를 터무니없이 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영화된 산업은행이 기존 여신에 대한 재평가와 채무 조정 작업을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도 “산업은행의 민영화가 동부하이텍에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공기업 시절의 산업은행이 5천억원에서 시작해 1조2천억원대까지 ‘끌려 들어갔지만’ 민영화된 산업은행은 최근 1~2년 사이 동부하이텍에 대한 기존 여신 한도를 축소하고 대출을 회수해간 시중 은행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산업은행은 새 총재가 오고 민영화 방안이 구체화되면 기존 여신이나 대출 금리에 관해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영화 괴담이 얼마나 현실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적잖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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