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연기에 화약 냄새 날까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 승인 2008.05.2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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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G, 경쟁사 제품 막기 위해 현금 지원 우리담배 “영업 방해 행위 묵과할 수 없다”

ⓒ시사저널 황문성
경기도 안양시의 한 담배 판매점에서는 최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KT&G 영업사원이 신생 담배업체인 우리담배의 담배와 광고판을 허락도 없이 치워버리면서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몇 차례 주먹다짐이 오가기도 했다. 이를 말리던 점주 또한 덩달아 폭행을 당했다. 다행히 이들은 현장에서 합의를 해 고소 사태까지 벌어지지는 않았다. 지난 5월3일 대전시 대덕구 KT&G 본사 앞에서는 4백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KT&G의 조직적인 영업 방해에 항의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우리담배 대리점주 및 직원들이었다.
양사의 영업 사원들끼리 현장에서 부딪히는 일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대리점주가 단체로 경쟁 업체에 몰려가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들은 이날 KT&G가 자신들의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삭발 투쟁에 나선 사람도 있다. 한 대리점주는 “KT&G 영업사원이 우리담배의 판매를 방해한 여러 사례를 확보하고 있으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했다.

신생 담배업체인 우리담배 대리점주들이 영업방해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며 KT&G를 고소해 담배 업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우리담배 “CCTV 등으로 증거 모두 확보했다” 주장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KT&G의 영업사원인 노 아무개씨가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판매점의 우리담배를 허락도 없이 자사 담배로 교체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노씨는 매장에 전시되어 있던 텐팩(일종의 광고판)까지 멋대로 치워버렸다.

우리담배측에서는 이를 신생 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처사라고 보고 있다. 정환선 우리담배 강서대리점 대표는 “전국적으로 비슷한 영업방해 사례가 50건을 넘는다. CCTV 등을 통해 이미 증거를 모두 확보한 만큼 조만간 KT&G를 추가로 고발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고소한 문제의 영업사원은 최근 검찰로부터 업무 방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어 법적으로 문제 삼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 임영무

그러나 KT&G측은 “일부 영업사원이 일으킨 문제일 뿐 회사와는 무관하다”라고 주장했다. 하소영 홍보팀 과장은 “회사에서는 매년 전사적으로 공정 거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중간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돌출 사건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KT&G가 인센티브까지 주면서 경쟁사 제품의 판매를 방해하고 있다는 말은 올 초부터 일선 판매점에서 흘러나왔다. 서울 여의도 ㄹ빌딩 내 ㄱ판매점 사장 김 아무개씨는 “영업사원이 찾아와 다른 회사 담배를 팔지 않는 대신 50만원의 지원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손님 중에는 외국산 담배 소비층도 꽤 있기 때문에 거절했다”라고 귀띔했다.

일부 목이 좋은 지역의 경우 지원금이 100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배(담배 판매액)’보다 ‘배꼽(회사 지원금)’이 큰 셈이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KT&G 담배만 팔기도 한다.

담배 판매 영업사원 사이에서 여의도 63빌딩 주변은 ‘크린존’으로 통한다. 인근 소매점이 대부분 KT&G와 독점 계약을 맺어 경쟁 업체들은 접근조차 쉽지가 않다. 간혹 외국산 담배를 판매하는 경우 김씨처럼 지속적인 회유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KT&G를 상대로 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측은 현재 조사 배경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KT&G가 판매점에 불법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경쟁사 제품의 판매를 막고 있다는 소문의 진상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KT&G와 한국담배판매인회의 관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담배판매인회는 담배 판매점의 권익 증진을 위해 지난 1965년 설립되었다. 담배 판매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이 단체로부터 실사를 받아야 하며, 현재 전국적으로 1백65개의 조합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 단체가 담배 판매인을 위한 조직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담배판매인회의 요직은 KT&G 출신 인사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상근 부회장의 경우 KT&G 시장과 협의하여 임명하도록 정관에 명시되어 있을 정도다. 심지어 사업도 KT&G 사장이 위촉하는 범위 내에서만 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KT&G를 위한’ 단체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담배업계의 한 관계자는 “KT &G는 전매청 시절부터 독점적으로 시장을 지배해온 탓에 담배 판매인의 영향력이 여전하다. 그러나 KT&G가 민영화된 마당에도 관련 정관을 고수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KT&G “일부 영업사원의 문제다” 반박

여의도의 판매업주인 김 아무개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KT&G 영등포 지점의 총괄팀장과 영업사원이 여러 차례 찾아와 우리담배를 팔지 말라고 압박을 가한 것이다. 이들은 김씨가 거절하자 같은 건물에 또 다른 소매점의 판매 허가를 내주었다. 이로 인해 김씨는 최근 담배 판매 수익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토로한다.

그는 “문제의 판매점 자리는 이전에도 불법 영업을 하다 여러 차례 벌금을 물었다. 그런 자리에 담배 판매를 허가한 것은 보복 조치로 밖에 판단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행 담배 소매인 규정에 따르면 소매인 영업소 간에 50m 거리를 유지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구내 소매점과 일반 소매점은 거리 제한을 두지 않고 있는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담배판매인회측의 입장이다.

담배판매인회의 한 관계자는 “건물 규모나 유동 인구 등에 따라 건물에 추가로 소매점을 개설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김씨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KT&G측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소영 과장은 “외국산 담배와 달리 국산 담배는 광고를 하는 데도 제한을 받는다. 이런 불리한 여건 때문에 일부 영업사원이 과잉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회사 차원의 방해는 있을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담배판매인회의 정관은 현재 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KT&G가 영향을 미치는 상근부회장 선임 조항은 이미 삭제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담배판매인회의 판매점 중복 설치에 대해 관할 구청인 영등포구청에서 이미 조사에 나섰다. 박의환 영등포구청 지역경제과 계장은 “현재 지식경제부에 관련 사안에 대한 유권 해석을 의뢰해놓은 상태다. 조사를 통해 판매점 허가 절차에 문제가 나타날 경우에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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