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종주국 ‘종주’도 잃고 메달도 빛 잃을까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8.05.2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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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에서 ‘불효자’로 전락할 위기 맞은 한국 태권도

ⓒ시사저널 임영무
태권도가 국기인 대한민국으로서 올림픽 태권도는 아쉬움이 많은 종목이다.
올림픽 태권도는 체급 수가 세계선수권대회 16체급(남녀 8체급씩)의 절반인 8체급(남여 4체급씩)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독식을 막는다는 이유로 한 나라가 출전할 수 있는 체급을 겨우 4체급(남여 각 2체급씩)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까지 시범 종목이었다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정식 종목이 되었다. 한국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를 따내 종주국의 체면을 세웠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금메달 2개, 동메달 2개에 그치고 말았다.

2007년 중국에서 벌어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남자는 8체급 가운데 1체급, 여자는 3체급에서 우승을 차지해 겨우 4체급만 석권했을 뿐이다. 그동안 아시아권에서는 중국, 타이완, 이란, 구미권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네델란드, 벨기에 그리고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이 강세를 보여왔다.

한국은 지난 4월28일 중국 허난 성 뤄양 시에서 벌어진 제18회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도 중국, 이란, 타이완 등에게 밀려 종합 4위에 그치는 망신을 당했다. 그 대회는 이번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할 4명의 선수 외에는 모두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출전했다.

국가대표 김세혁 코치는 “태권도는 전세계의 평준화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제는 외국팀에도 한국 코치들이 30% 밖에 안 되고, 대부분 자국 코치들이 지도를 하고 있을 정도로 저변이 넓어지고 수준이 높아졌다”라고 말한다.

한국은 시드니올림픽부터 이번 베이징올림픽까지 남자는 68kg급과 80kg 이상급, 여자는 57kg급과 67kg급에만 출전해오고 있다. 남자 58kg급, 80kg 이하급 그리고 여자 49kg급, 67kg 이상급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베이징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선수는 남자 부문에서는 68kg급의 손태진(삼성 에스원), 80kg 이상급의 차동민(한국체대)이다. 여자 부문에서는 57kg급 임수정(경희대), 67kg급 황경선(한국체대) 선수가 각각 출전한다. 남자 68kg급 대표 선발은 재경기 끝에 손태진으로 확정지을 정도로 난산을 겪었다. 이 체급은 워낙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손태진은 국제 경험이 많지 않아 큰 경기에는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는 점이 있지만 공격 연결이 매끄럽고 득점이 많은 얼굴 공격을 잘한다. 미국 쿠바 터키 선수들과 메달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아테네올림픽에서 문대성 선수의 금빛 돌려차기로 유명해진 80kg 이상급의 차동민도 손태진과 마찬가지로 국제 경험이 많지 않고, 상대적으로 신장(1m89cm)이 작다. 이 종목에 출전하는 유럽이나 북미 선수들은 대개 키가 2m를 넘는다. 그러나 찬스를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임기 응변이 좋다.

전세계 평준화로 메달 따기 어려워져

차동민은 이 체급에 전통적으로 좋은 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프랑스·그리스·이탈리아·말리 선수 등과 메달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여자 57kg급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정재은,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장지원이 각각 금메달을 차지했고, 임수정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임수정은 승부 근성이 강하고, 포인트를 따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러나 너무 자신감을 보이다가 역습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멕시코·독일 선수 등과 메달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황경선은 한국 태권도 선수로는 유일하게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고 있다.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아쉽게 동메달에 그쳤지만,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우리가 출전하는 4체급 가운데 가장 금메달에 가까운 선수로 꼽히고 있다.

황경선은 풍부한 경험과 노련미가 돋보이고 있다. 본인도 이번이 마지막 대회라는 각오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어서 태권도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 선수단 가운데서도 금메달에 가장 가까운 선수다. 다만 프랑스·미국 등 라이벌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아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황경선은 지난해 9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벌어진 베이징올림픽 세계예선대회에서도 종아리 부상으로 프랑스의 글라디스 에팡그 선수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무르고 말았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황경선의 유일한 라이벌인 에팡그는 그동안 황경선과 세 차례 맞붙어 1승2패의 만만치 않은 전적을 거두었다. 2005년,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는 황경선이 각각 6 대 2, 1 대 0으로 이겼었고, 맨체스터 대회에서는 황경선이 부상 때문에 패했다. 에팡그는 왼발잡이로 다리가 길지만 동작이 크고 스피드가 떨어진다.

김세혁 코치는 “황경선은 방심이 가장 큰 적이고, 임수정은 기습 공격만 허용하지 않으면 안정권이다. 손태진의 체급은 워낙 세계의 벽이 두터운 체급이라 안심할 수 없고, 차동민은 체격과 체력의 열세로 고전이 예상된다”라고 내다보았다. 황경선과 차동민 등 두 명의 올림픽 대표를 배출한 한국체대의 문원재 감독은 “올림픽에서 맞서야 할 상대들은 국내 선수보다 체격 조건과 힘이 좋다. 이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일단 체력 강화에 중점을 두면서 얼굴 공격과 뒤차기 등 고난도 기술을 연마해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문감독은 “경기 비디오 자료 등 정보 수집을 통해 이미 메달을 다툴 선수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이들의 장·단점에 따른 맞춤형 훈련을 해나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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