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까지 멈춰설 판…유류세, 이제는 뜯어고쳐라
  • 홍창의 (관동대 경영대학 교수) ()
  • 승인 2008.06.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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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 세금 인상이 물류 비용 상승과 물가 폭등으로 이어져…화물차ᆞ버스에 한해 면세 등 특단의 조치 필요

요즘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은 국제 유가의 급작스런 변동이다. 유가가 어디까지 치솟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과거부터 원유가 추세를 보면, 지난 30년간 기름값은 꾸준히 상승했다. 1973년에 원유 1ℓ에 19원 하던 것이 1974년에는 74원이 되고 1979년에는 1백26원,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급기야 7백원을 넘어섰다. 두 차례 오일 쇼크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그런데 국제 유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나라마다 매우 다르다. 아마도 친숙하지 않은 단위 사용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언론에서 원유를 표현할 때의 단위는 ‘리터’가 아닌 ‘배럴(1백58.9ℓ)’이다. “두바이유 1배럴에 1백16달러다”라고 하면 굉장히 비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1ℓ로 따져 7백30원이라고 하면 수출국 관점에서는 아직 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수 1ℓ를 사기 위해 1천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면, 물보다 싼값에 소중한 자원인 석유를 판다고 불만스러워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통된 의견은 앞으로도 기름값이 계속 오르리라는 것이다. 지금이 고유가 시대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지금을 저유가 시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 유가는 정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계속 오르막길을 달리는 것이기에 이를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국제 원유가의 꾸준한 상승 와중에 그동안 정부가 한 일은 두 차례 에너지 세제 개편을 통해 경유 세금을 대폭 인상한 조치와 지난 3월 세금을 약간 인하한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후자는 국제 원유가 상승과 원화에 대한 달러화 상승으로 2주간의 반짝 행복으로 끝났다.

유류세 항목 잡다하고 중복적…유가에서 비중도 너무 커
특히 경유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과거 휘발유의 반값에 불과했었는데 휘발유값을 뛰어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경유차 운전자들은 경유 가격 급등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물가 폭등을 야기했다는 데 있다. 경유 세금 인상이 경유차 운전자뿐만 아니라 전국민을 곤궁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섣부른 경유 세금 인상은 곧바로 물류 비용 상승과 물가 폭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산에 기여하는 화물차의 활동에 무거운 세금을 덧붙이는 것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민이 소비하는 모든 재화가 운송과 무관하지 않듯이 물가를 구성하는 제품 가격 속에 경유값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방에서는 시내버스까지 운행이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면 오늘날 같은 기름값 위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일단 정부가 두 가지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첫째가 높은 유류세이고, 둘째가 높은 달러 환율이다.
국민은 늘 궁금해한다. “유류에 붙는 세금은 왜 이리 비싼가?” 미국 독립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은 사람의 생애에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죽음’과 ‘세금’을 꼽았다. ‘세금’이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도 담겨 있을 것이다. 유류에도 세금은 붙어야 한다. 그러나 죽을 만큼 세금이 붙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유류 세금은 항목이 너무 많다. 관세,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부과금, 부가가치세. 우리나라 유류세는 문명국의 세금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잡다하고 중복적이다. 석유 제품 값에서 차지하는 세금의 비중이 너무 크다는 사실도 국민을 지치게 하고 있다.

앞으로도 기름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금의 유류 세율 체제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2달러 수준일 시절에나 통하는 개념이다. 과거에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값싸다고 낭비할까 두려워 높은 세금으로 과소비 방지의 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30년 전에는 부자들만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다녔을 테니까, 당시에는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 세금 체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자동차 수가 크게 늘었고, 국제 유가도 1백50달러를 육박한다. 서민들은 살인적인 차량 유류비에 과소비는커녕 꼭 필요한 경우에도 차량 이동을 주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세율을 내린다고 낭비할 서민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유류세에 관한 개념은 사치세에서 생필품세로 바뀌어야 한다.

교육세 청산 등 ‘에너지 세제 개편’으로 성난 민심 달래야
이제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에너지 세제 개편’을 단행할 적기다. 우선적으로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부과금이 구조 조정의 1호 대상이다. 논리도 안 맞고 시대에 뒤떨어진 항목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액을 대폭 인하해야 한다. 경유세의 경우, 화물차와 버스에 한해서 면세까지 검토해야할 정도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 다음 고민해야 할 문제가 환율이다. 새 정부는 ‘경제성장률 7% 공약’에 발목이 잡혀 1970년대식 수출 드라이브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 환율 상승을 방치하다 보니 거의 모든 나라 화폐에 대해 약세인 달러화가 유독 원화에 대해서는 강세다. 수출을 위한 일방적 환율 정책보다는 수입과 수출을 함께 고려하는 쌍방형 환율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수출하는 대기업 도와주겠다고 내수 물가만 잔뜩 올려 서민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원화가치를 높여 고유가 충격을 연착륙시키는 방안도 생각해봄 직하다. 몇 년 전에도 국제 원유가가 급등했지만 원화가 달러당 9백원 정도로 버티면서 슬기롭게 위기를 피해나간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정부가 매번 내놓는 대책은 임시 방편뿐이다. 그리고 정부는 유류세를 인하하라는 주장이 거세질 때마다 동문서답하고 있다. 유류세 인하를 반대하는 정부의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과소비 우려이지만 속내는 세금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가지 다 합당한 주장이 못된다. 유류 가격에 대한 수요의 탄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고, 시장 현실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된 바가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정부는 세금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걷고 있어 세수 감소를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낭비와 도덕적 불감증이 공무원 사이에 만연되고 있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작금의 교육과학부 사태에서 보듯이 국민의 혈세를 아무런 부끄럼 없이 자신의 모교와 자녀의 학교에 보조금 형식으로 지원하는 공무원이 존재하는 한, 유류세 중에서 교육세는 최우선적으로 청산되어야 한다.
뉴타운 공약에 의해 촉발된 강북의 집값 급등과 경기 부양책에만 골몰하는 상황을 보고 정부와 여당이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물가 불안정 속에서는 ‘유류 세금 인하’가 그나마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리라 본다. 높디 높은 유류 세금을 그대로 둔 채 물가 안정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국민은 반발하게 되어 있다. 반발이 지나치면 범법 행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기승을 부리는 유사 연료다. 휘발유 유사 연료뿐만 아니라 디젤 엔진에 경유 대신 등유까지 사용하는 모양이다. 선량한 서민들이 범법자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등유가 경유의 대체 연료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덩달아 등유 세금도 올려놓았다. 문제는 등유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계층이 영세 서민층이라는 점이다. 모든 문제는 나름으로 최적의 해결 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정당한 해결 방식을 애써 외면해 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물류가 마비되고 대중 교통이 엉망이 되어 국가의 위기가 올 수 있다. 정부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국민의 소리를 겸허히 듣는 성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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