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고기 안 되면 돼지고기 팔면 되고~” 생각대로 안 되는 자영업자들의 현실
  • 김미영 (창업전문프리랜서) ()
  • 승인 2008.06.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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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삶이 고달프다.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연초부터 치솟던 물가를 압박하면서 장보기가 겁이 날 정도다. 내핍 생활도 이제 한계에 왔다. 하루가 다르게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계를 꾸려가자니 막막하다. 게다가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추월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면서 경유차로 먹고살던 자영업자들은 곳곳에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시사저널>이 서민 생활의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리터당 2천원을 넘어선 기름값, 지난해 대비 100% 오른 밀가루값(20㎏ 기준), 한 달 사이 ㎏당 6천원이 올라버린 돼지고기값…. 유가와 곡물 등 원재료 값이 인상되고 여기에 인건비, 임대료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영세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한여름에 된서리를 맞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와 광우병에 대한 쇠고기 안전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관련 음식점은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겨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에 오래 몸담은 한 전문가는 “현재 쇠고기, 오리 전문점 대부분이 하루 100만원은커녕 20만~30만원의 매출도 기록하지 못하고 있으며 개점 휴업 상태인 점포도 많다”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5억~10억원 정도 투자한 오리 전문점의 경우 일평균 2백만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야 적자를 보지 않는 상황인데, 대부분 오리메뉴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소규모 점포도 마찬가지다. 서울 송파구에서 99㎡(30평) 규모의 오리고기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 아무개씨(43)는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결국 가게 문을 닫아야할 것”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이맘때면 오리고기 매출만 하루 100만원이 넘었는데, 올해 조류독감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오리고기를 찾는 손님이 뚝 끊겼다. 찾는 사람이 없자 급기야 오리고기 사입을 중단했다. ‘매운 돼지갈비’ ‘허브 삼겹살’ 등 새 메뉴를 출시하고 부메뉴에 올라 있던 돼지갈비와 삼겹살 판매에 주력하고 있지만 오리고기 전문점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인지 50~60% 이상 떨어진 매출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장씨는 “지난 몇 달간 적자를 내면서 종업원도 한 사람 해고했는데 직장인이 몰리는 점심 시간에는 일손이 모자라다. 손님들이 서비스에 불만을 느끼고 찾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의 또 다른 오리고기 전문점은 개업 3개월 만에 간판을 내리고 감자탕으로 메뉴를 바꿨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40㎡ 규모의 윈도우베이커리(독립제과점)를 운영하는 최 아무개씨(38) 역시 속이 타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20kg 한 포대에 1만2천~3천원 하던 밀가루값이 최근 2만5천원을 넘어섰기 때문. 빵값을 100~2백원 올렸더니 소비자들의 원성이 터져나왔다. 최씨는 “빵값 인상은 재료비 인상에 비하면 턱없는 수준”이라고 볼멘소리를 냈다. 소비자들은 밀가루값 인상만 생각하지만 우유, 버터 등 빵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비가 오른 상황이어서 2백원을 올린다고 해도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과점 역시 인력 감축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한다. 빵을 만드는 전문 기술자의 월급이 2백만~2백50만원선인데 각종 비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줄여야 하는 것이 인건비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씨는 “최근 지역 내 윈도우베이커리 점포 수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이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운영하는 대기업과도 무관하지 않다”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밀가루값이 50~60% 오른 상황에서 대기업 제과점이 ‘식빵값 동결’ ‘10~20% 가격 인상’ 등의 전략을 내세우는 것은, 안 그래도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밀리는 독립 점포의 폐점을 부채질하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토로했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한 오리고기 전문점 사장이 밖을 바라보고 있다.

식자재 납품업자들 “죽을 맛”…정부 소상공인 지원 자금도 ‘뚝’

음식점과 술집 등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김 아무개씨(35)도 최근 사정이 어려워졌다.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는 음식점과 술집이 늘어나면서 거래처가 부쩍 줄어든 것이다. 김씨는 “기름값이 올라 수익이 줄었는데 거래처까지 줄어드니 죽을 맛이다. 다른 일을 알아볼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시름에 빠져 있는 것은 외식업뿐만이 아니다. 유기농 화장품 프랜차이즈 본사를 운영하고 있는 신 아무개씨도 최근 고유가, 고물가, 고환율 ‘3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제품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해 들여오는데 환율 격차가 심해지고 국제 유가 인상으로 인해 운송비까지 오르면서 수익이 급감했다. 그렇다고 100여 개가 넘는 가맹 점포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 그나마 해외 공급처에서 한국의 시장 상황을 감안해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여러 비용이 늘면서 가맹 사업을 통한 영업이익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본사 운영은 10여 개의 직영점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신씨는 “나는 그나마 나은 경우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문을 닫거나 가맹점 사업을 접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각종 매스컴에서 연일 ‘어렵다’ ‘어렵다’만 외쳐대는데 이런 분위기가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것 같다. 정책도 중요하지만 돈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조성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마음에 할인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소매점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서울 종로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씨(37)는 “최근 몇 달 사이 매출이 줄었다. 경쟁 점포가 늘어나고 임대료와 인건비는 계속 오르고 있어 수익이 예전 같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 달부터 아르바이트생 수를 줄이고 자신의 근무 시간을 늘렸다고도 했다.

어려움이 깊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은 정부에 도움의 손길을 뻗어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상공인지원센터의 상반기 지원 자금 1천2백억원이 자금 지원 개시일 3주 만에 동나버린 것.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고리의 사채 이자까지 감수하며 자금 조달에 나서거나 아예 폐점을 결심하는 창업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세청이 발표한 ‘연도별 소상공인 창업 및 폐업 현황’에 따르면 소상공인이 폐업하는 비율이 지난 2005년 기준으로 92.6%를 기록했는데 이는 외환위기가 있었던 지난 1998년에 비해 1백4.5%의 비율 이후 최대치라고 한다. 2006년 말 6백13만5천명에 달했던 자영업자 수는 올해 1분기 말에는 5백81만6천명까지 줄었다.

폐점이 늘어나고 닭과 오리, 소고기 등이 된서리를 맞는 등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창업 시장이지만 돼지고기만은 예외인 듯하다. 신문 광고를 하지 않아도 하루 평균 5~6통의 창업 문의가 꾸준히 이어질 정도라고 한다. 외환위기 당시 우후죽순 등장했던 대패삼겹살과 같은 저가 삼겹살 전문점 역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충고한다. 10년 전 3천3백~3천9백원의 저가를 내세우며 창업 시장을 휩쓸었던 돼지고기 전문점이 원가를 맞추기 위해 저급 고기를 사용하면서 소비자가 외면하고 결국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자들은 가격 경쟁력은 일시적 쏠림 현상을 가져올 뿐 꾸준한 관리 없이는 장수가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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