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걷혀가는 ‘죽의 장막’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8.06.03 15: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 쓰촨성 참사 후 세계 각국에 발 빠른 도움 요청…보도 통제도 없어 ‘개방’ 추측 낳아
지진으로 부상을 당한 피해자가 열차에 후송되고 있다.

쓰촨(四川)성 지진 이후 중국이 달라졌다. 과거 비밀에 붙여졌던 것들을 개방하고 자신감마저 보인다. 중국이 서방과 같은 민주 국가로 변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마저 나올 정도다. 중국의 변화는 지진 직후 당국과 국민, 언론이 보인 반응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모든 국민,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피해 지역으로 달려갔다. 한 직장인은 72달러를 기부했으며 자기 회사 직원 89%가 성금을 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모두가 나서서 이재민을 돕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모금액은 지진 발생 보름 만에 16억 달러를 넘었다. 티베트 사태와 성화 봉송 과정의 봉변으로 분열된 국론은 하나로 뭉쳤다.

중국은 지진 발생 3일 만인 5월15일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처럼 오랫동안 경쟁자로 혹은 적으로 매도하던 국가에 재난 구조대와 중장비들을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근 30년 만의 변화다. 일본이 먼저 60명의 지진 구조팀을 보냈다. 국내에서 발생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이 외국 구조팀을 받아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긴장 관계에 있는 타이완에 대해서도 민간 구조대 두 팀의 입국을 허용했다. 한국과 러시아의 구호진도 도착했다.

정부의 홍보 부서와 언론의 태도는 옛날 같지 않다. 정부의 언론 담당 부서들은 지진 직후 언론사들의 현지 접근을 금지했으나 기자들은 이를 무시하고 피해 지역으로 급파되었다. 취재 금지 명령은 하루 만에 철회되었다. 당국은 원활한 구호 활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언론은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구호품 횡령과 학교 건물이 왜 많이 붕괴되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그래도 정부의 제재는 없었다.

관영 신화통신은 AP, 로이터, AFP보다 더 많은 지진 속보를 내보내고 있다. 국영 CCTV는 실시간으로 구조 현장 모습을 전했다. 1976년 탕산 대지진 때는 없던 일이다. 24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를 당하고도 당시의 4인방은 피해를 축소·은폐하고 외국 원조를 거부했다. 2003년 사스(SARS) 발생도 비밀에 붙였던 중국이다. 지금 중국의 인터넷 게시판은 외국 원조에 감사하는 글과 중국의 단결을 호소하는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지진보도에 관한 한 중국은 서방 국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국영 CCTV, 실시간으로 구조 현장 중계하기도

음식을 받고 있는 노파.

외교적 압력에도, 국제적 비난에도 요지부동이던 중국 공산당의 비밀주의가 인간의 힘이 아닌 자연재해로 걷히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나라가 마침내 자유와 다원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냐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결론은 긍정적이다. 이웃 나라들처럼 중국도 느리지만 권위주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판 개혁(페레스트로이카)이 개방(글라스노트)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들이 도처에서 들린다.

혼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헷갈리는 조짐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반체제 인사들은 지금도 투옥되고 권력 핵심에 대한 도전은 엄격히 통제된다. 말하자면 통제와 개방이 적당한 선에서 균형과 공존을 유지하는 셈이다. 중국을 오랫동안 취재한 외국 기자들은 갑자기 달라진 중국의 모습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이다. 

중국은 분명히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다. 다만 시장경제가 가미된 레닌주의 국가라는 것이 다르다. 부의 축적, 중산층 등장, 교육 개선, 국제 교류 증가 등으로 1당 지배는 흔들리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얼굴에서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의 표정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두 사람 모두 공산당식 계급투쟁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개방 조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원자바오 총리다. 지진 발생 두 시간 만에 현장에 도착해 구호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매일 TV에 비쳤다. 이재민들은 어느새 그에게 두 가지 별명을 붙였다. 하나는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우는 총리’, 다른 하나는 부상자들을 위로하는 ‘온(溫) 할아버지’다. 그는 과로로 졸도했으나 치료를 거부한 채 피해 현장을 누빈다. “아가야 조그만 참아, 원자바오 할아버지가 왔어, 꼭 살려줄게.” 시멘트 더미에 매몰된 어린이를 향한 원 총리의 격려는 중국인들을 울렸다. 그의 행동은 거의 충격적이다.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의 독재자 모습이 아니라 국민을 보살피는 정치가의 얼굴이다. ‘자비로운 황제’가 왕림했다고 국민은 숙덕거렸다.

원 총리만 보고 중국의 개방을 얘기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그가 후 주석에 비해 개방 지향적이고 시장경제 신봉자인 건 사실이다. 그의 전례 없는 대중 플레이는 공산당과 인민 간의 교감 방식에 변화가 생겼음을 시사한다. 그는 구조팀에 “무슨 수를 쓰든 10만명은 살려내라”라고 호령했다. 그것이 가능하든 말든 적어도 그만큼 인민을 사랑한다는 메시지다. 그의 민첩한 대응과 행동은 다른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티베트 사태로 이미지가 나빠진 상황에서 국위를 선양하려는 결의가 느껴진다.

원자바오 총리 “10만명은 살려내라” 호령

원자바오 총리(왼쪽)는 쓰촨성 지진 현장을 둘러보면서 과로로 졸도하기도 했지만 치료를 거부한 채 피해 지역을 누볐다.

중국에는 7천5백만개의 인터넷 블로그가 있다. 이를 통해 수만 명의 네티즌들이 정부를 비판한다. 중국 경찰은 최근 ‘지진 괴담’을 퍼뜨린 17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최고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래도 네티즌 단속은 이전과 달라졌다. 반체제 인사들도 과거와는 달리 처벌을 덜 두려워하는 눈치다. 1980년대 중국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이른바

‘평화혁명’을 맹렬히 비난했다. 강경파들은 복장, 직업, 주택, TV 프로그램 등의 선택을 허용할 경우 정치 체제의 선택까지 요구할까 두려워했다.

중국이 외부 도움을 요청한 것은 이번 자연 재해가 중국 혼자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13만의 인민해방군을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자연의 분노 앞에 공산당의 이념도 13억 인구의 자존심도 무너진 점에서 이번 지진은 미래를 향한 중국의 진로에 이정표를 세웠다. 외국 지원은 선별적으로 수용했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중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을 고려했다. 이 역사적 행사를 앞두고 자국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수단으로 구조팀의 입국을 허용한 것이다. 그것도 관계 개선이 시급한 나라들의 구조반을 먼저 받아들였다. 

고르바초프의 성급한 개방이 소련의 붕괴로 이어진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중국의 개방에 반신반의한다. 소련 붕괴 후 태어난 러시아는 푸틴 시대에 들어와 다시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중국도 이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개방의 후유증은 이미 나타났다. 쓰촨성에서는 구호품 횡령에 분노한 국민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당국이 즉각 나서 철저한 조사를 약속한 후 소요는 진정되었으나 유사한 사태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어쨌든 올림픽까지는 개방 무드가 계속될 듯하다. 그 이후 개방 수위를 조절하는 문제를 놓고 중국 지도자들은 고민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