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보다 거리로 나선 청소년들에 더 희망을 느낀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06.0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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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 “쇠고기 문제가 다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이미 시골 초등학교 공기까지 바꿔놓았다”

유월의 햇살을 받은 섬진강은 눈부셨다. 그 잔잔한 강을 내려다보는 시인의 표정도 더 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전북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는 유난히 유월을 자주 노래했다. ‘하루종일 당신 생각으로/ 유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유월의 노래’ 中에서)

내와 강은 흘러흘러 결국 하나로 통한다지만, 유월을 맞는 청계천과 섬진강은 너무도 별세상이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서는 서울의 불청객에 의해 이내 섬진강의 정적은 흩어졌다. “서울은 지금 한창 시끄럽죠?” 기자를 맞은 시인의 첫 인사는 그런 걱정으로 시작되었다.

시인 김용택씨도 어느덧 환갑을 맞았다. 평생의 천직으로 알았던 교단도 올해를 끝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시인은 늘 밝고 아름답고 순수하고 정직한 세상을 노래한다. 시인의 노래를 듣고 자란 제자들은 중고생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으며, 이 사회의 기성세대가 되었다. 그런 제자들이 거리에 나가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물대포 세례를 온몸으로 받는 상황이 시인으로서는 적잖이 안타깝고 당혹스러울 법하다. 청계천과 시청 앞의 혼돈 속에서 기자가 문득 시인을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먼발치에서 청계천의 유월을 바라보는 시인의 진솔한 심경과 당부를 듣고 싶었다. 시인의 입은 무겁게 열렸다.

중고생들이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주도적인 참여자로 나서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애들이 뭘 안다고…” 하며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기자 양반이 보다시피 여기는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하다. 그렇다고 여기 어린이들은 서울의 시청 앞 상황을 전혀 모를 것 같은가. (웃음) 시골 어린이들도 알 것은 다 안다. 우리 어린이들이, 또 청소년들이 왜 거리에 나왔을까. 지금 그들이 단순히 쇠고기 수입 문제, 광우병 문제로만 이러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이미 이 시골 초등학교의 공기마저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갑자기 몰입식 영어 교육이네, 학교별로 점수를 공개하네, 등수를 매기네 하면서 학교를 다시 무한 경쟁 체제로 만들었다. 아이들에게도 나름으로 가해지는 압박감이란 것이 있다. 갑자기 환경이 변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강요만 하면 안 된다. 하물며 중·고생들은 더 예민하다. 그들 나름으로 사회 현상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청소년들이 지금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 직접 참여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그리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도 청소년들이 정치 사회 문제에 뛰어들었다. 4·19 학생 의거도 중·고생들이 나섰다. 당시와 지금은 무엇이 다르다고 보는가?

나도 고등학생 때인 1960년대에 데모를 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사회 정의가 우선이었다. 지금은 좀 다르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에 앞서 우선 좋고 싫고의 문제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입장에서는 그냥 싫은 것이다. 나쁜 음식 먹기 싫고, 공부로 너무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도 싫고, 영어 몰입도 싫은 것이다. 그래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 무조건 그렇게 하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마음에 안 들고 싫은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충분한 이해와 설득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을 무시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무섭다. 우리 학교 5학년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광화문 촛불 시위 모습을 보면서 “꼴들 좋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꼭 어른인 우리한테 하는 조롱 같았다.


그런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제는 정치 지도자이고 기성 세대들이지, 거리로 나서는 청소년들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안일하고 오만함에 빠진 것이다. 청소년들은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의사 표현이 빠르고 직접적이다. 그런 자신들의 의견을 존중할 뜻이 전혀 없다는 데에 화가 난 것이다. 아니, 오히려 어리다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모두가 공감하고 나선 것이다. 나 자신도 솔직히 이런 모습을 보면서 놀랐다. 정치에는 희망을 갖지 않더라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보면서 희망을 느끼게 된다.


일각에서는 순진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선동하는 불순 세력을 거론하기도 한다.

나도 그 얘기를 듣고 정말 화가 났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정치 지도자든, 보수 언론이든, ‘아, 정말 이 사람들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현 정부의 잘못된 판단 탓이다. 그것을 처음부터 솔직히 인정하고 고치려고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또 국민을 속인 것 아닌가.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본질을 늘 비켜가고 호도하려는 것이다. 개인을 속일 수는 있지만 국민 전체를 속일 수는 없다. 일부 신문들을 보면 자꾸 애먼 데로 문제를 끌고 가려는 의도가 보인다. 국민이 이제 다 안다. 아는 데도 그렇게 하려니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는가. 자기 스스로 하는 행동에 대해서 마치 누군가가 시켜서 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다.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는 첩경은 먼저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고 정직하고 진지하게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현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가 상당히 비교육적인 처사라는 지적으로 들린다.

명색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또 장관이라면, 정치 지도자라면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제일 큰 문제는 인사정책이었다. 분명한데, 누가 봐도 저건 아닌데, ‘일만 잘하면 도덕적 하자가 좀 있어도 상관없다’ 이렇게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을 경시하는 마인드다.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회사 경영에서는 가능하다. 하지만 정치는 교육과 직결된다. 대통령이 한 말, 장관이 한 말, 정치인이 한 말과 그 행동들이 모두 우리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너무 말을 책임감 없이 막하고, 밀어붙인다.


교사로서 현 교육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듯하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온통 들쑤셔서 다 뒤집어놓고 있다. 워낙 체계도 없고 엉망이어서 어디 한두 군데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그 폐단이 나오고 있다. 지금의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내가 봐도 놀랄 정도다. 모르는 것이 없고 똑똑하다. 하지만 상대가 없다. 더불어 살 줄을 모른다. 우리의 삶은 공동체다. 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연도 있고 이웃도 있는데 그것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서툴다. 한마디로 지식은 있는데 지혜는 없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맹점이자 허점이다. 인간성을 기르는 교육이 빠져 있는데, 인간성은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나가며 사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에게 자연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자연이라고 해서 시골로 와야 하고 산으로 들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람이 자연이다. 사람 자체가 자연이기 때문에 나와 더불어 사는 주변사람들을 자세히 보고 살피는 그런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 경쟁만 부추긴다.


그렇게 본다면 청소년들이 지금 광장에 나와서 촛불 집회에 참가하는 것도 어느 정도 교육의 효과가 있다고 볼 수도 있나?

그렇다. 물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나오면 일단 기성 세대들이 사고가 안 나도록 보호를 해주어야 한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야 거리 행진 등을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리하게 막기 전에 좀더 인내심을 가지고 당부하고 부탁하고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청소년들은 또 거기에 대해 바로 이해한다. 그런 모습, 서로 자제하고 대화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만큼 대단한 교육이 또 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서로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고 물대포가 쏴지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청소년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지 안타깝다.  


앞서 어린이와 청소년보다는 정치 지도자와 기성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교육은 세 가지다.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을 공부하는 것이다. 살고 있는 세상을 공부하는 것이다. 또, 살아야 할 세상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워 나가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위를 보라.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가치는 오로지 ‘경제’에만 모아지고 있다. 대통령부터 경제, 경제만 외친다. 대통령이 나와서 어린이들에게 “요즘 무슨 책 읽고 있어?” “난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데 좋더라,” 이런 말 한마디라도 했으면 좋겠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풍모가 보여야 서로 이해심도 깊어지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인데, 오로지 경제에만 올인하고 경제를 위해서라면 어떤 가치쯤은 버려도 될 기세다. 솔직히 우리가 얼마나 더 잘 먹고 잘 살아야 행복한 것인가? 위에서부터 너무 경직되어 있고, 국민을 가르치려 들고, 부하들을 다그치려고만 들고, 이렇게 하니까 사회가 삐걱거리는 것이다. 대통령이 청소년들에게 직접 다가가서 따뜻하게 한마디 말할 수 있는,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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