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없는 공기업 기관장 인사, 떳떳하고 투명하게 하라
  •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 교수ᆞ한국조직학회장) ()
  • 승인 2008.06.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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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ᆞ경영성과 외면하는 금융기관장 ‘코드 일체형’ 물갈이는 곤란…관료 출신보다 CEO형 기관장이 경쟁력 더 높아

지난 2월 제니 시플리 전 뉴질랜드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방문한 자리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공공 부문을 줄이고 민간 부문 참여를 확대한 것이 중요하다. 공기업이 경제에 이익이 되지 못하고 납세자들에게 불편을 주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값이 올라가는 경우,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라는 것을 강조했다. 즉, 공기업이 경제에 이익을 주는지 손해를 끼치는지를 분석해, 뉴질랜드 경제에 손해를 끼치는 공기업을 과감하게 민영화했다는 것이다.

 물론, 공기업 민영화나 구조 조정만이 공기업 개혁 방안은 아닐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공기업 문제 해결에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지만, 현실적 대안 중 하나다. 싱가포르에서는 국영 기업도 도산을 시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공기업 도산이 가능할까? 사실상 불가능하니 공기업 민영화나 구조 조정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제 공기업 경영의 방만함과 조직 구성원들의 비도덕성 및 도덕적 해이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공공 기관의 부채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2007년의 경우 2006년 대비 9.1% 증가한 2백76조3천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출근도 하지 않는 직원에게 2년 이상 월급을 주는 공기업도 있었고, 비자금을 조성해 노조 집행부에 향응을 제공하는 공기업까지 있었다.


공기업의 난맥상은 독점적 지위에서 초래돼

그런데, 이러한 상황의 가장 큰 원인은 공기업 그 자체에 있기보다는 공기업이 민간 기업과 달리 대부분 법률에 의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즉, 민간 기업과는 달리 공기업은 시장으로부터 경쟁 압력도 없고, 설사 경영이 부실해도 퇴출 압력을 받지 않으며, 적자가 나도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되기 일쑤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공기업 혁신은 ‘공기업 내 이사회·감사위원회와 같은 내부 지배 구조와 공기업 임원 인사·관리 감독을 맡는 외부 지배 구조 혁신’에만 집중되었다. 이제는 좀더 근본적으로 민영화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 경제 ‘잃어버린 10년’의 불황을 극복하는 데 가장 크게 역할을 한 것은 고이즈미 내각이 노동계와 공직 사회 그리고 정치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정공사의 민영화를 비롯해 공기업 1백63개 가운데 1백36개를 폐지·민영화·독립법인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본 경제계의 일반적 평가다. 메긴슨과 네터(Megginson & Netter)가 41개국 2백개 공기업의 민영화 전후의 기업 실적 변화를 분석한 결과, 민영화는 일반적으로 기업의 수익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사회 복지 전체에 플러스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공기업 민영화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금융기관 기관장 물갈이가 한창이다. 산업은행과 증권예탁결제원 등 4개 금융 공기업과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인 우리금융지주, 우리은행 등 4개 금융회사의 기관장이 교체된다. 금융위원회가 12명의 금융 공기업 기관장 가운데 8명을 교체하기로 하면서 금융 공기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 이루어진 ‘물갈이’의 기준이 그렇게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임 기간’과 ‘새 정부 국정 철학의 이해도’를 기준으로 했다고 하는데, ‘재임 기간’이라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이니 결국 ‘새 정부 국정 철학의 이해도’로 판단했다는 것인가?

앞으로도 공기업 기관장 인사 때 ‘전문성’과 ‘경영성과’ 같은 변수보다는 ‘새 정부 국정 철학의 이해도’ 같은 것을 더욱 중시하겠다는 이야기라면 정말 곤란하다. 정권 출범 때마다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 ‘밀실 인사’ 등의 용어가 언론에 등장했지만, 이번 이명박 정부도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일부의 주장도 부정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광우 금융위원회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새 정부 국정 철학의 이해도를 묻지 마라

또한, 재신임과 교체를 가른 기준이 결국 ‘12개월’이라는 재임 기간이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재임 기간이 13개월인 박병원 우리금융 회장과 박해춘 우리은행장은 모두 교체 대상이 된 상황에서 ‘12개월과 13개월의 차이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비아냥도 나올 수밖에 없다.

정권을 잡은 분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이겠지만 후대의 평가가 두렵다면 앞으로 공기업 기관장 인사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정교하게 되어 있어도 우리나라에서 공기업 기관장 인사는 한 번도 그 법의 정신을 구현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앞으로 금융 공기업 기관장으로는 퇴직 관료보다는 CEO형 기관장이 적합하다고 본다. 퇴직 관료라고 공기업 기관장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낙하산 인사로 말미암은 폐해가 크고 우리 공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연 어떤 폐해가 있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이나 관리가 제대로 행사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부처의 고위직들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하더라도 정책이나 관리의 대상이 되었던 공기업 기관장으로 가는 일이 관행화한다면, 그러한 고위 관료들은 공직에 충실하기보다는 퇴직 뒤에 새롭게 옮길 공기업의 관계에 더욱 신경을 쓸 것이다.

그러면 왜 퇴직 관료의 공기업 기관장 임용은 공기업 경쟁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가? 공기업 기관장은 공기업 개혁을 통해 좋은 외부 평가 결과도 달성해야 하고, 동시에 공기업 개혁 작업에 조직 구성원들을 동참시키기 위해 조직 구성원들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관료 출신 기관장이 최고경영자(CEO)형 기관장보다 경쟁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지적해야 할 것은, 과거의 사례를 보면 아무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인사 검증 시스템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검증 시스템이 정권의 낙하산이나 보은 대상자만 거치게 되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법·제도적 인사 검증 시스템 구축만큼 중요한 것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인사를 단행하고자 하는 대통령과 정권 핵심 인사들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도 정권 초 각종 인사 논란이 ‘노란 낙하산’을 ‘파란 낙하산’으로 바꾸기 위해 벌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앞으로의 금융 공기업 기관장 인사에서 시원하게 보여주기 바란다. 이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철학 중 하나라고 하는 ‘법치’의 개념과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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