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누가 되든 한반도는 ‘그 타령’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8.06.1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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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이후…>, 국익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의 대통령들 분석…“오바마도 매케인도 다를 것 없다”

는 미국 대통령은 누가 되든 대외 정책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왼쪽)와 존 매케인(오른쪽).
지난 2000년 겨울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으로 확정되었을 때 한국은 차기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예민한 관심을 보였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진보적으로 여겨진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물러나고 신보수주의를 표방한 공화당의 조지 부시가 등장했기에 더욱 그랬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안보위원회 멤버였던 ㄱ씨는 워싱턴의 한 연구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한국 언론의 관심과 달리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갑자기 변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미국 이익이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인 가운데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가 심지어 한국이 어느 대륙에 있는 나라인지도 잘 모른다. 그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다.”


미국 언론들도 대통령 성향 구분지으며 호들갑

2001년 부시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한국 언론들은 한결같이 미국의 대북한 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북한 김정일은 부시의 압력에 견디지 못해 전쟁을 도발하거나, 아니면 자살을 하거나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는 식이었다. 부시가 퇴임 8개월도 남겨 두지 않은 요즘의 관점에서 보면 당시의 한국 언론은 ‘냄비 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이 자살도, 전쟁도 하지 않았고 부시와 손잡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냄비 언론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리처드 펄은 미국 언론들이 미국 대통령의 성향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이념적으로 구분해놓고 호들갑을 떤다고 비판한다. 미국 대통령은 성향이나 이념이 아닌 국가 이익을 정책 결정의 최우선 순위에 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이거나 공화당 소속이거나 상관없이 국가 이익 특히 국가 안보 이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ㄱ씨나 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서적이 최근 영국에서 출간되었다. <부시 이후 : 미국 대외정책 지속성의 사례>(티모시 린치, 로버트 싱 공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 발행)는 부시를 사례로 해서 미국 역대 대통령이 펼친 대외 정책의 일관성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하고 있다. 린치와 싱의 결론은 간단하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미국의 대외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마라.”

표지.
<부시 이후…>는 영국에서 지난 4월28일, 미국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서점에 모습을 보였다. 영국 런던 대학의 미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런던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린치는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부시 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 부시는 빌 클린턴의 유화적 개입 정책(Engagement)보다는 훨씬 강한 적극적 개입 정책(Interventionism)을 내세우고 독재·전제 국가들에 민주주의를 강요했지만 대북한 핵협상은 클린턴 정부의 정책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가 지난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통해 북한 핵을 동결하는 데 집중한 것이나 부시 정부가 베이징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 동결 내지 제거를 모색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목표는 북한 핵 제거에 있고 미국의 어떤 대통령이라도 이같은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없다고 린치는 강조했다. 즉, 클린턴이나 부시가 그러했듯 차기 미국 대통령에 버락 오바마가 되든 존 매케인이 되든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린치는 특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이 확실한 오바마가 예비선거 과정에서 현 부시 대통령과 다른 대외 정책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즉각적인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거를 위한 책략적 주장이리라는 것이 린치의 해석이다. 오바마는 역시 이라크 전쟁과 테러와의 전쟁을 부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전쟁을 어떻게 더 잘 수행할 것이냐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진보 성향이냐 보수 성향이냐는 대외 정책에서 크게 주목할 요소가 아니라는 것도 린치의 주장이다. 그는 오바마나 빌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등 민주당 정치인이나 부시, 매케인 등 공화당 정치인들의 진보와 보수 구별은 어디까지나 국내 정치에서 접근하는 방법의 차이에 따른 것일 뿐이며 이들이 해외로 시선을 돌릴 때는 그런 이념적 구분은 사라진다는 것이 연구 결과라고 말했다.

린치에 따르면 미국 역대 대통령의 대외 정책은 사실상 전임 대통령들의 정책을 모방하거나 완성하는 형태로 요약할 수 있다.

20세기 역사의 대변혁으로 꼽을 만한 냉전 종식을 이끈 로널드 레이건(공화당)의 냉전 전략은 사실상 지미 카터(민주당) 시절의 국방력 강화에 바탕한 것이고, 현 부시 대통령이 집착하는 이라크 전쟁은 클린턴 정부의 앨 고어 부통령이 출발점을 마련했다. 그리고 부시(공화당)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정부 전복에 나선 것은 사실상 빌 클린턴(민주당)이 1998년에 수립한 외국의 독재 정권 교체 아이디어를 2003년 부시가 마무리지은 것에 불과하다.

역대 대통령들 모두 정책 이어받아

진보 성향이 강한 빌 클린턴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훨씬 더 많이 해외 파병을 결정한 대통령이었다. 또 냉전 종식 후 미국은 모두 9차례 해외 파병을 통해 외국 정부에 무력으로 개입했으며 이는 민주·공화 양당 소속 대통령들의 결정이었다. 린치는 이같은 미국의 대외 정책의 지속성으로 볼 때 비록 오바마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가 대외 정책을 급격하게 변경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린치의 말을 더 발전시키면 차기 미국 대통령에 오바마가 되든 존 매케인이 되든 미국의 대북한 핵정책에는 별다른 변화도 없고 방법상 차이도 거의 없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2001년 취임 후 9·11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을 잇달아 감행하면서 미국의 국제 사회에서 고립될 것으로 우려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세계 1백92개국 가운데 84개국과 굳건한 동맹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정치에서 미국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프랑스와 독일 역시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과 안겔라 메르켈 총리가 들어서면서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중국과 인도 등 주요 국가들도 미국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린치는 미국을 멀리해서 이득을 본 나라가 하나도 없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린치-싱의 이 저서를 두고 미국 학계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과 다양한 사례를 들어 분석한 이 책을 미국 대외 정책의 일관성을 잘 보여주는 역저라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에 영국 더럼 대학의 존 덤브렐 교수(행정학)는 견해가 다르다. 그는 린치-싱의 저서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외 정책에 대한 변호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덤브렐은 <부시 이후…>는 앞으로 부시 행정부 대외 정책의 공과에 대한 더 많은 논쟁을 불러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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