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이 무슨 죄…“육군으로 옮겨주세요”
  • 이 은 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8.06.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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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의 수난시대다. 밤새 시민들과 맞서며 야유를 들어야 하고, 시위대와 장시간 대치하다 보니 바닥에서 쪽잠을 자기 일쑤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 군홧발 한 번 잘못 차 과잉 진압에 대한 비난을 한몸에 받고 사법처리를 받게 되는 전경도 있다.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는지 시위 현장에 있던 한 전경이 육군으로 옮겨달라고 행정심판을 청구하기까지 했다. 국방부에서는 즉각 옮겨주겠다고 회답했다.

경찰청은 촛불 집회 사상 최대 인파가 모인 지난 6월10일에 전경 대신 컨테이너 박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전경들의 고충을 헤아렸던 것 같다. 시민과 전경들의 자중자애 속에서 시위는 별탈 없이 끝났다. 경찰 관계자들은 평화 시위를 이끌어냈다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이 컨테이너 박스는 ‘불통의 상징’이라는 흉물로 남게 되었다. 컨테이너 박스 주변의 전경들로서는 정부와 시민을 가로막아야 하는 난감한 처지를 더욱 실감하게 된 셈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전경들에 대한 동정론이 나오고 있다. 언론 역시 ‘전경도 힘들다, 알고 보면 20대 초반의 대학생’이라며 그들의 고충을 전달하고 있다. 전·의경 부모 모임과 인터넷 커뮤니티 ‘고무신 카페’ 회원들은 시위 현장에서 전경을 보호하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과격 시위를 자제하게 된 과정도 전경을 동정하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전경들과 김밥을 나눠먹는 시민이 있는가 하면, 시위대에서 “전경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는 소리가 나오며 정면 충돌을 자제한 것도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전경들의 수난은 언제쯤 끝나게 될까. 정부와 시민의 소통 채널이 탄탄해져 이 땅에서 시위가 사라진다면 전경의 존재는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전경들이여, 그런 유토피아가 올 날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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